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1경비단 (문단 편집) == 역사 == 수방사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부대들 중 하나고, 심지어 나이 좀 있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은 '수방사 = 제1경비단 병력 + 그 외 나머지 기타 등등' 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애초에 수방사 창설 목적이 [[5.16 군사정변]] 이후 정변 세력의 보호를 위한 [[친위대]] 성격이 강했는데 그 핵심이 1경비단의 전신인 30, 33대대였기 때문에 예전에는 아주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1방공여단]]과 [[제1113공병단]]이 편입되기 전까지는 수방사 직할부대 중에 경비단과 비교할 만한 사이즈의 부대가 기껏해야 [[군사경찰단(수도방위사령부)|군사경찰단]] 말고는 없었기도 하고, 방공여단과 공병단은 편입된 지금도 본부는 경기도에 있는 등 수방사 나머지 직할부대와는 좀 따로 노는 분위기가 강하다. [[5.16 군사정변]] 때 서울로 진입한 두 개의 수도권 지역 향토예비사단이었던 30사단(당시 서울지역 향토예비사단. 지금은 서울 인근의 [[제30기계화보병사단]])과 33사단(현 [[제17보병사단]]. 당시 경기 서부(인천, 영등포 포함) 지역 향토예비사단)의 병력이다. 5.16 쿠데타 성공 이후에 이 두 개 사단에서 각각 1개 대대가 서울에 남아 그것이 30대대와 33대대라고 불리다가 1974년에 [[차지철]]이 경호실장이 되면서 경비대대에서 경비단으로 확대개편되어 30경비단과 33경비단이 되었다. 즉 '''수방사 창립 멤버'''다. 두 부대의 주둔지는 30단은 [[경복궁]] 내[* 멀쩡한 궁궐을 허물고 들어앉은 것은 아니다. [[조선총독부]]와 총독관저를 경호하는 [[일본군]] 부대 주둔지로 쓰던 자리에 들어갔다. 이 터는 본래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복궁 태원전|태원전]] 자리였으나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열기위해 허물어졌다.], 33단은 현 1경비단 주둔지 위치에 주둔했다. '''[[12.12 군사반란]]의 핵심''' 병력으로 제30경비단장 [[장세동]] [[보병]] [[대령]]과 제33경비단장 [[김진영(군인)|김진영]] 보병 대령은 당시 [[직속상관]]이었던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소장(계급)|소장]]을 배반하고 쿠데타의 주축이 되었다.[* 이 때 반란군 측 유일한 사망자도 33경비단에서 생겼는데, [[정승화]] 참모총장 납치 당시 해병대 경비병력과의 교전 중 사망한 [[박윤관]] 일병이다.] 전투병력을 모두 잃은 장태완 [[장군]]은 눈물을 머금고 저항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현재의 제1경비단으로 통합된 것은 1996년으로, 군사정권 잔재 청산 겸 조직의 통합이 목적이었다. 통합 후 현재의 위치인 구 33단 주둔지에 자리잡았으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087011|참고]]) 30단은 청룡대대, 33단은 백호대대로 격하되며 병력은 2/3로 축소되었다. 더불어 당시까지 경복궁 내에 함께 주둔했던 [[대통령경호처/지원부대|대통령경호처 지원부대]]들도 현위치로 이전했다. 이후에도 근무영역은 그대로여서 청룡대대는 [[북악산]], 백호대대는 [[인왕산]]에 한번에 2개 중대씩을 투입하여 6주마다 교대를 실시하며 전담 방어했으나 2001년부터 대대 단위로 부대교대가 실시되어 각 대대가 전 구역을 다 담당하게 되었다. 어찌보면 참 아이러니하게도, 명색이 대통령을 지키는 경비부대인데 [[5.16 군사정변]]과 [[12.12 군사반란]]이라는, [[대한민국/역사|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양대 [[쿠데타]] 모두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은 부대, 혹은 그 후신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요직|권력의 핵심 중 핵심에 해당하는 부대]]라, 전직 대통령인 [[전두환]]과 [[노태우]], 그 외에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군사정권 시절의 군인 출신 정치인 상당수가 30단 또는 33단의 단장에 취임했었다.[* 본관 내에 있는 부대 역사관에는 역대 단장들의 사진이 죽 전시되어 있다.] 이 흔적은 지금도 사라지지 않아서 1경비단장([[대령]])은 유사한 성격의 55경비단장과 함께 육군 보병 장교의 [[요직|핵심 진급 코스]] 중 하나다.[* 수도방위사령관이었던 [[김용현(군인)|김용현]] 중장(육사 38기), [[구홍모]] 중장(육사 40기)등이 대령 시절 제1경비단장을 역임했다. 2023년 현재 [[지상작전사령관]]인 [[전동진(군인)|전동진]] 대장(육사 45기)과 제1군단장 [[강호필]] 중장(육사 47기)도 대령 시절에 제1경비단장을 지냈다.] 단가나 영내 여기저기 붙어있는 슬로건에도 [[근위대|근위부대]]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고 있다. 2009년도 노무현 대통령 경복궁 앞 추모식이 있었을 때에도,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여 비상출동 대기한적이 있다. 총기휴대는 없었던것으로 기억. [[2017년 계엄령 모의 사건]]에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문건에 따르면 계엄령의 첫 스타트를 끊는 부대로 예정되어 있었다고 한다. 물론 1경비단 장병들은 이 사실을 꿈에도 몰랐을 가능성이 높다. 애초에 임무가 청와대 지키는 거니까, 명령 받아서 출동하고서도 그게 계엄령 시작인 줄 모를 거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를 떠나 [[북악산]]을 시민들에게 돌려준다고 하니 경비단이 없어지지 않겠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시점이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청와대나 광화문이나 서울 한가운데 있는 건 똑같다는 점, 그리고 [[군사비밀|유사시에 경비단의 역할]] 등을 생각하면 경호부대는 몰라도 경비단 자체는 존속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광화문 이전이 [[공수표]]가 되면서 [[경비단]] 역시 존속이 확정되었다. 2019년, 각 대대 편제가 4개 중대에서 3개 중대로 축소되었다. 30단/33단 시절과 비교하면 절반으로 줄어든 것. 2020년 11월 1일 북악산 일부 구간이 전면 개방되었다. 2022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윤석열 정부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 경호라는 부대의 존재의의가 사라지게 되었다. 55경비단처럼 [[대통령경호처/지원부대|경호실이 통제하는 작전부대들]]은 용산으로 이동했지만 경비단은 여전히 현 주둔지에 남아있으며, 용산으로 가려고 해도 이동할 공간도 없고 기존 국방부 경계부대들이 있어서 이동할 필요도 없다는 보도가 나왔다. 6월 말 현재, 부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으며 우리는 이제 등산객 지킴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081344?fbclid=IwAR2ehQX-otmflqlAP1AqxV53qU3ZA0U0i6TVrbmB6wQUFPQEzINfB1WRn1M#home|"대통령 지키던 '수호신부대', 등산객 안전지킴이 전락했다"]]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 외곽을 경비하는 부대라는 성격이 아니게 된 만큼, 과거만큼 [[요직]]이 아니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서울내에 주둔하고 있는 만큼 그 중요성은 여전하다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