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공 (문단 편집) ==== 일본의 고려에 대한 조공 ==== 11세기 중엽 [[고려]]와 [[일본]] 간에는 북[[규슈]]와 금주([[김해]])를 오가는 무역로가 있었다. 고려에 도항하는 일본인들 중에는 상인 이외에 일본국사, 대마도주, 살마주사 등 토산물을 헌상하고 있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의 무역은 명목상 지방관에 의한 고려에의 조공 형식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문종(고려)|문종]]대인 11세기 후반부터 규슈 각지의 지방관과 민간상인들이 고려에 도항하여 ‘방물(方物)’을 바쳤기 때문에, “동쪽에 있는 왜(倭)가 바다를 건너 보배를 바쳤다”는 평가가 내려질 정도였다. 일본에서 내왕하는 선박을 일본인들이 '진봉선(공물을 바치는 배)'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공물을 바친다는 뜻으로 진봉이란 용어 사용은 이미 오래되었으며 일본인이 물품을 진봉하는 항례적인 법규가 제정되었다. 때로는 [[고려]]에서 주는 하사품을 노리고 일본인들이 고려에 진봉하기 위하여 상호간에 경쟁이 심하여 서로 싸우는 폐단까지 생기자, 고려에서는 진봉 그 자체에 대하여 좋아하지 않은 경향을 보였다. 이러한 경향은 일정 기간 내에 일본 상선의 출입선수 횟수에 대하여까지 제한을 두게 만들었다. {{{#!folding 【《[[고려사]](高麗史)에 기록된 일본의 조공 내역》 】 【1056년 [[문종(고려)|문종]] 10년 10월 日本國에서 사신을 보내왔다 문종 27년 7월 日本國人 왕칙등 42인 나전 외에 12가지 물건을 진상 문종 27년 7월 일기도(규슈 나가사끼)구당관 등정안국 등 33인 방물을 진상 문종 27년 11월 日本國 에서 예물과 명마를 헌상 문종 28년 2월 日本國 선두 중리 등 39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4월 日本國 오옹에 등 18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6월 日本人 조원. 시경등 12인 특산물을 진상 문종 29년 7월 日本國 상인 59인 고려에 도착 문종 30년 10월 日本國 승속(승려와속인) 25인 불상을 헌상 문종 33년 11월 日本國 신통 등 소라.해조 등을 흥왕사에 진상 문종 34년 9월 日本國 축전주에서, 방물을 헌상, 살마주(가고시마)에 사신을 보내와 헌상 문종 36년 11월 대마도에서, 방물을 헌상 1084년 [[선종(고려)|선종]] 원년 6월 日本國 축전도의 후지와라,,수은을 헌상 선종 2년 2월 대마도주 구당관, 감귤을 진상 선종 3년 3월 대마도주 구당관, 방물을 진상 선종 4년 3월 日本 상인 중원.친종 등 32인 특산물 진상 선종 4년 7월 대마도의 원평 등 48인 수은.진주.보도.우마 등을 헌상 선종 6년 8월 다자이후의 상인, 수은.진주.궁전.도검 등을 진상 [[예종(고려)|예종]] 11년 2월 日本國에서 감자[* 지금 현재 우리가 먹는 그 [[감자]]가 아니다. 당시에 감자라는 말은 [[감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바이킹]]들이 [[북아메리카]] 북동부 해안에 잠시 도달한 것을 빼면, [[유라시아]]나 [[아프리카]]의 사람들이 [[아메리카]]에 도달한 적도 없던 시기에 그 구황작물 감자가 있었을 리가 만무하다.]를 진상 [[고려사]](高麗史)】}}}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