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정통제 (문단 편집) === 말년 === 조길상을 제거하여 황권을 회복한 천순제는 황제로 지낸 두 번째 시기 동안에는 상당히 개념찬 황제로서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상기했듯 자기를 다시 황제로 만들어주었지만 간신으로 평가받는 조길상이나 석형 등을 제거하고 이현(李賢)과 같은 훌륭한 신하를 기용하기도 했다. 이때 천순제는 자기의 하루 일과를 설명하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조상에게 절을 올리고 그 다음에는 조회를 보고 그 다음에는 밥 먹고 상주문 읽는 것밖에 없다고 말할 정도로 꽤 열심히 일했다. 다만 조길상, 서유정의 모함에 속아서 [[토목의 변]] 때 북경을 지킨 공신인 [[우겸]]을 죽이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다. 비록 우겸이 경태제를 옹립한, 천순제 본인에겐 반역자와 같은 인물이었지만 당시 상황이 매우 불가피한 경우인 데다 우겸 본인은 청렴하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도 있는 인물이라서 대국적으로 용서해 주었다면 우겸 또한 천순제에게 충성했을 것이므로 이는 실책이라는게 후대의 평가. 천순제도 이후 우겸이 훌륭한 신하라는 것을 깨닫고 후회했다고 한다. 그리고 [[건문제]]의 유일한 후손이자 그의 차남 윤회왕 [[주문규#s-2]]를 56년만에 유폐에서 해방시켰으며[* [[정난의 변]]을 일으킨 영락제가 유폐시켰다.] 자신이 오이라트에게 포로로 잡힌 쓰라린 기억을 참고해서 그때까지 남아있던 '''비빈들의 [[순장]]을 금지하라'''는 유언을 남겨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순장이 없어진다. 당시 명나라 내부에 남았던 몽골의 풍속은 뒤틀린 폐습인 경우가 많아서 매우 개념찬 행동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천순제는 조흠의 변을 진압한지 7년 만인 36세에 세상을 떠나게 되어 다사다난했던 생을 마감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