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사편수회 (문단 편집) == 설립 이전 == 《조선사편수회사업개요》 제1장 〈총설〉에 따르면, >조선의 문화는 그 연원이 매우 오래고, 우수한 것도 적지 않으며, 정치·경제·문학·예술·풍속·가요 등에서 각각 그 특색을 갖고 있지만, 그것을 학술적으로 연구한 것이 없고, 수천 년에 달하는 문화변천의 흔적을 더듬을 만한 사승(史乘)을 찾아볼 수 없음은 실로 유감으로 여기는 바이다. 따라서 일한병합이 되자 [[데라우치 마사타케|데라우치 총독]]은 시정을 시작함에 있어서 조선에 가장 적절한 새로운 정치를 펴기 위해 먼저 취조국을 설치하여 구관(舊慣)제도의 조사를 행하게 하였고, 아울러 조선사의 편찬을 계획하였다. 그러나 그 계획은 미처 구체화되기 전에 여러 차례 제도 개혁이 있었고, 이 구관제도 조사사업은 [[다이쇼 시대|다이쇼]] 4년([[1915년]]) [[조선총독부 중추원|중추원]]으로 이관됨에 따라, 중추원에서는 특별히 편찬과를 두어서 조선반도사의 편찬에 착수하였다. 이것이 총독부의 조선사 편찬계획의 첫걸음이었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소규모 사업으로는 도저히 조선사 편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음은 분명해졌을 뿐만 아니라, 고기록(古記錄)·고문서, 그밖의 사료라 할 수 있는 문헌들이 점차 인멸되어 사라지고 있는 실상에 비추어, 그 규모를 한층 확대하여 가급적 신속히 편찬해야 할 필요를 인정하고, 다이쇼 11년([[1922년]]) 12월 총독부 훈령 제64호로써 조선사편찬위원회 규정을 공표하고, 조선 역사에 조예가 깊은 일본과 조선의 학자들을 가려 뽑아 고문, 위원으로 임명하고 그 조직을 완비하였다 라고 적고 있다. 이처럼 1922년에 조선사편찬위원회가 설립되었고, 이 위원회가 조선사편수회의 전신에 해당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