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운 (문단 편집) === [[한중 공방전]] === || 하후연이 패하자 [[조조|조공]]이 와서 한중 땅을 다투었고 북산(北山) 아래에 군량(米)을 운반하여 수천만 포대에 달했다. [[황충]]이 가히 이를 탈취할 수 있다 하였고 조운의 병력이 [[황충]]을 수행하여[* [[태평어람]]에선 견(遣)자가 붙어서 글귀가 늘어나 '조운이 병사를 파견했다'고 썼다.] 쌀을 탈취하려 했다. 황충이 기한을 넘겨도 돌아오지 않자 조운은 수십기를 거느리고 가벼운 차림으로 위(圍)를 나서 상황을 살펴보러 갔다. 곧 조조가 거병하여, 조운은 조조의 전열에 공격받았다. 이에 싸우는데, 적의 대군이 도착해 핍박받는 형세가 되자, 적에게 돌진하여 한편으론 싸우고 한편으론 물러섰다. 조조군이 패했다가 다시 합치자, 조운이 이를 파하고 위로 급히 되돌아왔다. 장수 [[장저]]가 부상당하자 조운이 다시 말을 달려 영(營)으로 가 장저를 맞이했다. 조조의 군사가 이를 추격하여 위에 이르자 위 안에 있던 면양장 [[장익]]이 문을 닫고 막으려 했다. 그러나 조운이 영 안으로 들어와 문을 활짝 열고 싸우지 않는 것처럼 군기를 눕히고 북을 멈추었다. 조조의 군사는 조운이 복병을 뒀을까 의심하여 물러났다. 조운이 하늘을 뒤흔들 듯 북을 올리며 뒤에서 조조의 군사들에게 융노를 쏘아대니 조조의 군사가 놀라고 어지러워 자기들끼리 서로 짓밟고 한수에 떨어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유비|선주]]가 다음날 아침 조운의 영위(營圍)로 친히 와서 전날 싸운 곳을 둘러보고 말했다. "자룡(子龍)은 일신이 모두 담덩어리(膽)로다." 음악과 술자리를 베풀어 저녁까지 이어졌고, 군중(軍中)에서는 조운을 일컬어 호위장군(虎威將軍)이라 했다. - 조운별전 || 이후 [[한중 공방전]]에서는 [[황충]]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게 되었는데, 기록에서 처럼 황충이 적의 군량을 탈취하기 위해 나갔으나 오랜 시간 돌아오지 않자 상황을 보러 경무장한 수십 기의 기병만 이끌고 나간다. 그런데 이 때 갑작스럽게 조조의 대군과 맞닥뜨리게 된다. 근데 이 상황에서 조운은 '''적진으로 돌진하여''' 싸운다. 경무장한 수십 기의 기병이 입힐 수 있는 피해가 한정적일테니, 경기병 특유의 게릴라 형식으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적의 진형을 헤집어 놓는 정도였을 것이다. 실제 묘사도 '한편으론 싸우고 한편으론 물러섰다.'라고 적어 조운이 능수능란하게 기병을 치고 빠지는 식으로 운용해 조조군에 돌격하여 대형을 흐트리고 정신차릴만하면 다시 공격하면서 여기저기서 기동전을 펼쳐 조조군을 당황하게 하고 뜻밖에 돌진에 당황한 조조군을 상대로 아군까지 구출하면서 진영으로 돌아가기까지 하며 선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 본디 조운이 유비를 수종하던 기병대장 출신인걸 감안하면 납득이 가는 묘사이다.[* 애당초 조운의 군 커리어 시작이 북방의 기마술에 능한 이민족이 포함된 군세를 다루는 기병대장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조운의 기병운용도 이해가 간다.] 이후 조운의 기병대를 잡으려고 조조군이 다시 추격했는데 조운은 오히려 '''공성계를 펼쳐 후퇴하려는 조조군을 상대로 화살비를 쏟아부어 조조군을 대파하며 물리쳤다.''' 조운은 이 일로 진영 내에서 호위장군(호랑이의 위세를 가진 장군)으로 불렸으며, 유비는 몸소 그곳을 시찰하며 조운이 [[일신시담]](一身是膽)하다고 했다. 이는 조운의 대담함과 지략, 용맹함을 보여주는 기록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단 이 일화는 별전류의 기록이 그렇듯 장익전과 황충전에 모두 실려있지 않아 교차 기록이 전혀 되질 않기에 신빙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별전류의 특성 상 조조의 일반적인 군세를 조조의 대군이라 과장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진을 지키고 있던게 [[장익]]이라면 이 공은 매우 큰 공일텐데[* 이론의 여지는 있을수 있다, 본문을 보면 장익은 조운의 의도와는 달리 오히려 그냥 진의 문을 닫으려고 했다는 설명이기 때문이다.] 장익전에서는 찾아볼 수 도 없으며 애초에 한중전 참여 사실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만 한중 공방전 자체가 조조가 참여한 이후 유비가 요충지서 버티고 있는 양상이었으며, 조조의 군량미를 옮기는 과정에서 언급된 조조의 대군은 조조의 본대가 아닐 확률도 있다. 사실 대군이라는 것도 당시 조운이 이끌고 나갔던 수십 기의 병력에 비해 대군이라는 표현인데, 그 규모가 수백 내지는 수천에 불과한 규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나, 사실 설령 수천이라고 해도 그걸 일거에 쓸어버린건 분명 대공이고 유비가 대공으로 보고 주연을 베풀었다든가 어둠속에서 급작스러운 기습으로 대군이 무너지는 경우는 종종 발생하기에 꼭 그렇게만은 볼 수 없다. 또한 이 일화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에서도 분명 기재하고 있으며 자치통감에 주석을 단 호삼성도 유비의 말에 주석을 달아 조운의 담력이 커서 고립된 군사로 조조의 대군을 대적할 수 있었음을 의미한다고 적었다. 별전의 내용을 신뢰했다는 의미이다. 물론 군량 수천만 포대라든가 장익이나 장저, 면양장에 대해서는 내용을 삭제했지만[* 이 경우 자치통감의 성격상 굵직한 부분만 기재하기 위해 삭제했을 확률도 있다. 당장 이 사건 이후 자치통감은 유비와 조조가 서로 수개월을 대치하니 위군의 도망자수가 매우 많았다고만 기록하고 있다. 한중전 전체만 놓고 봤을 때 한중에서 벌어진 수많은 전투 중 하나로 보이니, 진위성이 의심됐다면 굳이 기재할 필요조차 없는 일반적인 규모 정도의 전투일 뿐이다.], 황충을 구하러 갔다는 내용은 분명 기재되어 있다. 황충전에도 실려있지 않지만, 별전이나 자치통감에서도 조운이 황충을 구하러 나갔다고만 되어 있지, 황충을 실제로 구했다거나 중간에 황충과 만나 합쳤다거나 하는 내용이 전혀 없다. 즉 황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다. 이 경우 황충전에 굳이 기록될 필요는 없다. 별전의 내용이 사실이라 쳐도 황충의 행동은 수많은 군사 작전의 일부에 불과할테고, 그다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보여지니 굳이 기록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연의에선 이 부분을 조운이 적진 깊숙히 들어가 용맹을 과시한 황충이 위험하다고 여겨 구원했다고 각색해 두 장군의 용맹을 더욱 돋보이는 에피소드로 만들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