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용필 (문단 편집) == 평가 == >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 조용필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youtube(5adJ5Dn11AA, width=400, height=300)][br][youtube(RkCpkhFFhlU, width=400, height=300)][br][youtube(z1CLh8gfLxE, width=400, height=300)][br][youtube(MyToZsROfN8, width=400, height=300)][br][youtube(4FEcuhZ76pk, width=400, height=300)][br][youtube(5ZNit43P1mw, width=400, height=300)]}}} > ---- > [[엠넷]] 레전드 100 >아이돌적인 인기와 아티스트적인 위상을 거의 처음으로 한꺼번에 거머쥐었던 1980년대 전반에 걸쳐서 사실 한국에서 가능한 음악적인 실험을 거의 다 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조용필 씨의 영향이 대중음악계 곳곳에 남아있고요. >---- > 평론가 이무원[* [[http://www.dailymusic.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출처]].]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싱어송라이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며, 후배 가수들의 꿈 같은 존재다. 지금은 고인이 된 마왕 [[신해철]]이 롤모델로 추앙했던 인물 중 하나.[* 신해철이 무한궤도로 데뷔한 대학가요제에서 조용필이 당시 심사위원이었기에 사제지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운드 퀄리티를 향한 집요한 자세, 게다가 셀프 프로듀싱까지 총괄하는 조용필에게서 음악 감독의 모범을 보았다고.] 과거 '[[김혜수]]의 플러스 유'라는 방송에 출연했을 당시 "[[마왕]]으로 불리던 후배 신해철을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질문에 '''귀여운 후배'''로 평가해서 진행자 김혜수를 비롯해서 관객들이 뜨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고스트스테이션]]에선 신해철이 조용필의 [[히트곡]]들을 직접 리마스터해서 특집으로 튼 적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혼날까봐 조용필이 곯아 떨어질 것이 확실한 공연날 밤을 골라서 방송을 했다. 그리고 지금은 흑역사가 된 [[서세원쇼]]에서 [[넥스트(밴드)|N.EX.T]]가 나왔을 때 조용필과 전화가 연결되었는데 이때 신해철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바로 일어서며 예의를 갖췄다. 그 외 [[이승철]]이나 [[이은미]]조차도 조용필 앞에서는 고개를 못 든다고 한다. 물론 조용필이 군기반장이란 소리는 아니고[* 단, 이승철이나 당대 가수들이 조용필이 자기 밴드 멤버들을 불러 무섭게 혼내는 건 몇번 봤다고 했고, 후배들에게 직접 뭐라 하지 않아도 그것만으로 되게 무서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또한 1980년대 당시는 음악방송 PD들이 권위와 권력이 엄청 커서 방송국에서 20대 가수들이 담배를 피우면(당시는 건물복도나 대기실 등 실내흡연이 가능했다.) 말단 PD조차 다가 와서 뺨을 때리던 시기였는데, 조용필만 예외라 조용필은 간부급 PD와도 맞담배를 하며 방송을 의논했다고 한다. 조용필이 방송국에 오면 국장급이 와서 '조가수 왔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존경심에서 하는 소리다. || [[파일:attachment/조용필/yongpil_and_taiji.jpg|width=100%]] || || 조용필과 [[서태지]].jpg || 조용필은 대중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현역 시절의 수많은 음악적 시도의 성공 덕에 대중성과 다양성을 오랜 기간 동안 잡아낸 보기 드문 가수이기 때문. 조선일보의 대한민국의 최고 가수는 누구인가?라는 설문조사에서 당당히 1위에 올랐으며, 2위는 [[이미자]], 3위는 [[나훈아]], 4위는 [[서태지]]가 되었다. 조용필이 2위를 하는 경우는 전무하다고 보면 된다. 더불어, 방송국이 굽혀주는 몇 안 되는 가수 중 하나로 가요계 배분과 위상이 높은 점에 기인한다.[* 언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가수는 없다.] 보통 PD들이 가수를 지칭할 때 '~씨'라는 호칭으로 큐시트를 주는데 조용필은 방송국에 떴다 하면 최고위급도 선생님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사실 조용필만 선생님이라 불리는 건 아니고 이 정도 연배의 배우나 가수들은 모두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 당장에 패티김이나 이미자가 방송국에 떴는데 "패티김 씨, 이미자 씨" 라고 부르는 경우는 없다. 실제로, 2013년 기준으로 각 방송국 예능국장급은 다 조용필과 같은 시대 인물이거나 그 아랫세대다. 이승철이 회상하기로는, 자신의 신인 시절은 PD들의 힘이 워낙 세던 시절이라 어린 가수들이 지각을 하거나 하면 '저기 가서 손 들고 서 있어!' 라고 윽박지르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시절임에도 조용필이 방송국으로 찾아오면 반드시 국장급 이상이 직접 마중을 나왔다고 한다. 이승철의 신인 시절이면 조용필이 중견가수이긴 해도 30대 후반일텐데 이미 그 시절에도 위상이 엄청났다는 이야기가 된다. 사실, 국내 역사상 가장 큰 족적을 남긴 가수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피해를 본 가수이기도 하다. 80년대는 음악 평론이란 것 자체가 거의 전무한 시기였기 때문에 조용필의 [[크로스오버]]적인 실험들이 90년대 중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조금씩 이야기가 되기 시작했다. 단독 공연으로는 2003년 잠실 주경기장에서 데뷔 35주년 콘서트를 하였으며, 자신의 데뷔 00주년 공연 중 마지막으로 게스트를 초청한 35주년 콘서트에는 [[신승훈]], [[신해철]], [[god(아이돌)|god]], [[이은미]], [[장나라]], [[유열(가수)|유열]]이 출연하였다.[* [[조PD]]는 신해철 차례 때 보이지도 않는 뒤에서 랩을 했다.] 이후 수차례 잠실에서 더 공연을 하게 되는데 만석은 기본이었다. 그 중 2003, 2005년, 2018년 공연은 우천 속에서도 매진된 것은 주목할 점이다. 이후 잠실 공연에 도전한 [[이승환]]도 우천을 만나며 객석이 비게 되었고, 이후 [[이문세]], [[싸이]] 등도 도전했지만 잠실 주경기장은 쉽사리 만석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만큼 조용필은 괜히 가왕이 아니다.[* 잠실 주경기장 즉 서울올림픽 주경기장은 69,950석에 더해 [[가변석]] 5216석이다. 상암동의 월드컵 경기장(66,704석)보다 더 크다. 더 이상 다른 말이 필요 없다. ] 또한 1999년 말 대중가수 중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하였으며 향후 몇 년간 연말 투어로 그곳에서 마무리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국내 공연문화(콘서트)에 있어서도 선구자이다.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계속 이끌어오고 있고 현재진행형이다. 해외 아티스트들도 아무나 시도하지 못하는 무빙스테이지를 2010년 국내에 도입했다. 너비 120m, 높이 33m의 초대형 무대는 잠실 주경기장을 80m나 움직였다. 이 2010년 Love in Love 콘서트때 이틀간 10만 관객을 동원했다. 2018 50주년 콘서트도 유튜브 영상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규모, 조명, 폭죽 모든 게 넘사벽이다. 모든 활동은 전속 밴드 '위대한 탄생'과 같이 하고 있는데 그의 위상과 걸맞는, 대한민국에서는 전설급이라 할 수 있는 세션들만 거쳐갔다. 대표적인 예가 [[김광민(음악가)|김광민]], [[송홍섭]], [[정원영(음악가)|정원영]], [[유재하]],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 전태관]] 등이 있다. 2018년 4월 1일과 3일 평양에서 공연된 [[남북평화 협력기원 남측예술단 평양공연]]에도 합류했고, 1차 공연에선 출연자 중 가장 많은 4곡을 불렀다.[* 모든 출연자가 합창한 친구여까지 합치면 5곡이 자신의 노래이다. 다만 2차 공연 땐 2곡만 불렀다. 몸이 안 좋기도 했을 뿐더러 다른 출연자들 공연도 많아 여건상 2곡만 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순서는 솔로 공연 중에선 마지막 무대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