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시대 (문단 편집) == [[사화|사화기]]: 16세기 전반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whrhkdwh.jpg|width=100%]]}}}|| || {{{-1 [[중종(조선)|중종]] 시기 급진 개혁을 추진한 [[조광조]]}}} || [[연산군]](10대) 시기,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과 강력한 왕권 강화를 꿈꾸는 연산군의 의중이 서로 꼬이며 [[무오사화]]와 [[갑자사화]]라는 두 차례의 [[사화]]가 일어나게 된다. [[사림]]이 화를 입었다 하여 '[[사화]]'라 일컬어지지만, 사화와 관련해 피해가 컸던 것은 사림보다는 훈구 쪽이었다.[* [[무오사화]]에서 처벌받은 사림은 적었으며, 훈구도 함께 타격을 입었다. [[갑자사화]]의 경우, 사림 이전에 훈구가 대놓고 집중 타깃이 됐다. 당시 사림의 세력이 훈구에 비해 작았던 것도 이유로 들 수 있다.]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킨 연산군은 이에 대한 역풍으로 신하들이 일으킨 [[중종반정]]을 맞이하여 폐위되고 만다. 이후 신하들에 의해 추대된 [[중종(조선)|중종]](11대)의 등극과 함께, 왕을 몰아낸 공신세력들은 추가적으로 훈구세력이 되어 더욱 강력한 권력과 특권을 차지하게 된다. 한편 연산군 시기 크게 배척을 받은 사림도 반정공신[* 대표적으로 [[박원종]], [[김류]], [[이귀]] 등이 있다.]들의 협조를 받아 영향력을 어느 정도 회복하게 된다. 하지만, 신하에 의해 왕이 쫓겨난 사태와 더불어 왕권은 건국 초에 비해 많이 약화됐으며, 본래는 관료를 지칭하던 양반이 지배계층으로 계급화, 고착화 되면서 조선은 초기 중앙집권화 법치국가의 모습이 약해지고 사족이라는 집단이 양반으로써 양인 위에 군림하는 반상제 체제의 형태를 띄게된다. 사림 가운데 개혁파였던 [[조광조]]는 한때 국왕인 중종의 신임을 받아 개혁정치를 추진했으나 훈구파의 반발로 말미암아 실각, 숙청당한다.([[기묘사화]])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