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참 (문단 편집) === 소하에 밀린 콩라인 === 그야말로 전쟁터에서 살다시피 할 정도로 싸우면서 막대한 공적을 세웠던지라, 전쟁이 끝난 후 조참은 '''온 몸에 상처가 70여 개'''가 있었다고 하며 논공행상에서 '''10630호'''라는 어마어마한 [[식읍]]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탓에 전쟁이 끝난 후 유방이 [[소하]]를 최고 공신으로 삼으려고 하자, 여러 장수들이 반발하기까지 했다. 소하는 그냥 후방에서 숫자 셈이나 했고, 조참은 직접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기면서 엄청난 공훈을 세웠으니 당연히 조참이 최고 공신이어야 한다는 것. 일단 소하를 최고 공신으로 하려는 마당에, 장수들의 반발 때문에 이를 물린다면 자신의 권위에도 문제가 생길 유방은 영 기분이 나쁜 상황이었다. 이때, 유방의 심기를 알아차린 관내후(關內侯) 악천추(鄂千秋)가 발언하였다. >“여러 대신들의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조참이 비록 전쟁터를 누비고 다니며 적군의 성과 땅을 점령한 공이 크다고 하나, '''그것은 일시적인 공로에 불과한 것입니다.''' 항왕(項王)과 5년 동안 서로 대치하고 전투를 벌인 폐하께서는 여러 번 싸움에 지고 그때마다 그 군사들은 모두 달아나 뿔뿔이 흩어져 버려 홀홀 단신으로 도망치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소하는 그럴 때마다 관중의 자제들을 모아 폐하가 계시는 전선으로 보내 그 잃어버린 병력을 보충시켰습니다.''' 그러한 일들은 모두 폐하의 지시를 받고 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한 일입니다." > >"또한 관중에서 수만의 군사들을 전선으로 보낼 때는 언제나 폐하께서 싸움에서 패한 직후의 가장 위급한 때였습니다. 한군과 초군이 형양에서 몇 년에 걸쳐 대치할 때, 군중에는 양식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에 소하가 관중에서 수레나 선박을 이용하여 양식을 보내주어 한군은 굶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폐하께서 여러 번 효산(崤山) 이동 지역의 싸움에서 패하는 동안 소하는 오로지 관중 지방을 굳건히 보전하여 만세에 길이 빛날 공훈을 세웠다고 하겠습니다." > >"'''지금 비록 조참과 같은 사람 100명이 없다 한들 한 왕실에 무슨 영향이 있겠습니까?''' 한 왕실은 '''조참과 같은 사람들을 얻음으로 해서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어찌하여 일시적인 공로를 세운 사람을 만세에 길이 빛날 공적을 세운 사람 위에 놓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마땅히 소하의 공을 맨 위에 올리고 조참을 그 다음으로 하시옵소서." 즉, 조참과 같은 100명이 없었으면 피똥을 싸더라도 어쨌든 이길 수는 있었겠지만 소하가 없었으면 그대로 망했을 테니 소하가 1등 공신이라는 것. 이 말을 듣고 수긍한 유방은 소하를 최고 공신으로 정했고, 소하에게는 [[구석|'''신발을 신고 전당에 오를 수 있고, 칼을 찬 상태로 황제를 볼 수 있고, 황제를 배알할 때도 작은 걸음이 아니라 큰 걸음으로 걸을 수 있게 하는''']] 등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눈치 빠르게 소하의 편을 든 악천추도 역시 보상을 받았다.[* 제후의 후제(侯第)가 61위로, '''무려 62위인 [[장량(전한)|장량]]보다 높다!''' 물론 장량은 마음만 먹었다면 3만 호의 엄청난 식읍을 가질 수도 있었지만, 여하간 윗사람 눈치는 잘 보고 볼 일.] 실제로 소하는 사실상 홀로 전시행정을 이끌었지만, 조참은 유방 휘하의 장수들 중 가장 오랜 세월 그와 함께한 뛰어난 인물이었을 뿐 그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단순한 공로만으로 따지면 초를 제외한 전국을 휩쓴 한신, 초의 후방에서 유격으로 항우의 시선을 분산시킨 팽월, 초의 항장으로써 놀라운 무위로 유방을 서늘하게 했던 영포 등과 공로를 나눠먹기까지 했다. 물론 이러한 쟁쟁한 장수들과 [[한삼걸]]의 명성에 가려져서 그렇지, 조참은 분명 한삼걸 다음 가는 초한전쟁 최고의 공신이다. 한고제가 일등공신을 정할 때 장수들이 대부분 조참이 1등이어야 한다고 한 것부터 범상치가 않다. 보통 이런 논공행상에서는 대부분의 장수들이 자신의 공로를 과장하여 상을 더 받고자 하기 마련이다. 게다가 유방의 진영은 유방 본인부터 해서 아랫사람들이 대체로 자유분방한 분위기였고, 이 때문에 논공행상 당시에도 장수들이 술에 취해 궁궐 기둥에 칼부림을 하는 꼬라지를 보여 왔다. 그런데 이런 장수들이 모두 한 수 접어주고 조참을 1등 공신으로 밀어 줬다. 조참이 유방의 신뢰가 가장 깊고[* 유방은 번쾌, 심지어 소하에게까지도 의심을 보낸 적이 있지만 조참을 의심한 흔적은 정사에서 찾아볼 수 없다. 덕분에 군공으로 이성왕에 봉해진 한신, 팽월, 영포가 모두 몰락하는 와중에도 조참만큼은 상국으로 영화로운 말년을 보낼 수 있었다.] 경력이 오래된 장수이기도 했지만, 조참의 전과 자체도 대단한 것이었다. 조참은 122개현을 함락시키고, 제후국 재상 셋에 장군 여섯을 사로잡았다. 전국시대로 치면 거의 [[기전파목]]급 퍼포먼스인 것이다, [[사마천]] 역시 '조참이 전쟁터에서 공이 많은 근거는 한신과 같다. 한신이 모반하여 죽고 나서 열후 중의 가장 큰 전공자는 조참뿐이다.'라고 사실상 한고제의 장군 가운데 한신 다음의 공훈을 세운 장수라고 평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