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평가 (문단 편집) ==== 부정적인 평가 ==== 현대의 한국인들의 조선 왕조에 대한 인식은 마치 [[유럽]]의 [[중세]] 암흑기론이나 [[인도]] [[힌두교]] [[민족주의]] 시점에서의 [[무굴 제국]]등 이슬람계 인도 왕조, [[중국]] [[한족]] [[민족주의]] 시점에서의 [[청나라]], [[튀르키예]] 케말주의 시점에서의 [[오스만 제국]], [[베트남]]의 [[응우옌 왕조]], [[이란]]의 [[카자르 왕조]] 및 [[팔레비 왕조]], 일본 제국 당시 일본 시점에서의 [[막부]]처럼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편에 속한다. 당장 2010년대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유행어 중 하나인 '''[[헬조선]]'''이 현재 대한민국을 조선[* 특히 [[세도정치]]와 외침으로 한참 무너져내려가던 [[구한말]].]에 빗대어 탄생한 유행어이다. 지금 사회가 나쁘다는 얘기를 다른 그 어떤 나라도 아니고 조선에 비유했다는 건 대중들의 인식 속 조선이 엉망진창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단, 조선왕조는 한국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왕조이다. 이는 조선이 한국사 최후의 왕조이고 기록도 풍부한 데다 공교육 및 대중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덕분이다. 하지만 그 친숙함 이상으로 현대 한국 대중에게 [[영고라인|가장 많이 욕먹는]] 왕조이기도 하다. [[경술국치|그 결말이 전쟁 한 번 못 해보고 다른 나라에게 식민지화되는 것으로 매우 비참하게 끝났기 때문에]] 대중의 조선에 대한 반응이 부정적인 것은 어느 정도 필연적인 면이 있다. 최후가 아름다운 나라는 없다지만, 조선은 [[일본 제국]]에게 점령당해서 [[식민지]]가 된 데다가 이후 일제가 조선의 독립운동을 무자비하게 탄압했으며 그 악영향이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통일신라나 고려 등 조선 이전의 국가와는 평가가 다를 수 밖에 없는 데다 시간 차로 따지면 현대와 더 가까운 관계로 조선 이전 국가들보다 더 박하게 평가된다.[* 대표적으로 [[원 간섭기]] 시기는 일제강점기와 맞먹는 암흑기였지만, [[몽골]]이라는 나라가 오늘날에는 완전히 힘을 잃은 데다가 원 간섭기로 인한 폐해가 오늘날에도 체감적으로 와닿지 않을 정도로 극히 미미하고, 오히려 몽골은 한국인에게 있어 호감적인 이미지가 더 강하다. 식민지배 전력이 있는데다 20세기 이후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일본과 2000년대 이후 강대국의 위치를 되찾을 뿐만 아니라 21세기에 제국주의 기조를 보이고 있는 중국과 달리 특별히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할 수 있다.][* 한 술 더 떠서, [[한사군]] 시기는 [[고조선]]이 한나라에 지배되는 암흑기 시기이지만, 까마득히 먼 고대시대여서 관련 기록이 매우 적고, 선진문물이 전파되는 통로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현대 한국인들의 한사군에 대한 악감정은 사실상 없다고 보면 된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의 총독 직할기관이었던 조선사편수회는 타율성론이나 정체성론과 같은 제국주의 시대의 이론을 가르쳤다. 이런 이론들은 20세기 국사 교육의 기초가 되기도 했다. 광복 이후 70년대 이전의 국사 교육마저도 '''"조선은 왜 500년만에 망했는가"'''라는 질문과 전형적인 답변들이 중심이 되었다.[* 다만 세계사를 조금만 파고 들어가보면 500년 이상 존속된 나라도 흔치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장 옆나라 중국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일본은 막부와 천황과의 관계를 어떻게 봐야하는 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지지만 막부 기준으로 볼 때도 500년 이상 존속된 정권은 없다. 그렇기에 단순히 500년이라는 기간에 가치평가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의견도 많다.] 조선이 망한 원인은 한결같이 붕당정치와 내분, 신분차별, 유교, 사대주의, 문치주의, 모화사상이 꼽혔다. 이런 염세적인 국사관을 교육받은 기성 세대들의 역사관과 대중적인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게다가 이 편견들은 80년대에 [[사극]]을 비롯한 대중 매체에 의해 강화되기도 했다. 계속해서 이론과 연구 경향이 바뀌는 역사학계와 대중들의 역사관이 차이가 나는 것은 필연적이었으며, [[조선/오해|조선에 대한 오늘날 역사학계와 대중의 인식이 갈수록 괴리되는 것도 당연한 모습이다.]][* 대중들이 알고 있는 조선시대의 사회상은 17세기 이후 성리학 근본주의 국가로 변모한 조선이다.] 온라인에서도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 두드러진다. 조선사에 대한 토론에서 조선에 뭔가 우호적인 의견이 나타난다면 논리적인 반박은 고사하고 [[국뽕]] 또는 [[유교 탈레반]]이라는 비난이 쏟아져 나온다. 또한 [[이영훈]] 등 [[뉴라이트]] 세력이 유튜브 등지에서 활동하면서 [[세종(조선)/비판과 반론#s-5|"세종은 노비종모법으로 노비를 늘린 암군이다"]] [[조선/오해#s-6.2|"조선은 같은 민족을 노예로 부린 유일한 나라"]]라며 등의 선동이 퍼지는 것도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조선을 세운 [[태조(조선)|태조 이성계]]와 신진 사대부들을 매국노라고 비난하거나, [[진실의 눈과 머리|진눈머]]처럼 중국에 대한 사상적 사대주의와 모화사상을 이유로 조선이 아예 한국사임을 부정하기도 한다. 보통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조선의 부정적인 모습이란 [[성리학]]과 [[붕당]] 정치 등 백성들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밥그릇 싸움만 한 지배층. [[유교]]와 [[신분제]]로 얼룩진 극도로 보수적인 사회와 [[꼰대]] 같은 정치인들, 그리고 그로 인해 정체된 사회.[* 당장 조선은 사람들에게 극보수적인 사회의 상징이다. 당장 꼰대 같은 사람이 나오면 사람들이 조선에서 왔냐고 비아냥거리는걸 생각해보자.] 극악한 사서삼경 지상주의, 과거급제 지상주의에 광적으로 눈이 멀어[* 시험만능주의에 빠져 수능과 고시 등 각종 시험에 합격하누사람에게 과도한 보상을 주는게 당연하다는 사고방식이 팽배한 현대 한국인이 가할 수 있는 비판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생사를 망각하고 도취돼 백성들의 모든 것을 결박하던 인습 등으로 대표되는 대중적인 인식들은 학계에서 실제 연구되는 조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른 잘못된 고정 관념이 깊게 정착하여 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신분제]]만 하더라도 조선 이전의 왕조들도 모두 신분제 국가였으며, 이미 [[과거제]]에서 나타나는 탈 귀족화된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이 전대에 비해 신분제가 좀 더 유연해졌다는 사실 등은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거의 알지 못하는게 현실이다. 심지어 [[백정각시놀이]], [[씨받이]], [[고려장]] 처럼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았던 풍습들을 가지고 조선을 비난하는 황당한 풍경들마저도 자주 볼 수 있다. 이는 대중들이 조선에 대해서 굉장히 잘못된 정보들을 바탕으로 기본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거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인식하고 비난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그런데 조선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별개로 조선의 문화만이 한국 고유의 전통 문화라는 인식도 모순되지만 은연 중에 강하게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선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왕조이기도 하면서 다른 왕조들의 역사나 문화는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정보량이 많기 때문에 욕도 많이 먹는다고도 볼 수 있겠다. 다만, 구한말이 신라말, 고려말에 비해 더 욕을 먹기 쉬 이유는 그 폐해가 한국인들에게 직접적으로 체감되기 때문이다. 현대와 시차가 있어 먼 역사에 불과한 한사군, 나말여초, 원간섭기, 여말선초와 달리 조선의 망국은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한국전쟁]]와 같은 현대사의 연이은 비극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다소 논란이 있을 수는 있지만 현대 한국인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북한]]이라는 막장 집단이 존재하는 이유가 조선이 근대화에 성공하지 못하고 국체를 보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도 주장할 수 있다. 물론 당시 근대화에 성공한 아시아국가는 사실상 일본뿐이었다는걸 감안할 필요는 있지만(물론 어디까지나 근대화로 한정지었을 때의 이야기이지 국체 보존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중국과 태국도 조선에 비해 비교적 성공을 거두긴 했다.) 어쨌든 대중이 나말, 여말에 비해 구한말의 실패에 감정적으로 유독 박한 것은 단순히 사료 부족 문제 때문만은 아니다. 그리고 신라말과 고려말은 조선말과는 다르게 구왕조가 자연스럽게 무너지고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데 성공했고 그 과정에서 외세가 개입하지 않거나 개입했어도 그들을 제압했으니 부정적인 영향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러나 조선말은 [[일본 제국]]이라는 외세의 개입을 막지 못했고, 결국 그 외세에 의해 국가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며, 새로운 국가도 세우는데 실패했다. 또한 외세가 개입한 계기를 제공하였던 것은 당시 통치자였던 고종의 탓이 컸다.[* 물론 통치자로서 고종의 실책도 컸지만 대한제국이 무너진 것은 결국 을사오적을 위시한 친일파의 매국행위가 가장 결정적이다. 근대적인 인식이 부족했고, 권력욕이 컸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고종은 국체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광무개혁 같은 근대화 작업도 진두지휘했다. 일제의 방해도 방해지만 결국 이 노력을 모두 물거품으로 만든건 고작 일신(一身)의 안녕을 위해 조국과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매국노들었다.] 2010년대 후반 이후 중국의 내정간섭 및 문화침탈, 역사왜곡으로 인해 중국에 대한 인식이 최악이 되면서 성리학의 교조화로 인한 모화사상, 중국에서 기원한 유교, 정확히는 성리학에 입각하여 중국의 변방임을 천명하는 등 조선이 친중(정확히는 명나라에 대한 사대) 기조를 보인 것이 중국의 한국사 왜곡에 빌미를 제공해 줬다는 인식 때문에 한국인들 중 조선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정작 당시 조선인들은 현대 한국인들의 편견, 중화권 특히, 중국(정확히는 중국 공산당 치하의 중국 대륙)에서의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 또는 한반도는 중국이 수복해야 할 영토다라는 식의) 아전인수성 해석, 일본에서의 혐한 및 극우사관에 입각한 역사인식과는 달리 당시 중국인 명나라를 맹목적으로 추종하지 않았으며 당장 세종대왕부터 당시 중국(명나라)사람들을 "중국 사람은 거지(擧止)도 똑똑하고 말도 재치 있다. 그러나 그 심술(心術)이 좋지 못하고 풍속이 박하여, 한 사람도 임금을 사랑하는 자가 없다. 내관(內官) 같은 것들은 책망할 가치조차 없다. 그러나 김만(金滿)이 요동(遼東)에 가서 태종 황제(太宗皇帝)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고도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으며 일어나서 춤을 추고 조금도 애통해 하는 심정이 없어 보였고, 그는 ‘황제의 명령이 아직 이르지 않았다. ’고 하니, 그가 이렇게 못 되었다. 어쩌면 중국 사람이 이 모양일까. 아마도 북경에는 사람이 많아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고 똑똑하긴하나 심술이 좋지 못하고 풍속이 박하다며 비판한 기록이 있다.][* 한편으로 명청시기 중국인들이 현대 중국인들의 역사왜곡 행위를 전혀 이해하지도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낄 것이다. 당장 현대 중국의 노인층부터가 시진핑 정권의 역사, 문화 등의 왜곡행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유는 당연히 중국과 타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그 정체성이 전혀 다르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