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운 (문단 편집) === 호위무사설과 실상 === 일단 조운의 '''별칭'''인 일신도시담 호위장군(一身都是膽 '''虎威'''將軍)이라는 별명의 '호위' 때문에 한자를 모르면서 소리만 듣고 호위무사가 아니냐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한자를 보면 알듯이 저 호위는 '''보호와 방위'''의 '''호위(護衛)'''가 아니라 '''호랑이 위세'''란 뜻의 호위다. 애초에 별칭이라 한데서 알듯이 저것도 정식관직명이 아니라 그냥 별호 즉 별명이다. 실제로 조운은 정사에서부터 기병부대의 지휘관으로 처음 등장했고, 상술했듯이 전업 호위였던 허저나 전위와 비교해보면 이들이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사시사철 조조 근처에서 떨어진 적이 거의 없던 것과 달리 조운은 지령을 받고 유비의 곁에서 떨어져 여러 군사 업무를 수행하기도 했다. 진수의 기록이나 하후영에 비교된다는 기록을 보면 친위부대의 대장직도 겸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근위대는 어디까지나 유비의 직할 부대이자 정예병들을 뜻하는 것이지, 호위에만 전념하는 부대도 아니다. 비유하자면 개인 경호병들과 수도방위군의 차이다. 일단 이른 시기에 황제를 옹립하며 큰 세력이 된 조조와 달리, 유비는 형주를 차지하기 전에는 그다지 많은 병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으므로, 군주의 호위부대와 친위부대가 혼용되었을 것이다. 유비 사후에 조운과 유사한 역할을 맡았던 [[진도(삼국지)|진도]]의 부대가 성도로 돌아가지 않고 영안에 남은 것을 보면 최소한 유비의 황제 즉위 이후에는 분리된 듯 하나, 결국 영안에 남았다는 의미는 유비의 고참병들을 수도방위군으로 해석하기에도 무리가 있다는 이야기이다. 애초에 직접 군대를 지휘하던 군주들의 경우, 이 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들이 지휘한 부대의 성격이 서로 달랐다기보다는, 믿을만한 친족도, 거느린 군대도 많았던 조조는 호위임무와 전투지휘를 각각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수 있었던 반면, 둘 다 부족했던 유비는 소수의 믿을만한 고참부하, 즉 관우, 장비, 조운이 필요시마다 이리저리 가리지 않고 --굴렀을(...)--가능성이 높다. 어쨌거나 아무리 해석한다고 해도 조운은 호위, 친위부대의 장군이지 개인 경호원인 호위무사는 아니다. 사실 유비가 조운과 같은 침실에 누웠다는 별전의 기록에 비추어봤을 때 이는 신선한 일은 아니다. 조운은 애초부터 유비의 지근거리에서 함께 했다. 물론 지근거리에 있다보면 경호도 겸할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겸하는거지 본업으로 보긴 힘들다. 정사나 별전의 기록을 보면 조운은 [[허저]]나 [[전위(삼국지)|전위]]처럼 경호에만 전념한게 아니라 폭넓게 활동했다. 게다가 당시 고대 중국에서 신하나 부하 장수가 군주와 한 침실을 같이 썼다는 건 그만큼 군주와 부하의 관계가 돈독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말 그대로 단순히 부하가 군주의 신변을 경호하기 위함이나 그렇고 --그런(...)-- 관계였다는 뜻만 있는 게 아니다.[* 고대 중국에서도 동성애나 양성애 성향을 가진 인물들은 당연히 있었지만 유비는 이성애자라는 증거가 확연한 반면 동성애나 양성애자라는 이야기가 전혀 없고, 관우와 장비는 물론 조운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삼국지 인물들 중 동성애자 논란으로 가장 잘 알려진 건 대표적으로 종회다.][* 한 침실을 썼다는 묘사는 조운 외에도 장비, 관우, 제갈량 등이 있는데, 당연히 성애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군주의 침실에 편히 출입가능할 정도로 믿는 부하였단 얘기다. 비슷한 예시가 동탁이 위세가 강할때 칼을 차고 황제의 어전에서 신을 신고 걸어다녔다는 묘사인데, 단순히 복장 묘사가 아니라 그만큼 황제 앞에서 예를 갖추지 않았다는 표현이다. 이걸 보고 유비가 애첩(...)을 마구 갈아타는 호색한 동성애자인 것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