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의용대 (문단 편집) === 본대 잔류와 한국 광복군 === 한편 대다수가 화북으로 이동하면서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 의용대 본대에는 대략 100여 명 정도가 잔류하였다. 이들은 중국 국민당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면서 1942년 [[김구]]가 이끌던 중경의 [[임시정부]]에 합류,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제되었다. 이 과정은 [[조선민족혁명당]] 항목에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조선민족혁명당]]과 조선의용대를 이끌었던 김원봉은 임시정부 소속으로 활동하게 되었지만, 우익 진영이 대다수인 임시정부 요인들과 갈등을 일으키며 독자적인 활동을 고집했다. 때문에 특히 광복군 총사령관 지청천과 갈등을 벌였고 결국 지청천은 광복군의 주요 활동에서 김원봉이 통솔하는 조선의용대 부대를 제외했다. 때문에 광복군이 이룬 사실상 모든 활동과 업적에서 김원봉과 조선의용대는 참여하지 않았다. 해방 후에 귀국하여 활발한 좌익 활동을 펼쳤으나, 미군정과 우파 세력이 강한 남한에서 활동이 여의치 않자 1948년 남북협상회의 참석차 북한을 방문한 이후 그대로 잔류하였다. 조선 의용대 대장 김원봉 역시 [[8월 종파 사건]] 이후, 1950년대 후반 임정 출신 납북자들과 같이 중립화 통일안을 주장하다 숙청당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