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운 (문단 편집) == 가족 관계 == 조운의 아내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썸녀 [[번씨]]와는 혼인은 거절했고 [[마운록]]이란 아내는 근대에 지어진 소설 [[반삼국지]]에서 나오는 오리지널 캐릭터라서 실존인물이 아니다. 손연아(孫軟児)도 민간 설화에서만 나오는 조운의 아내라서 마찬가지로 실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아들이 두 명 있었다. 장남 [[조통]]이 후사를 이었고 관직이 호분중랑(虎賁中郎), 독행령군(督行領軍)에 이르렀다. 차남 [[조광]]은 확실히 무장으로서 살았는데 아문장(牙門將)으로 [[강유]]를 수행해 답중(沓中)에서 싸움에 임하다 전사했다.[* 강유를 수도로 가 천자를 알현케 하며 중호보병을 맡아야 한다고 제갈량이 추천한 것을 살펴볼때 강유가 자신이 시호를 선정한 옛 상관의 아들인 조광의 무재를 눈여겨보아 데리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실 차남인 조광이 아문장으로 활동한 연도가 260년대 임을 생각해보면 이들의 출생년도가 입촉 이후 상당히 뒤였을 가능성도 있는데 왜냐면 다른 유비의 숙장들인 관장이나 미축 같은 공신들은 손자 대까지 촉한에서 뭔 벼슬을 했는지 기록이 있는 반면, 조운의 자손들은 아들 대에서 이후 얘기가 없는것을 보면 손자가 없거나 촉한 멸망 전에 벼슬을 할 만큼 자라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황충의 아들 [[황서]]의 예로 황충이 생각보다 젊었을 가능성이 언급되는데 조운의 자손들도 비슷하게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다만 아래에 소개되는 조운의 외손자인 관월이 213년생임을 감안할때 그 외삼촌인 조광이 그 동년배일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다. 뭐 조씨랑 조광이랑 연배 차이가 많이 나는 남매였을수도 있지만 말이다. 60~70대에 전사했을수도 있고. 당장 강유도 전사할때 60대였고, 촉한의 군부는 이런 강유가 젊은 축이였을 정도로 고령화되었으니 조광이 노장이였다고 해도 어색하지는 않다.] 한편 청대의 지리지인 강릉현지에 나오는 전설에 따르면 [[관평]]의 아내는 조운의 딸 조씨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관우와 조운은 사돈지간이 되는 것이다. 출처는 [[중국어 위키백과]].] 여기에 따르면 조씨와 관월은 형주가 함락되자 익주로 피신하지 못했고 오나라에 억류된 채로 관(關)씨에서 문(門)씨로 성을 바꾸고 평민이 되어 공안에 숨어 살았다. 이 때 여몽이 배려해준 덕분에 이들이 몰래 숨어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서진]]의 [[사마염]]이 오를 멸하고 삼국을 통일하자 칙서로 관씨로 [[복권]]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고 한다. 일단 관평의 후손들이 있다는 사실이나 관월의 존재 자체는 조작이 없다고 인정받고 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20&aid=0000049991|#]] 이 일설에 따르면 관평의 아들 관월(關樾)[* 건안 18년(서기 213년) 생이라고 한다.]은 조운의 외손자가 되는 셈이다. 하지만 삼국지연의라든가 평화, 진수의 기록, 자치통감, 배송지 주 등에는 이런 기록이 없어서 둘의 사돈 관계가 묘사되거나 언급되지 않는다. 실제 중국어 위키백과에서도 조운의 후손은 조통, 조광 형제만 언급하고 있으므로 확언은 어려울 듯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