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2연평해전 (문단 편집) === [[제1연평해전]] 패배에 대한 북한 측의 복수 === 교전 시기가 꽃게잡이 철이어서 꽃게 떼를 따라 북측의 [[어선]]단[* 북한 어선단 상당수는 해군이 직접 관리하는 데다가 가끔 승조원들 중 정찰국 요원들이 섞여 타기도 한다.]이 [[NLL]]을 월선하는 경우가 잦았다. 월선하는 어선단은 종종 북한 측 경비정을 대동하여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으며 제2연평해전도 비슷한 형태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우발성이 짙었던 1차 연평해전 때와는 달리 2차 연평해전은 1차 연평해전의 참패를 만회하려는 의도에서 계획적으로 추진되었다는 게 이후 조사에서 드러났다. 해전 발발 직후만 해도 언론이나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북한군과 한국군의 우발적인 충돌인 듯하다고 보는 시각이었지만 후에 북한의 계획적인 도발로 밝혀졌으며, 탈북자들에 의해 [[김정일]]이 해군에서도 영웅이 나와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다는 정황이 신문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일부 자료에는 북한군의 세세한 준비 과정과 그 이후 처리까지도 나와있다. 정황 증거를 볼 때, 제2연평해전은 1999년 [[제1연평해전]]의 일방적 패배에 따른 보복이나 다름없었다. 교전 과정을 보면, 북측은 처음부터 완전한 함정 제압을 노리고 함교부터 선제 포격으로 무력화 시키는 등 당초 발표와 같은 우발적인 교전은 아니었다. 북한의 경비정 자체도, 제1연평해전의 교훈을 살려 경비정의 기동성을 포기한 채 주요 부위를 철갑으로 보강함으로서 아군 발칸에 노출되고도 침몰하지 않았다. 아군 함정에 비해 부족한 화력을 조금이라도 보충하기 위해 해상저격여단 병력을 증원해 태웠기 때문으로 평소보다 많은 보총수와 기관총 사수 및 부사수, [[저격수]]와 7호 발사관 사수 등의 승조원을 배치해 88식 보총과 73식 대대기관총 등 소병기로 공격을 했다는 증언도 기사화 된 적이 있다. 때문에, 제2연평해전이 제1연평해전의 복수를 하려던 북한 지도부의 계획 아래 이뤄졌다는 건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