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귀족 (문단 편집) ==== 자작 ==== * 김호규: 김성근의 작위를 계승. * 민병삼: 민영규의 작위를 계승. * 민충식: 민영소의 작위를 계승. * 민형식: 민영휘의 작위를 계승. 앞에 서술한 남작 민형식과는 동명이인이다. 아버지인 민영휘와는 여러모로 성격이 달랐으며 어려운 사람을 돕기를 좋아하고 의를 숭상했다고 한다. 글씨도 잘썼다고... 젊은 시절 [[나철]], [[오기호]] 등의 을사 오적 암살단에 거액의 자금을 댄 사실이 적발되어 유배되기도 하고. 신민회에 가입하기도 했으나, 1936년 아버지인 민영휘가 죽자 작위를 그대로 계승했다. 이 때문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민영휘의 친자가 아닌 양자인데, 민영휘는 소실 소생의 서자들은 있었지만, 정실 소생의 적자가 없었기 때문에 양자를 입양했다. * 민홍기: 민병석의 작위를 계승. * [[박부양]]: 박제순의 작위를 계승. 계승 당시 10대였기에 청년 자작으로 불렸다. 당시로선 드물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가 사고를 당해 기사가 나기도 했다. 훗날 반민 특위에 체포되었으나 반민 특위가 와해되면서 처벌을 면했다. * 윤강로: 경술국적인 윤덕영의 작위를 계승. 윤덕영의 손자로 윤덕영의 아들이 일찍 사망하자 대를 잇기 위해 양자로 들였다. 반민 특위에 소환되었으나 1940년 작위를 계승했을 때 나이가 20대 초반에 불과했고 곧이어 반민 특위가 와해되었기에 [[불기소처분]]되었다. 이후 병원을 경영했다고 한다. * 이규원: 이하영의 작위를 계승. * 이창훈: 을사오적인 이근택의 작위를 계승. 아버지와 함께 떵떵거리며 살다가 광복 2년 뒤인 1947년 사망했다. 이창훈의 자손들은 작위를 계승받지 못했기에 반민 특위의 조사 결과 풀려났으며 이후 교육계에 활발히 진출했다. 특히 이창훈의 손자들이 공주 대학교에서 교수와 총장들을 역임하며 영향력을 끼쳤다. * 이택주: 왕족인 자작 이완용의 작위를 계승. * 이충세: 이근명의 작위를 계승. 이후 손자인 이종승까지 작위가 계승된다. * 이해국: 정미칠적인 이재곤의 작위를 계승. * 이홍묵: 정미칠적이자 경술국적인 이병무의 작위를 계승. * 임낙호: 정미칠적인 임선준의 작위를 계승. 이후 손자인 임선재까지 작위가 계승된다. * 조대호: 정미칠적이자 경술국적인 조중응의 작위를 계승. 이후 손자인 조원흥까지 작위가 계승된다. * 조중수: 경술국적인 조민희의 작위를 계승. 이후 손자인 조용호까지 작위가 계승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