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영남 (문단 편집) == 개요 == [[대한민국]]의 [[가수]]. [[1968년]] 말 데뷔해 한국 대중음악과 성악을 가요에 접목시켜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가요계에서 최초로 [[성악]]을 접목시킨 사람은 1940년대부터 1950년대까지 활동했던 [[현인]]이 시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본업인 [[음악]] 뿐 아니라 작가, 화가, 방송 MC, 라디오 DJ 등 다방면으로 활동해 왔다. [[솔비]]나 [[구혜선]], [[홍서범]] 등도 종합 예술인임을 자처하고 있지만, 이들보다 앞선 세대 인물로는 조영남이 원조라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현재는 성희롱, 친일 선언, 그림 대작 등[* [[https://casenote.kr/대법원/2018도13696|대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현대 미술에서 작가의 역할이 독창적인 아이디어(화투라는 독특한 소재)의 창출에 있고, 여러 명의 조수를 동원해 작업을 분담하는 추세이기에 그림을 구입한 사람이 해당 작품이 조영남의 친작임을 상정할 근거가 없으며, 따라서 작품 생산에 있어서 다른 관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리지 않은 것이 사기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판결문에서나 법적 다툼의 맥락에서는 '대작'이라는 가치판단성 판단이 배제되어 있으며 '조영남 그림 대작' 등의 프레임은 조영남 개인에 대한 것일 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생산방식을 부정적 방향으로 이해함을 전제하기에 조영남의 구설이나 기타 개인적 논란과 상당히 맥이 다르다.] 각종 사건사고로 여러가지 [[구설수]]나 계속해서 만들어대는 [[트러블 메이커]]로 인해 [[평판#s-1|평판]]이 상당히 안 좋은 [[연예인]] 중 하나이다. [[황해도]] 출신이라 분단의 아픔과 지역감정의 대립 등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역감정]]으로 갈라서기 시작한 [[경상도]]와 [[전라도]]의 화합을 내포한 [[화개장터#s-2|화개장터]]라는 곡을 불렀다. 참고로 그는 작곡만 했고 작사는 친구인 [[김한길]]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문화관광부장관]]이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