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공산당 (문단 편집) == 1920년대 공산주의 배경 == [include(틀:일제강점기 한국 공산주의 단체)]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기원에 대해 1980년대까지의 학계 연구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를 대립하는 운동으로 봤지만, 1990년대 이후 학계 연구로 식민지의 특수성으로 인해 한국 사회주의는 민족주의의 한 분파에서 출발했음이 밝혀졌음을 이준식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가 말하는 한국 사회주의의 기원에 대해 밝힌 "역사 연구자들의 노력"은 [[임경석]] 교수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뒤늦게 사회주의자를 독립유공자로 지정하게 된 데에는(중략)사회주의자로 분류되는 혁명가 대부분이 계급 혁명에 앞서 민족 혁명을 주장하고 그것의 실현을 위해 온몸을 바쳐 싸웠다는 사실이 역사 연구자들의 노력에 의해 하나둘 밝혀지면서 포상의 근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중략) 사회주의 계열의 운동조차 그 출발점은 사실상 민족주의였다. > >1980년대 중반까지 사회주의운동사 연구를 주도해 온 몇몇 연구자들은 사회주의 운동이 코민테른과 소련의 지도 아래 계급 혁명을 추구한 것으로 보았다.(대표적인 보기가 서대숙, 《한국공산주의운동사 연구》, 김준엽•김창순,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로버트 스칼라피노•이정식, 《한국공산주의운동사》 등이다.) (중략) 그러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이 꿈꾼 것은 계급 차별이 없는 사회만은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강력하게 당시 사회주의자들을 혁명 운동으로 이끈 것은 민족 해방에의 열정이었다. 기본적으로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문제 해결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민족 해방이었다. 민족 해방을 이룬 뒤 계급 해방을 이루자는 일종의 2단계 혁명론이 대세를 이루었다. > >흥미로운 것은 한국 최초의 사회주의자들이 이전부터 존재하던 독립 운동의 한 분파에서 갈라져 나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을 전후해 고양되고 있는 국제 혁명 운동의 분위기를 적극 활용하려고 한 일부 혁명적 '''민족주의자들이 사회주의를 새로운 독립운동의 이념으로 받아들임으로써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민족의 독립을 위한 활동을 벌이다가 사회주의를 수용하게 된 사회주의자들에게 운동의 일차적인 과제는 독립이었다. '''민족 해방을 위한 새로운 이념으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였다'''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실제로 사회주의 운동에서 활약한 인물들의 출신 배경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상당수가 '''사회주의를 수용하기 이전에 이미 독립 운동에 종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그것이다. >---- >이준식, [[https://dlps.nanet.go.kr/SearchDetailView.do?cn=PAMP10000000068181&sysid=nhn|독립운동가 김한 학술회의 기조발제]] 독립운동가 중 급진적 분파가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다. 1920년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모임과 독서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여기에 힘 입어 공산주의 운동가들은 공산주의 단체를 세우기 시작했다. 국내에서는 [[서울청년회]]', '신사상연구회' 등이 세워졌고, 일본에서는 유학생을 중심으로 '북성회'가 만들어졌다. '서울청년회'는 서울파, '신사상연구회'는 [[화요파]], '북성회'는 [[북풍파]]의 기원이 된다. 이런 단체들은 국내외 공산주의 운동의 전파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해주었고, 국외에 있던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와도 관계를 맺으며 성장했다.[* 파벌들 간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화요파는 이르쿠츠크파와 가까웠다. 서울파는 국내 공산주의 운동을 강조했기에 국외 파벌은 물론이고 국내 파벌들까지도 껄끄럽게 봤다. 북풍파는 조선공산당 창당 전후로 주도권을 놓고 화요파와 다투었다.] 1924년에는 러시아 한인 2세들을 주축으로 [[조선노동당(1924)|조선노동당]]이 결성되었다. 박찬승 교수에 따르면 독립운동가들이 사회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은 다음 이유 때문이다. 우선 제국주의 열강들이 조선 독립의 열망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던 반면, 소련 정부는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당시 식민지 조선 대중들의 처지가 사회주의 이념 확산의 토양이 되었다. 농민 · 노동자 등 절대 다수의 대중은 민족적 · 계급적 억압을 받고 있었다. 그들의 비참한 처지를 개선할 길은 해방과 혁명의 길 외에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피지배계급 중심의 혁명철학인 사회주의 이념은 그 성격상 식민지 조선의 대중들에게 효과적인 무기를 제공하며 그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2829615&cid=62049&categoryId=62049|#]] [[안재성(작가)|안재성]]은 독립운동가들을 영웅이라 칭하며 그들이 공산주의를 받아들인 것에 대해《잃어버린 한국 현대사》에서 다음과 같이 평한다. 다음 중 '자본주의의 야만성'이란 사회주의와 경쟁하며 사회주의적 요소를 받아들이고 노동운동가들의 노력으로 복지 제도를 만든 2020년대의 자본주의가 아니라 노동착취로 노동자들이 대량 죽어나가던 시절의 자본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날 것 그대로의 자본주의가 있던 시절이 바로 조선공산당의 활동기이다. 실제로 아래 [[경성트로이카]] 부분에서 [[이재유]]는 여공들이 높은 비율로 열악한 노동환경 때문에 죽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죽은 영웅들의 이야기다. 사람들은 영웅에게서 자신들과 같은 평범하고 이기적인 모습을 찾으려 애쓴다. 그러나 영웅들의 삶은 평범한 이들의 그것과 다른 게 분명하다. 영웅을 부정하고 싶은 우리네 보통사람들의 심정대로 어떤 위대한 인간도, 완벽한 이념도, 불변의 도덕이나 진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다. 공산주의 이론과 실천이 가진 맹점들, 치명적인 오류와 잘못들에 대해서는 더 많은 아픈 지적을 나열할 수 있다. 다만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제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운 그들의 생애를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민족의 자유를 위해 젊음을 바친 헌신성을 본받자는 뜻만은 아니다. 4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평등의 가치를 체계화하여 자본주의의 야만성과 투쟁했던 이들이기에 더욱 소중하다. 비록 오류와 잘못도 많지만 우리 역사에 평등의 가치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이들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 책을 인류보편의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운, 그러나 시대의 한계에 갇혀 비극적으로 죽어간 영령들에게 바친다. >---- >안재성,《잃어버린 한국 현대사》머리말 >공산주의의 견제로 자본주의가 반강제로나마 도덕성을 갖추어 오늘날의 민중이 민권을 확보하게 되었다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관술을 포함한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했던 내용이 오늘날 상당 부분 수용되고 있는 현실이 이를 말해준다. >---- >안재성,《이관술 1902-195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