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참 (문단 편집) == [[초한전쟁]] == [[홍문연]]의 일이 있은 후 유방이 한왕에 봉해지자 조참은 건성후(建成侯)가 되었다. 그 후 유방이 삼진을 평정할 때 계속 종군하다가, 경릉(景陵)이라는 곳을 20일 정도 지키고 있을 때 장평(章平)[* [[장한]]의 동생이라고 한다.] 등이 공격해 왔지만 대패를 안겨주었다. 유방이 동쪽으로 진군할 때도 마찬가지로 따라가면서 [[용저]](龍且)와 [[항타]](項他)를 물리치면서 순조롭게 팽성까지 장악했지만, '''[[팽성대전|아주 가루가 되도록 박살이 나고는,]]''' 서쪽으로 물러나면서 한군이 박살난 틈에 배반을 하거나 분탕질 하는 왕무(王武), 정처(程處), 주천후(柱天侯) 등을 모두 물리쳐서 대패 이후에 있을 동요를 최소한으로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BC 205년에는 잠시 좌승상 대리로 후방인 관중(關中) 지역에 머물다가, [[위표]](魏豹)가 배반하자 [[한신]](韓信)의 군대에 속해 보조를 함께 했다. 이후 한신과 조참은 눈부신 공을 세우게 된다. 위나라와의 [[안읍 전투]]에서는 별도의 부대를 이끌고 위나라 장수 손속(孫遫)을 동장(東張)[* 섬서성 임진현(臨晉縣)]에서 격파하고 내친 김에 위나라의 수도 안읍(安邑)까지 공격해서 위나라 장수 왕양(王襄)을 사로잡았다. 당시 위표는 임진(臨晉) 쪽으로 오는 한신의 부대를 경계하고 있던 참이라, 이에 크게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열]](夏說)을 물리친 후에 한신, [[장이]](張耳)와 함께 [[조(전국시대)|조(趙)나라]] 공략에 나섰고, [[정형 전투]] 이전 한신의 명령으로 따로 군대를 이끌고 오성(鄔城)에 주둔하던 조나라의 별장 척(戚)을 참살하는 공을 세웠다. 이후엔 잠시 유방의 본대에 합류해 있다가, 한신이 [[제(춘추전국시대)|제(齊)나라]]를 공략할 때 한몫을 거들었다. [[해하 전투]] 때는 [[한신]]이 유방의 요청으로 [[항우]]를 물리치기 위해 이동했지만, 조참은 제나라 지역에 머물며 항복하지 않은 지역을 평정하느라 참전하진 못했다. 통일 직후, 직속 상관인 제왕 한신이 유방에게 걸려 제나라가 소멸하는 바람에 상국에서 해임되고 잠깐 무직(...)이 되기도 했으나, 1년 후 유방의 서장자 도혜왕이 제나라 왕이 되면서 다시 제나라 상국에 복직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