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제주특별자치도 (문단 편집) === 독특한 문화적 특징 === 제주도의 전통가옥에는 집 뒤뜰에 커다란 나무(주로 탱자나무)를 한 그루 심고, 그 뒤에 담을 따라 수리대(가느다란 대나무)를 심었다. [[동백나무]]도 많이 심는 수종.[* [[제주 4.3 사건]]을 추모하는 배지의 문양이 [[동백나무]]인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마당은 흙바닥을 유지하여 한여름엔 대류현상으로 자연스레 집안으로 시원한 바람이 흘러들게 하였다. 수리대는 바구니, 구덕 등을 만드는 재료이기도 하다. 동백나무로는 기름을 짜거나 열매를 요리해서 먹는다. 제주도 중산간을 돌아다니다 보면 담을 따라서 혹은 밭 한켠에 대나무가 자라는 광경을 볼 수 있는데 그 곳에 예전에 집이 있었다고 보면 된다. 집이 없어진 이유는 당연히 [[제주 4.3 사건]]. 최근 하이킹 코스로 유명해진 [[올레]] 역시 원래는 주택과 큰 길을 연결하는 골목을 칭하는 명칭이었으나 2000년대 후반 [[올레길]]이 유명해지면서 올레라는 명칭의 유래도 유명세를 탔다. 제주는 여자, 돌, 바람이 많다고 삼다도(三多島)라고도 불린다. 하지만 2008년 12월 31일 기준 주민등록인구 상 제주도청이 생긴 이래 처음으로 남자가 여자 인구를 추월했다. 지정학적 특성상 제주의 여자 숫자가 많기도 하지만 환경적 영향 탓에 제주 여자의 생활력이 강하다는 의미도 있다. 제주도는 전통적으로 육지에 비해 여성에게 주어지는 노동량이 많은 편이었다. 전통적인 인식으로는 남녀의 힘을 전부 짜내야 할 정도로 땅이 척박하고 살기 힘든 변방이었다. 그러나 벼농사는 어려워도 육지에서 볼 수 없는 특산물이 많이 나오기도 하여, 실제 인구밀도는 호남평야 같은 곡창지대 다음으로 높은 편이었다. [[삼종지도]]와 같은 여자는 고분고분해야 한다는 권력층의 변질된 [[성리학]] 이념의 영향[* 사실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 영향이 강해서 제주도가 아닌 지역에서 외국과 달리 기성세대가 여자가 육체적 능력이 적게 요구되는 일을 시키는 것을 배려라고 주장하며, 그로써 기성세대가 여자들을 수동적으로 변하게 한다며 세대 갈등도 있는 편이다. 이런 영향이 약한 [[일본]]에서는 무거운 물건을 남자가 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유명하다. 스웨덴처럼 저런 부류의 행동을 여성을 무능력하게 취급한다고 싫어하는 나라도 있다고 한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3407903|#]] [[설문대할망]]이나 육지의 [[마고할미]] 같은 신화에서는 여자가 힘을 쓰는 것도 이상하지 않던 성리학이 변질되어 정착되기 이전의 사회의 흔적이 남아 있다.]이 바다에 가로막혀 잘 퍼지지 않았기도 했다. 그래서 [[자청비]]와 같은 제주도의 여신은 성격이 아주 활달하게 묘사되기도 했다. 육지에서는 여성인 배우자를 집 안에 있어야 한다고 하여 [[아내]], 안사람 등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제주도에서는 '안사람'에 완전히 대응되는 표현이 없었고 '각씨', '부인', '집읫사람(집의 사람)[* 이에 대응되는 남편을 일컫는 말이 '집읫어른(집의 어른)'이라서 여자가 결혼하면 집에 있어야 한다는 표현이 아니다.]'처럼 굳이 여자가 집에서만 머무르지 않아도 된다는 표현이 자주 쓰였다고 한다. 육지에서는 높은 사람일수록 결혼한 여성이 집 안에 있고, 서민일수록 [[가루지기]] 같은 작품에서 묘사되듯 결혼한 여성이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았던 역사 때문에 이런 인식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다가 남자들은 배[* 말이 배지, 실상은 뗏목배 "테우"다. 유배지라 탈출을 방지하는 목적으로 제대로 된 선박의 제조가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타고 멀리 나가는 바람에 과부가 되기 십상이었기에, 여자들은 가사 뿐만 아니라 남자들이 하던 일까지 떠맡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여성의 권한도, 성관계도 비교적 개방적이었다. 그리고 돌담도 많다. 밭의 경계, 무덤 주위 등에 돌담을 쌓는데 거기에 석회나 흙을 바르지 않고 '''돌로만''' 담을 쌓았다.[* 바람이 강한 지역인 관계로, 돌사이를 막아버리면 강풍에 무너지기 때문에, 바람이 빠져나가도록 그냥 쌓는게 오히려 바람에는 강하다.] 게다가 화강암이 많은 본토와는 달리 돌이 '''검고 푸른 [[현무암]]'''이 대부분이다 보니 꽤 이국적으로 보인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070340_STD.jpg]] 사진에서 보듯이 돌로만 쌓아서 구멍이 송송 나 있는데, 이게 바람많은 제주도 환경에 의외로 적합하다고 한다. 큰 바람은 막고 내보낼 바람은 내보내서 돌담이 무너지지 않게 하고, 밭의 흙이 유실되는 걸 막는데 효과가 있다. 지리적 사정으로 바닷바람에 산바람에 태풍까지 불어닥치다보니 나온 결과물.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무너질 담은 무너진다]]. 위험하니 바람 세게 불때 돌담 근처에 가지 말자.[* 가끔 육지인들이 구멍이 송송 뚫린 담을 보고 제주도민이 게으르다거나 가난해서 그렇다는 오해를 하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주도 특색이다. 사람이 사는 집 담은 구멍이 송송 뚫린 축석방식이고, 무덤은 구멍이 없이 촘촘한 2~3중의 축석방식이다. 제주도민들이 절대 돈이 없어서 [[공구리]]를 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즉 바람을 맞아도 극복할 수 있는 살아있는 상태, 바람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죽은 상태에 대한 개념에서 파생된 축석법인 것이다. 최근에는 이런 생각들이 많이 사라지고 육지 이주민들이 늘어나면서 이런 전통적 담은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사실 제주도 돌담을 선호하는 토박이들은 아직도 많고 육지 출신 이주민들도 제주도 돌담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만 최근에는 돌담을 쌓을 현무암을 대규모로 구하기가 힘들어서 오히려 콘크리트 블럭으로 담을 쌓는것보다 비용이 10배 이상은 비싸서 못만드는 것이다. 무덤 1기 주변에 현무암 돌담 하나 쌓는데 수백만원씩 드는 판이다.] [[장남]]이 [[제사]]를 전담하는 '육지'와는 달리 제사를 형제들이 나눠서 지낸다.[* 정확히는 제주도 전통에서 장남은 아버지, 할아버지 제사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고 다른 형제는 할머니, 어머니 제사를 분담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것이 조선조에 주자가례가 널리 퍼지기 이전의 풍속이었다. 평등하고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차남]] 이하의 자식들이 다른 지역의 출신의 [[며느리]]를 얻게 되면서 이것 때문에 가정 불화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크고 작은 문화적 차이를 며느리 쪽에서 고분고분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제법 된다. 요즘은 '육지'의 영향 때문에 장남이 맡아서 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경우에는 장남쪽에서 불만인 경우도 많다. 이런 이유도 있고 해서 제주도의 부모들은 대부분 기왕이면 제주 출신의 며느리를 얻기를 바란다. [* '삼다도'라는 별칭에서 알 수 있듯이 남성 대비 여성 성비가 높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육아 등의 가사 뿐만 아니라 생산적 노동활동에도 종사해야 했고 때문에 여성들의 생활력은 상당한 편이다. 다만 2010년대 들어 남녀성비가 뒤집혔다.] [[경상도]] 여자들이 난폭하고, [[전라도]] 여자들이 생활력이 강하지만 그 난폭한 경상도 여자들과 요리솜씨 등이 수준급인 전라도 여자들 보면서도 생활력 없다고 혀를 차는 게 제주도 아줌마들이다. 괜히 '''억세다'''고 하는게 아니다. 또한 제주도 여자들이 육지 남자하고 혼인하는 경우 역시 시부모와의 마찰을 겪기 쉬운데, 제주도 여자들의 성격상 분명함이 강하고 고분고분함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외지에서 유입되는 인구가 증가하고 육지 사람들의 가치관/인식 변화 및 제주도 사람들의 편견도 바로잡혀지고 있으므로 육지 출신의 며느리를 얻는 것을 긍정적으로 여기는 부모들이 많아지고 있다. 제사 문화의 경우 타 지역에 비해 독특한 면이 많은데 뒤에 나오는 [[빵]]을 올리는 풍습[* 일반적으로 롤케잌이나 소보로빵을 많이 올리며 심지어 제사상에 금기시되는 팥앙금이 들어간 [[단팥빵]]이 올라가기도 한다.]이 있고, [[송편]]의 경우 반달모양이 아닌 납작하고 둥근 보름달 모양으로 만드는데 모양을 내기가 까다로운 편이다. 기름떡이라 하여 별모양의 떡을 올리는데 원래 밀가루반죽위에 별모양의 틀로 찍어서 쪄낸 후 참기름을 발라 윤기나게 만들며, 최근에는 설탕을 묻혀 단맛을 더한다. 고기의 경우 가늘고 길게 썬 돼지고기, 소고기, 생선[* 주로 상어나 삼치살을 이용한다.]살들을 나무젓가락 길이의 꽂이에 꽂아서 산적형태로 만든다. 보통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상 외에도 집을 지키는 귀신을 위해 올리는 문전상[* 제사상보다 작은 크기에 제사상에 있는 음식들을 올린 제사상의 축소된 형태다.]을 올리며 제를 지내기 앞서 집을 지키는 귀신을 위한 문전제를 지낸다. 보통 제사나 차례를 지낼 경우 문전제와 본제사를 합해 2번 제를 지낸다. [[https://www.yna.co.kr/view/AKR20220131026300056|#1]] [[http://www.jeju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23247|#2]] [[https://folkency.nfm.go.kr/kr/topic/detail/2116|#3]] 다만, 최근에 들어서면서 제사 문화도 바뀌면서 문전제를 지내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결혼과 관련해서 다른 지역과 상당히 다른 특유의 풍습이 많다. 함 들어가는 의식이 간소하다. 예를 들자면 함이 들어갈때 육지식으로 '함들어간다~'면서 시끄럽게 들어가지 않고 간소하게 처리하는 편. 그나마도 최근에는 간소화 경향으로 혼서와 봉채비만 달랑 보내고 나머지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을 보통 이틀, 길게는 삼일에 걸쳐 한다. 결혼식 전날에 잔치를 따로 열어 하객을 받고, 다음날 식장에서 결혼식을 연다. 축의금을 내기는 내야되는데 결혼식에 갈 정도는 아니거나 사정이 못되는 사람들은 전날 잔치에 가서 축하 & 식사 & 축의금을 낸다. 이처럼 결혼식 기간이 길어서 부신랑과 부신부라는 제도가 있다. 보통 신랑, 신부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 맡아서 하는데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 진행을 총괄하여 처리하는 존재다. [[미국]]의 best man, bride maid의 예와 동일하다. 신랑과 신부는 예식도 하랴, 친인척들에게 인사도 다니랴 매우 바쁘기 때문에 스케줄 관리, 축의금 대리수령, 이동시 차량 수배, 필요한 물품 준비 등 결혼식과 관련된 일들을 결혼식 내내 부신랑, 부신부가 대신 처리하도록 해서 신랑과 신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이다. 참고로 부신랑에겐 답례로 신랑이 정장 1벌 사주는게 보통이다. [[결혼식장]]을 하루 통으로 [[대관]]해 보통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진행한다. 11시 식이면 10시부터 6시까지 남아 있는 사람들이 꽤 많아 자연스레 두끼를 먹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육지와 또 다른 점 중 결혼 시 [[지참금]] 제도가 있다. 앞서 서술한 여러 사정으로 제주도에서는 여성 또한 중요한 노동력으로 간주되므로, 신부측에 추가로 일정금액의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또한 주변 누군가 결혼식을 하면 며칠전부터 [[카카오톡]] [[프사]]로 그 사람의 [[웨딩]]사진과 [[공지]]를 올려둔다. 제주도민은 육지에 이런 문화가 없다는 것을 많이들 몰라 육지 사람과 서로 신기해한다. [[https://twitter.com/songnunnn/status/1578395602622197763|#1]] [[https://agsdgasdgadsgfa.tistory.com/3349|#2]] 장묘 문화에도 특이한 구석이 많다. 소와 말을 방목해서 키우다보니 [[무덤]]이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무덤 주위로 [[현무암]]을 이용해 네모지게 산담을 두른다. 산담 한 쪽엔 신문([[神]][[門]])이라 하여 약간의 폭으로 문을 터 놓는다. 산자와 죽은자가 공존하는 제주 특유의 철학을 나타내는 것으로 남자 산소는 왼쪽, 여자 산소는 오른쪽에 낸다. 근데 이제는 이 산담 때문에 벌초가 힘들어진다. 산담 주위나 돌 사이로 자라는 잡초는 예초기로 칠 수가 없다. [[파일:external/photovil.hani.co.kr/DSC06216.jpg]] 장묘법 개정에 따라 더 이상은 볼 수 없는 풍습이지만, 과거엔 묫자리를 남의 밭 한가운데에 먼저 쓰고 나중에 밭 주인과 협상하는 경우가 많았다. 협상이라 하더라도 해당 부지를 산다거나 하는 거창한 협상이 아니라 말로 양해를 구하는 정도였다고 하며 그래서 벌초를 다니다 보면 다른 사람 소유인 과수원이나 밭 한가운데로 무단침입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까지 매해 [[음력]] [[8월 1일]][* 양력으로는 [[8월 22일]]~[[9월 24일]].]을 [[임시공휴일]]로 정해 학생들이 벌초에 참여해 조상을 모시고 효를 배우도록 권장한 '[[벌초]][[방학]]'이 있었다. 그러나 [[2010년]] 이후부터는 거의 행해지지 않고 있다. [[저출산]]·[[고령화]]가 심각해지고 [[핵가족]]화가 보편화 되면서 제주도의 주요 행사였던 벌초문화도 점차 간소화된 것. 이 때문에 같은 제주도민인데 벌초방학을 모르는 세대가 생겼다. [[https://www.mk.co.kr/news/society/view/2017/09/625856/|#]] 제주도의 독특한 문화로 [[신구간]]이 있다. 시기는 대한이 지나고 5일째부터 입춘 3일 전까지다. 이 기간에는 원래 있던 신과 새로운 신이 하늘로 올라가 인수인계를 해야하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는 신이 없는 시기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짧은 기간에 그동안 신이 계셔서 함부로 하지 못하던 이사라든가 갖가지 집안 공사를 한다. 오래 이어져온 전통이어서 젊은 세대도 피부로 느낄 정도로 이사가 많고, 나오는 집도 많다. 이 시기는 '대한이가 소한이 집에 갔다가 얼어죽었다'는 말이 있을 만큼, 따뜻한 제주에서도 그나마 추운 기간이다. 따라서 오랫동안 하지 않은 청소를 하더라도 세균이나 바이러스에 노출될 상황이 적고, 농한기인 입춘 이전에 큰 공사를 하기 위해서 이러한 문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https://theqoo.net/2525277215|제주도민이 쓴 제주도 문화1]] [[https://theqoo.net/2531702665|제주도 문화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