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영남 (문단 편집) === 데뷔 전 === 1945년 5월 13일(음력 1945년 4월 2일), [[황해도]] [[평산군]][* 북한 행정구역 기준 [[황해북도]] 평산군]에서 태어나, [[1.4 후퇴]]의 피난 행렬에 섞여[* 그가 불렀던 번안곡인 [[내 고향 충청도]] 가사 첫 구절이 '일사후퇴 때 피난 내려와'로 시작한다.] [[충청남도]] [[예산군]]으로 이주했다.[* 조영남의 노래 중 '삽다리'라는 노래의 가사에 '내 고향 삽교를 아시나요'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을 말한다. 예산군 삽교면(현 삽교읍) 두리 642번지가 사실상의 고향이라고 한다.] 조영남은 중학교 졸업 후 서울로 상경해 [[용문고등학교(서울)|용문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사대부고]], [[대광고]] 입시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시고 무시험 입학이 가능한 강문고(現 용문고)에 입학했다. 10회 졸업생이며 동기생으로 [[백일섭]]이 있다. 예산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혼자 상경해 큰 누나의 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한양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했다. 그러다가 [[1963년]]에 한양대학교를 [[자퇴]]하였는데, 자퇴의 이유가 재밌다. 2013년 10월에 방송된 SBS '[[좋은 아침]]'에 조영남은 한양대 성악과 후배 김승일과 함께 출연하여, 한양대를 자퇴한 이유를 설명하며 "2학년이 됐는데 신입생 여자 아이들 중에 정말 예쁜 여자가 들어왔었다. 그 여자가 한양대학교에 오는 걸 매일 몰래 봤다. 걔가 입학한 후로 온 정신은 '그 애와 어떻게 이야기를 할까'였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내가 사회를 보면서 걔를 의식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약혼자가 있는 여자였다. 학교에서 그 여자와 내가 데이트 한다는 소문이 났고 약혼자가 날 찾아오기까지 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리고 조영남은 "학교에 퍼진 소문 때문에 자퇴하게 됐다. 다시 공부해서 서울대에 갔고 그 여자는 파혼했다"고 말했다.[[http://entertain.naver.com/read?oid=117&aid=0002382877|#]] 그러나 2015년 10월 방송된 MBN '[[속풀이쇼 동치미]]'에 출연해서는 한양대 자퇴에 대해 "잘렸다"는 말을 하였다. 즉 이날 방송에서 조영남은 "내가 한양대학교에 다니다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잘린 적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이에 출연진들이 "연애를 한다고 학교를 잘리냐?"며 의아해했고, 조영남은 "약혼한 여자와 눈이 맞은 거였다. 그 때는 내가 전액장학금을 받는 학생이었으니까 그러면 안 되는데 예쁜 걸 어떻게 하냐?"고 되물었다. "그래서 자퇴서를 냈다. 이후 공부를 해서 다시 서울대학교에 들어갔다"고 말했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57&aid=0000802252|#]] 이후 1964년에 [[서울대학교]] 성악과에 입학하였는데, 1968년까지 다니다가 서울대 성악과도 이후 자퇴하였다. 다만, [[2000년대]] 들어 서울대학교 측에서 조영남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였다. 서울대학교 자퇴의 이유에 대해 조영남은 2010년 9월 방송된 ‘[[황금어장(MBC)|황금어장]] [[라디오 스타(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하여 “서울대 음대를 다니던 중 미8군 오디션을 보고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깜짝 놀랄 만큼 수입이 좋아 더 이상 학교 다닐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해서 자퇴했다”고 밝혔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81&aid=000211241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