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순제 (문단 편집) == 행적 == >"구국봉사단부터 시작해서 영남대, [[육영재단]]까지 사실상 도맡아 한 사람이 조순제로 알려져 있다. 청문회장에서 강훈 변호사가 박근혜에게 물었다. "박근혜 후보는 조순제 씨를 아십니까?" 박근혜가 "모릅니다"라고 했다. TV를 보고 있던 나는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설마 박근혜가 조순제를 모른다고 대답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 [[정두언]] 회고록 조순제는 조동찬과 임선이 사이에서 1940년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친부 조동찬이 1947년 교통사로를 당하고 몇 개월 후 사망하고, 이후 1955년 친모 임선이가 최태민과 결혼하게 되면서 최태민의 의붓 아들이 된다. 조순제는 사이비 교주에 바람둥이였던 [[최태민]]을 탐탁치 않아 했는데[* 녹취록에선 최태민이 원래 엉망진창인 사람이었는데 자기 모친 만나 인간 됐다면서 친모인 [[임선이]]의 능력을 높이 사고 반대로 최태민은 평가절하하기도 했다. 다만 [[최재석]]의 경우, [[임선이]]가 친자식만 챙기는 악덕 계모였다며 그녀를 평가절하했다. 참고로 조순제도 임선이와 사이가 그리 원만하진 않았다. 애초 조순제는 어릴적 자길 반 버리다시피 친척집에 남겨두고(조순영은 너무 어려 최태민가에서 자랐다고 한다) 최태민에 재가해 어린 시절 오랜 기간 떨어져지낸 임선이를 원망했다고 한다.], 이후 조순제는 1960년대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문화공보부 장관 비서를 지내며 나름대로 평범하게 지내게 된다. 그러나 이후 최태민은 조순제를 중용하게 되는데, 이는 다른 자식들은 아직 나이가 어린데다[* 최태민 입장에선 다섯째 부인쪽의 의붓 아들이지만, 조순제는 1940년 생으로, 최태민의 첫째 부인이 낳은 최순영보다도 7년이나 먼저 태이났다.] , 조순제가 당시 기준으로 영어도 잘하며 대학을 나온 엘리트였기 때문. 조순제는 최태민을 탐탁치 않게 여기긴 했으나, 최태민이 박근혜와 연줄을 맺은 이후부턴 권력 곁에 머무르는게 나쁜건 없어 협력했다고 한다. 이후 최태민과 대한구국선교단[* 이후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으로 이름을 바꾼다.]을 만들어 홍보실장 직함을 갖고 실질적으로 사업 아이디어를 내는 등 실무를 챙겼으며, 1980년대엔 박근혜가 당시 이사장으로 있던 영남대학교 부속회사 임원으로 재직하고, 한국문화재단과 육영재단 일을 사실상 총괄 하는 등 최씨 일가와 박근혜의 오른팔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하지만 1980년대 말 부정입학 등 영남대 비리 사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면서 결국 [[박근혜]]가 영남대를 떠나게 되자([[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110200209214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8-11-02&officeId=00020&pageNo=14&printNo=20644&publishType=00020|당시 기사]]), 본인 또한 일련의 업무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때쯤부터 조순제도 박근혜와 최씨 일가로부터 슬슬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했으며, 최태민이 정수장학회를 맡아달라는 부탁도 거절하면서 박근혜와 관련한 모든것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