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용필 (문단 편집) === 창법/예술력 === 한창 활동할 당시엔 노래부터 작곡, 편집, 무대연출까지 못하는 게 없는 [[초인]]이었다. 사운드, 공연 퀄리티도 당시 기준으론 압도적이었다. 데뷔곡 '창밖의 여자'는 드라마 주제곡 하나 써 달라는 라디오 PD 주문에 즉석에서 5분만에 작곡한 노래라는 말도 있는데 실제로는 15~20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부분.[* 물론 오해하면 안 되는 게, 완벽하게 연주가 가능한 곡을 만들어냈다는 뜻은 아니다. 멜로디 라인을 만드는 것을 작곡이라고 하고 그 멜로디에 맞춰서 세션들이 어떻게 연주할 지 만들어내는 것을 편곡이라고 하는데, 편곡은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린다. [[놀면 뭐하니?]]에서 유재석이 곡을 받는 장면에서 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볼 수 있다.] 창법의 경우 현시대의 (믹스보이스적인) 발성과 창법엔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으나, 애초에 창법에 우위 논쟁을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 대중 가요는 결국 듣는 이들의 몫이기 때문. 많은 사람들이 조용필이 레전드 보컬리스트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결국 그의 목소리에 감동하고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발성이나 창법 자체에 대한 지식이 지금보다 못하던 당시 사정을 생각해보면 이해가는 부분도 있다. 조용필의 가창력은 최정상의 실력이다. 50주년 콘서트 당시 2시간 내내 20여 곡[* 심지어 50주년 마지막 공연인 서울 앵콜에서는 30곡을 불렀다.]을 라이브로 소화했을만큼 그의 목 내구도는 수준급이다.[* 조용필 콘서트를 직접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콘서트 때 멘션이 굉장히 짧고 공연시간을 모두 노래로 채워서 한다. 잡다한 것들은 빼고 순수하게 공연에만 집중하겠다는 프로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원래 데뷔 초기[* 미군부대 밴드에서 기타를 담당하다가 베이스 담당이자 보컬이 갑자기 입대하게 되어 마이크를 잡기 시작했다.]에는 선천적인 미성으로 노래를 했으나, 이후 대마초 파동 당시 자숙하던 도중에 [[판소리]]에 매료되어 공부하기 시작하고, 로드 스튜어트와 조 카커 등 허스키한 보컬들의 음악도 참고하면서 지금의 창법이 되었다.[* 실제로 로드 스튜어트의 평소 목소리가 생각보다 꽤 하이톤이라는 점을 캐치해, 금관 악기를 하나 주문하고 성대의 떨림판과 비교해가면서 허스키한 보이스를 연마했다고 자신이 직접 인터뷰에서 밝혔다. 피를 토한 것은 언론의 과장된 부풀리기였다고 부정했고, 대신 성대가 피로를 느끼면 소금물을 마셔가면서 붓기를 약간 가라앉히고 다시 연습했다고 한다. 이런 방식으로 성대 자체의 내구력을 연마해 온 셈. 실제로 이런 발성은 서편제에서 말하는 '수리성' 단련 방식과 상당히 비슷하다.] 한 기자가 '어느 정도의 음역까지 낼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기타를 만지며 '이게 낼 수 있는 소리 정도는 뭐든지'라고 했다는 일화도 존재한다. 보컬 트레이닝과 [[발성]]법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된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면 수많은 성대모사에서 볼 수 있듯 고도로 앞쪽에 집중된 [[비음]]이 듣기 불편할 수도 있으나, 그것이 조용필만의 개성이라고 느끼는 청중 또한 많다. 한편으로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중반까지 상당히 두터운 탁성을 구사한 바도 있는데 이때의 가창스타일이 조용필 커리어의 정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판소리를 연마한 이후로 [[벨팅]]스러운 창법을 활용하는데, 특유의 개성있는 톤과 어울려 댐핑감을 선사한다. 다만 입을 벌리는 크기가 작고 상, 하악의 움직임이 큰 편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인 골라도 포함한다. 특이점으로는 저음, 중음, 고음에서의 파장이 상당히 비슷하다는 점인데, 보통 파사지오를 넘겨 고음으로 치솟을수록 소리가 커지는 것과 달리 조용필의 경우 세기가 상당히 일정하게 나타난다. 이는 초창기의 발성과 중후반기의 발성이 바뀌면서 더욱 드러나게 되었는데, 9집까지의 발성이 흔히 그 시대 어른들이 말하는 지르는 방식으로 감정 조절보다는 후련하게 내뱉는 판소리식 발성에 가까웠다면, 10집 이후로 앨범에 직접 참여하는 빈도가 늘어날수록 자신이 만드는 곡에 보컬을 조화시키는 방식으로 전환이 이루어지는 부분에서 알 수 있다. 흔히들 생각하는 비음이 강조된 보컬은 바로 이 10집 때부터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원래 밴드 기타리스트부터 음악 활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리듬을 굉장히 잘 탄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을 살펴보면, 특히 중후반기의 앨범의 경우 베이스를 중심으로 꽤 펑키하거나 재즈풍 리듬의 곡(10집-I Love you/모나리자, 12집-내 모습, 13집-어젯밤 꿈속에서, 14집-Jungle City) 이나 뉴웨이브 스타일의 록 음악(13집-꿈꾸던 사랑), 심지어 트립합 (14집-흔들리는 나무)까지 종종 등장하는데, 미묘하게 싱코페이션을 음마다 컨트롤 하는 게 장난이 아니다. 사실 발성으로 따졌을 때 자음을 약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된소리로 강조하는 방식이 이런 리듬웍과 묘하게 상성이 맞으면서 생기는 효과 중 하나. 이런 점 때문에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자신의 보컬에 맞게 곡을 쓰고 편곡하는 레벨이 상당히 높다고 인정받는다. 라이브를 할 때와 스튜디오에서의 음색이 조금 차이가 있는데, 음반에서는 주로 [[더블링(녹음)|더블링]][* 한 선율을 부를 때 오버더빙을 하는 방법이다. 똑같은 멜로디를 똑같은 음색으로 노래를 한 번 더 부르기 때문에 청자가 들을 시에 소리가 좀 더 풍성하게 들린다.]으로 녹음하기 때문에 보컬이 보다 두껍게 들리는 편이다. 라이브에서의 목소리는 그에 비해 가늘지만 커다란 성량으로 이를 어느정도 커버한다. 의외로 주목받지 못한 부분인데, 본인 노래의 대부분에 코러스까지 다 해먹는(...) 몇 안되는 보컬리스트 중 하나다. 소리 자체가 가늘지만 워낙 다각도로 활용도 잘하고 음정까지 정확하게 딱딱 들어맞는 보컬이라 주멜로디의 화음을 자기 보컬로 다 채워넣으면서 곡을 더 맛깔나게 하는 데에 있어서 초고수다.[* [[https://www.youtube.com/watch?v=RySAATlcsWI|이 곡]]이라든가 아니면 이 곡에서처럼[[https://www.youtube.com/watch?v=WINAu3tJXBo|후렴구]]에서 잠시 등장하는 스캣 부분에서 들을 수 있다.] 보통 이런 방식은 주로 블랙 뮤직을 장기로 하는 보컬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이를 자신의 것으로 승화시킨 부분에 대해서 뮤지션들에게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보통 가수 스스로가 코러스를 만들기 보다는 주로 외부 객원 보컬들을 활용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팝 계에서 코러스를 잘 넣기로 유명한 가수로는 [[프레디 머큐리]], [[마이클 잭슨]], 알 지아로 등이 있다.] 활동 초기에는 가창력에 대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것은 미8군 시절 패티김, 조영남 등의 스탠더드 팝류의 보컬이 트렌드였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가늘고 흐느끼는 듯한 느낌의 조용필은 마치 트로트를 연상시켜서 '촌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메이저로의 진출 전까지는 감정 표현이 부족한 가수라는 평가도 받았었다. 단지 시대가 만든 편견의 희생양이었을 뿐이다. 오히려 그 시대의 전설적인 세시봉 출신이자 가창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송창식]]이 거의 그 시대 유일하게 그를 꿰뚫어 보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스스로 인터뷰를 통해 가장 노래 잘하는 가수를 단 한명만 꼽아보라는 말에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조용필을 지목했던 일화도 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이다. 조용필은 1980년대 음반 뽑아내기에만 급급한 소속 레코드 사와의 갈등 속에서 음악적 퀄리티에 대한 성찰과 고뇌를 이어간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기에 지나치게 표현하는 자신의 창법[* '기도하는'으로 유명한 초기 조용필의 대표곡 '비련'의 후렴구를 들어보면 풍부한 성량을 터트리듯이 노래하는 당시 조용필의 창법을 들을 수 있다.]이 듣기에 과하다고 생각하여 절제하는 창법을 이어가게 된다. 실제로 조용필의 노래를 들어보면 "그대가 돌아서면~ 두눈이 마주칠까~"식으로 길게 끄는 느낌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그대가 돌아서면. 두눈이 마주칠까."의 딱딱 끊는 느낌으로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특유의 창법은 조용필을 다른 가수들과 구분짓는 특징이 되어 많은 연예인들의 성대모사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조용필의 노래를 듣지못한 채 성대모사만 들은 젊은 층들은 조용필을 '특이하게 노래 부르는 가수'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 앨범이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노래의 특징마다 다양하고 풍부한 감정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 재능과 감각이 타고났으나 그뿐만 아니라 그만의 목소리를 만드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있었다. 득음을 하기 위해 노래 연습하다가 각혈이 나오자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계속 노래 연습을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었지만 2013년 SBS에서 방영된 조용필 스페셜에서 인터뷰어였던 [[이승기]]가 "득음하다가 목에서 피가 나셨다는 일화가 진짜인가요?"라는 질문에 "아니에요. 목에서 피가 나면 죽지요."라며 웃으며 대답했다.[* 실제로 목에서 피가 나오는 것은 3가지 정도인데, 하나는 내부장기 손상으로 이건 얄짤없는 사망 루트(...)고, 그 다음은 폐를 포함한 호흡기 손상인데 이것도 노래에 치명적이다. 마지막으로 득음이라고 칭하는 판소리쪽인데, 이쪽에서 피가 난다는 건 이렇게 피가 난다는 소리가 아니다. 애초에 현대 가요쪽 창법과 판소리 창법은 상당히 달라서, 이런 식으로 피를 보면 [[성대]]가 변형되기 때문에 평상시 목소리가 쇳소리가 난다. 목을 험하게 굴려서가 아니라, 자기 노력으로 목소리를 이정도로 바꾼 가수는 현대 가수중에서는 거의 없다시피한 수준. 나무위키에 적힌 인물 중에선 [[야마가타 유키오]] 정도가 있는데 이쪽도 다소 애매하다. 애초에 판소리도 세부적인 창법으로 들어가면 다양하다.] 재능과 노력이 지금의 명성으로 이어진 것. 이런 창법이 불을 뿜는 대표곡들을 꼽자면 한오백년, 자존심, 한강 등 민요풍 노래 외에도 창밖의 여자, 촛불 등 다른 장르도 가리지 않는다. 음악적으로 시도한 장르도 매우 다양했다. [[록 음악]](미지의 세계), [[대중음악|팝]](Jungle City), [[발라드]](슬픈 베아트리체), [[재즈]](단발머리), [[일렉트로니카]](아하! 그렇지), [[블루스]](대전 블루스), [[민요]](자존심), [[트로트]](허공), [[동요]](난 아니야), [[오페라]](도시의 Opera).[* 이상 각주는 모두 대표적으로 한곡들만 기재하였음.] 더 무서운건 저렇게 시도를 하고 대부분 다 성공을 했다는데 있다. [[Over The Rainbow(조용필 음반)|18집]]에서 [[안토닌 드보르작]]의 9번 교향곡(신세계 교향곡)에 가사를 붙인 '내일을 위해'라는 곡에서 오페라가 아닌 클래식, [[Hello(조용필 음반)|19집]]의 타이틀곡인 Hello의 경우엔 [[버벌진트]]의 피처링으로 [[Rap]]까지 섭렵했다.[* 버벌진트는 처음 제의 받았을 때 [[몰래카메라]]나, 혹은 벌써 만우절이 왔나 싶었다고. 그러나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리이머에게 ‘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하겠다고 말해달라’고 이야기했다고 한다.[[https://entertain.naver.com/read?oid=109&aid=0002521159|#]] 여담으로 조용필은 본인이 랩 파트를 소화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웬만한 래퍼들의 랩을 들어보고 버벌진트를 선택했다고.] 이러한 수많은 노력과 그의 천재성으로 공존하기 어려워 보이는 장르들이 대중가요라는 하나의 용광로처럼 녹아든 것은 상당수가 그의 공헌이다. 또한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계속해서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고, 젊은 트렌드에 맞춰가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인데[* 의외의 친분으로 빅뱅의 태양이 있는데 태양이 RISE 앨범을 준비하면서 신곡 '버리고'를 직접 조용필에게 찾아가 들려주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같이 백 번도 넘게 들었다고 한다.], 평소 [[케이티 페리]], [[브루노 마스]], [[마룬 5]], [[Imagine Dragons]]와 같은 음악도 즐겨 듣고[* 인터뷰에서 어떤 음악을 즐기시냐는 질문에 빌보드 차트에 있는 음악을 주로 듣는다고 답변한 바 있다. 물론 옛날 노래도 많이 듣는다고 덧붙였다.] 19집 작업의 모토를 아예 '음악의 깊이' 보다는 '편안함'과 '세대 간의 융합'으로 잡았다고 기자회견에서 밝힌 바 있다. 그 결과 Hello와 Bounce라는 젊은 가수들과 비교해도 전혀 촌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 곡들이 나왔다. 그의 콘서트가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면, [[지하철]] 배차 간격이 바뀌며, 막차시간이 2시간 연장되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김정일]]도 조용필의 '허공'을 애청했다고 한다. 물론 남북정상회담 당시였으니 립서비스였을 수도 있지만, 탈북자들이 쓰는 대북 관련 책자들에서도 북한 고위층 자제들이 조용필 노래를 몰래 듣고 다닌다고 하는 얘기 정도는 훨씬 이전부터 나왔었다. 또한 진짜 립서비스였다 하더라도 그 많은 가수 중 조용필을 언급했다는 데서 그의 위용을 알 수 있는 게 된다. 2011년 문화일보가 실시한 창간 20주년 '대중음악사 20년 최고의 가수와 노래' 조사에서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1110501031830030004|당당하게 가수와 노래 부문 모두 1위를 차지했다.]] 참고로 2위는 [[이승철]], 3위가 [[서태지]], 4위가 [[김건모]], 5위가 [[소녀시대]]다. 여담으로 90년대에 [[별이 빛나는 밤에]] 공개방송에도 나와 후배인 [[이문세]]나 [[신해철]]과도 재미있는 입담을 나누고 경쾌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까불거리던 [[이경규]]에게도 웃어주고 이경규가 조용필 노래를 엉터리 중국어로 불러주며 홍콩에 중국어 앨범으로 도전해본다고 뻥치자 이문세가 "이경규 씨, 그만해, 나 머리에거 김날 거 같아."라고 하자 웃으면서 "누가 아니래. 나도 공감이야. 아주 스팀다리미로 써도 되겠어."라고 맞장구쳐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