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영남 (문단 편집) === 가수 은퇴 후 === 이혼 후에는 방송에 인생을 올인하여 [[체험 삶의 현장]]으로 대표되는 체험&다큐 형태의 방송을 주로 이끌었으며, 2006년부터 2016년 5월 16일까지는 MBC 표준FM의 오후4시 ~ 오후6시 라디오 프로그램 <[[지금은 라디오 시대]]> DJ를 맡았다. 보조 MC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였는데, [[미국]]에서 MC로 성공한 [[자니 윤]]을 불러와서 그를 메인 MC로 한 '자니윤 쇼'에 조영남이 보조MC를 맡았는데, 두 사람의 호흡이 너무 잘 맞아서 큰 인기를 끌었다. [[가수]] 쪽은 공식적인 은퇴 앨범을 낸 만큼 폐업 상태이나, 프로그램의 [[PD(방송)|PD]]들이 찾아와 사정을 하면 한두 곡 정도는 꼭 불러준다.[* 사실 1990년대부터는 딜라일라를 방송에서 부른 적이 없었는데, [[무릎팍도사]]에 출연해서 20여년 만에 옛날 회상을 하다가 갑자기 부르는 바람에 다시 주목받게 되어 그 후 수년간 계속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은퇴했으니 개런티는 공짜나 기부한다는 조건으로 안 받고 있다. 한국 연예인들 중에서도 손꼽히는 [[부자]]이자 재산가다. 그가 지금도 계속 거주하고 있는 [[청담동]] 고급 빌라는 연예인이 살고 있는 모든 집들 중 제일 비싸다고 하며, 공시지가만 50억 원 이상, 실거래가는 100억 원이 훨씬 넘는다고 한다. 사실 그 [[빌라]]는 조영남이 아주 오래 전에 구입한 것으로, 구입 당시에는 그리 고가가 아니었으나, [[재건축]]만 2번을 거듭하다 보니 주변 시세와 맞물려 건물 가격이 폭등한 것. 게다가 집값이 너무 비싸다 보니 팔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조영남 본인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팔 마음이 없다고 한다. 단, 재건축 하던 시기에는 팔라는 요구를 많이 받았다고 한다.] 물론 이에 대한 일화가 있다. 실제로 정말 작정하고 돈을 모았으면 지금의 재산 따위 푼돈으로 여길 정도로 엄청난 갑부가 되었겠지만[* 1960년대 말 ~ 1970년대는 우리나라 경제가 고도 성장을 거듭하며 흥하던 때라 적은 숫자의 인기 연예인이 버는 돈이 상상을 초월했다. 현재 가치로 계산하면 연간 수십억에서 백억 이상이었으며, 게다가 [[금융실명제]]도 없었고 오로지 현금 거래였다. 제작자들이 돈을 보따리로 들고 와서 줄을 서던 때로, [[최민수]]의 부친이자 1960/70년대 최고의 영화배우 [[최무룡]] 및 [[신성일]] 쯤 돼도 본인이 얼마나 버는지도 몰랐던 시대다.] '''전술한 바람기를 바탕으로 한 방탕한 생활로 인하여'''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들한테 돈을 거의 뿌리다시피 하면서 재산을 마치 물 쓰듯 홀라당 까먹기가 일상다반사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인기가 좋아서 [[화폐|돈]]을 매번 꾸준히 엄청 잘 벌어서 지금과 같이 이런 재산가가 된 것이다. 특히 위에 쓴 것처럼 재건축을 거듭할 때마다 그 집을 팔라는 요구가 심심하면 있어 왔지만, 본인은 그 집 자체가 좋아서 그걸 지키고 싶어 안 팔았다고 한다.[* 대신 재건축 공사를 하면서 처음 지어질 때 크기보다 2배 이상 공간이 커진 거라 확장하는 추가 비용이 크게 필요해 당시 나이와 체력에 비해 행사와 방송 출연을 하도 많이 하느라 몸고생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도 목숨 걸고 지켰다고 한다.] 은퇴 이후에는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주로 그리는 게 [[화투]] 그림을 크게 그린 그림이다. 아무튼 이 화가 타이틀로 개인전도 여러 차례 열었고 KBS 시사교양 프로그램 명작 스캔들에서 미학 칼럼니스트 기믹으로 출연도 했다. 하지만 그 뒤 [[조영남 대작 사건|큰 사건]]을 또 일으키면서 그의 대한 대중들의 반응은 싸늘한 편이며, 방송 활동도 뜸해진 상황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