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성민 (문단 편집) === 첫 번째 결혼 === 고등학생 시절부터 배우 [[최진실]]의 팬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증언에 의하면 최진실의 사진이 인쇄된 책받침과 여러 사진들을 갖고 다니며 나중에 꼭 최진실과 [[결혼]]할 거라고 밝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당시 그 결혼이 훗날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1998년]] [[12월]]에 방송을 통하여 서로를 처음 만난 후, 조성민이 구애하여 둘의 관계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그와 최진실의 연애는 순탄치 않았는데, 나이 차이[* [[1968년]]생인 최진실이 조성민보다 5살이나 많았다. 당시만 해도 여성 연상의 커플은 드물었다.]와 서로의 직업적 특성 등을 들어 조성민의 아버지[* [[1947년]]생으로 실업야구 선수를 거쳐 [[한일은행]] 간부였었다.]와 최진실의 어머니([[정옥숙]]) 모두 결혼을 반대했기 때문이다.[[http://cafe.daum.net/_c21_/bbs_search_read?grpid=EV&fldid=19x&datanum=6162&q=%C1%B6%BC%BA%B9%CE%B3%AA%C0%CC&_referer=V7kfJwkeLEGMZxGlgqZEmeDh5RJEtrauM1TTynxDWCP1SstLIO3lqRyjZt.r8NwI|결혼 전 기사]]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11847|이혼 직전 기사]] 이때 조성민은 자살 기도까지 시도하였고, 결국 양가의 허락을 받아내어, [[2000년]] 12월에 [[결혼식]]을 올려 최진실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게 된다. 결과론적이지만 이것이 조성민과 최진실, 두 사람의 가족 모두에게는 본격적인 비극의 시작이었음을 감안하면 양가가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됐다. 2001년 8월 1일 첫째 환희를 낳았다. 후에 장모였던 [[정옥숙]]이 밝히기를 이 시기에는 두 사람의 사이가 원만해서 조성민은 [[육아]]에 엄청난 공을 쏟았다고 하며, 3살 무렵까지 아버지, 어머니 사랑을 듬뿍 다 받았던 아이라고 증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12월 18일]] 조성민은 자신의 사무실에 기자들을 불러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뒤 최진실을 유책배우자라고 비난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출산]]을 앞둔 최진실을 [[폭행]]했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그러나 최진실이 이혼을 강하게 반대하여 결국 소송은 못 걸었고, 대신 별거를 택했다. 이에 조성민은 2004년 9월까지 최진실에 대해 자주 [[명예훼손]]을 일삼았다. 2003년 3월에는 저 유책배우자 발언 때문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 시기의 행동은 씻을 수 없는 과오이며, 최진실의 가족들과 본인의 자식들에게도 큰 불행을 떠안겨 주게 된다. 결국 2004년 8월 조성민은 자택에서 최진실을 [[가정폭력|폭행하였고]], 최진실은 더 이상 혼인 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이혼]] [[소송]]을 제기했다. 9월 합의이혼했고, 조성민이 슈크림빵 사업을 하며 최진실 가족을 상대로 빌렸던 돈을 갚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친권]]은 모두 최진실에게 넘겨주었다. 2002년부터 2004년 사이 최진실을 향해 명예훼손을 일삼은 건 사후인 아직까지도 대중들에게 조성민이 용서받지 못한 큰 과오 중 하나. 기자회견의 내용이 전부 최진실을 비난하거나 [[불륜]]에 대한 [[자기합리화]], 혹은 최진실의 혼전 사생활 등을 논하는 명예훼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조성민이 최준희를 임신하고 있었던 시기부터 최진실을 여러 차례 폭행한 사실 또한 대중들의 비판을 받았다. 말년에 자신의 잘못을 어느 정도 시인하고 아버지로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느 정도 평판이 나아졌다. [[2008년]]에 전처 최진실이 사망한 이후에 아이들의 [[친권]][* 부모가 이혼한 뒤 친권이 한쪽에게만 주어졌을 때, 친권을 가졌던 쪽이 사망한 뒤 다른 쪽이 친권을 회복하는지, 아니면 다른 쪽이 친권을 상실한 것과 같이 봐서 [[후견]]이 개시되는지는 그때까지 명문의 규정이 없었다. 결국 [[2011년]] 법이 개정되어 친권자동부활 금지 법안이 명문화되었고, 2013년부터 발효되었다. 일명 '최진실법'.]이 자신에게 있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을 야기했다.[* 이게 더 씁쓸한게 최진실의 자살 이후 찾아온 조성민을 보고 여론은 욕하던 마음을 거두는 분위기였으며 '그래, 그래도 한때 불같이 사랑해서 결혼한 사람이었는데 이런 비극이 일어났으니 마음이 안 좋겠지~' 라는 동정론까지 일었다. 어떤 신문은 따로 칼럼을 써 그를 응원할 정도로 분위기가 숙연했다. 그런데 그 직후 갑자기 재산을 노린 듯이 느닷없이 친권주장이라니. 여론은 전보다 더 악화됐고 '조문도 재산을 노리고 온 거였어?' 등등 경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조성민이 친권을 갖게 될 경우 아이들이 물려받은 최진실의 재산을 조성민이 관리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었고 네티즌들이 [[다음 아고라]]에서 반대 투표를 하기도 했다. 정옥숙 또한 그가 자녀들의 생일에 조차 한 번도 오지 않았다면서 반발하였다. 이에 조성민은 돈 문제에 관해서 최진실의 개인재산을 신탁재산으로 바꾸어 아이들을 위해 관리하려는 생각이었다고 해명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