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총 (문단 편집) === 지발식(완발식) ===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main-image.jpeg.jpg|width=100%]]}}} || || '''근세 티베트군의 루미총[* 동북아시아에서는 노밀총이라 불렀다.][br]총신 밑으로 길다랗게 달린 건 삼각대이다''' || [youtube(Bk1oWUjS3UQ)] 해당 방식의 사격 절차와 영상 Sear lock matchlock. 지발식은 서양과 [[오스만 제국]], [[사파비 제국]]을 비롯한 중동, 중앙아시아, 중국과 티베트 등지에서 쓰였던 유형의 격발 매커니즘이다. [[오스만 제국군]]이 이 방식 소총을 대거 이용해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 제국군을 [[찰디란 전투]]에서 아작내었으며, 이 전투에서 오스만 총병대가 보인 전과에 깊은 인상을 받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수입하면서 동방으로 전파되었다. 때문에 오스만, 사파비, 그리고 무굴 이 세 국가를 이슬람 [[화약제국]]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이 터키 계열 지발식 총들은 선상전투에 대한 고려 없이 주로 육로를 통해 전파되었기 때문에 개머리판이 생략되지 않았다. 이와 별도로 유럽인들이 바닷길을 통해 들여온 서양식 지발총들도 있었다. 유럽과 오스만을 제외한 주요 사용지역들은 다음과 같다. * '''[[사파비 왕조]] [[페르시아]]''' 당장 오스만에게 박살난 사파비조의 경우 오스만의 화기를 받아들이는 한편 조지아, 아르메니아, 영국 출신 기술자들을 초빙해 화기부대를 강화했고, 이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를 향해 영토를 확장했다. * '''[[무굴 제국]]''' 한편 카불의 군주였던 [[바부르]]도 찰디란에서 오스만 총병대가 보인 활약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자신도 오스만 인들을 초빙해 총기를 만들었다. 그는 이 오스만식 화기부대를 통해 [[파니파트 전투]]에서 아프간계 [[로디 왕조]]군을 쳐부수고 칭제하여 [[무굴 제국]]을 건국, 북인도의 패자로 등극한다. * '''중앙아시아''' 중앙아시아로는 [[트란스옥시아나]]로 파병 나간 오스만 [[예니체리]] 군단을 통해 소개되었고, 사파비조와의 전쟁도 거치며 지발식 화승총이 보급된다. 그 유명한 아프가니스탄의 [[제자일]]도 원래는 이 유형의 파생형이다. 1800년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파슈툰족이 이 총으로 영국군을 몰살하며 유명해졌다. 당장 19세기 소설인 [[셜록 홈즈 시리즈]]에서 [[존 왓슨]] 박사를 의병제대시킨 놈으로 등장할 정도. * '''중국''' 오스만식 총은 [[감숙성|하서회랑]] 너머 손을 뻗친 [[명나라]]와 하미 위구르인들과의 전쟁을 거쳐며 중국으로도 소개되었다. 명나라는 이 양식을 순발식인 조총과는 별도로 루미총([[로마]][* 이탈리아 로마 시가 아니라 오스만이 멸망시키고 계승한 [[동로마 제국]]과 그 수도인 '로마 노바' [[콘스탄티노플]]을 의미. [[룸 술탄국]], [[잘랄 웃 딘 루미]]의 그 룸이다.] 총, 한자로는 魯密총이라고 표기.)이라고 부르며 순발식 총들과 병용했다. 개머리판이 있어 조준이 쉽고, 지발식 구조라 사수가 발사를 정밀히 조작 가능하다는 점이 특히 고평가받았다. 다만 무거워서 무릎을 꿇고 사격해야 했다고. 이와 별도로 오스만 총 계열이 아닌 서양제 지발식 화승총들도 해로를 따라 명나라에 들어와 대서양총[* 전술한 소서양총에 대비되어 대서양총이란 이름으로 도입한 것.]이란 이름으로 도입되었는데, 조사정의 말에 따르면 좋은 총이긴 했지만 루미총에는 미치지 못했다. 조작하기 편한 건 루미와 같고 가벼운데다 사정거리가 길긴 했지만, 루미와 달리 [[개머리판]]이 없어 위력이 약했고 다루기가 힘들었다고 한다. 어쨌든 루미총은 이후 청나라 시대까지 이어질 중국 조총의 표준형이 된다. 후에 조사정은 루미의 총열과 총몸을 바탕으로 하되 개머리판을 병사들에게 익숙한 일본총에 유사하게 바꾸고, 대서양총처럼 서서도 쏠 수 있도록 경량화하는 방식으로 개량한 삼장총을 만들기도 했다. 거기다 그는 격발 장치를 개머리판 안으로 집어넣어, 방아쇠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화약접시가 열리도록 하는 기능도 추가하였다. 이로 인해 발사과정도 더욱 간편해졌다. * '''[[아체 술탄국]]''' 수마트라의 아체 술탄국은 바닷길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화기 기술을 전수받은 사례다. 당시 아체의 무다 술탄은 포르투갈 제국의 침입에 맞서기 위해 수니파 이슬람 세계의 큰형님인 [[오스만 제국]]에 도움을 요청했다. 오스만 황제 [[셀림 2세]]는 이에 호응해 함대에 일부 병력과 수백 정의 오스만식 [[아퀘버스]]를 비롯한 각종 무기들, 그리고 [[군사 고문단]]을 포함시켜 파견해주었다. 이때 수입된 오스만식 화포와 화승총 제작 기술은 아체를 비롯한 인니 지역 술탄국들이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에 맞서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외에도 순발식인 이스팅가나 유럽제 총들도 혼용되었다. 지발식의 격발 방법에 대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전술했듯 순발식에서는 용수철이 용두를 앞으로 밀어놓고 있어 용두가 화문에 머리를 박고 있는 게 기본 상태다. 그래서 발사를 위해서는 용두를 뒤로 코킹해야 된다. 반면, 지발식은 용수철이 용두를 화문의 반대 방향으로 밀어놓고 있다. 그래서 딱히 장전할 필요는 없고, 방아쇠를 당기면 방아쇠가 당겨지는 정도에 따라 용두가 서서히 다가와 화문에 닿는 구조다. 방아쇠를 놓으면 용두가 화문에서 떨어져 원 상태로 돌아간다. 이 방식의 장점은 사수가 방아쇠를 조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방아쇠를 잘못 건드리면 그대로 코킹이 풀려 오발사고로 이어지는 순발식과 달리 이 방식은 방아쇠압이 높기 때문에 오발사고가 거의 없었다. 또한 화승이 화문에 닿기 전에 용두에서 튕겨나가는 일도 거의 없었다. 덧붙여 길다란 [[개머리판]]덕분에 반동 제어도 안정적이었고, 이는 더 많은 화약을 넣어 위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량하는 것을 가능케 해주었다. 이 때문에 서양의 지발식 화승총과 루미총은 대형화되어 강한 화력을 자랑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서양의 화승식 머스켓들은 지나치게 무거워져, 머스켓 사수들은 총을 받칠 거치대를 추가로 가지고 다녀야 했다. 러시아의 상비군인 [[스트렐치]]들은 [[버디슈]]를 거치대로 쓰기도 했다. 위에 티베트군 소총의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중앙아시아에서는 접히는 [[삼각대]]를 부착해 쓰기도 했다. 이는 [[30년 전쟁]] 도중 [[스웨덴 국왕]] [[구스타브 2세 아돌프]]가 무게를 줄여 양 손만으로도 조준 가능한 신형 머스켓을 개발하면서 사라진다.] 결과적으로 지발식은 보병의 집단 운용에 아주 적합했으며, 유럽의 대부분의 군대가 지발식으로 무장했다. 순발식과 병용했던 [[명나라]]도 성능에 있어서는 루미총이 순발식보다 더 좋다고 평가했다. 루미 > 대서양총 > 일본총 순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단점은 방아쇠압이 높아서 반응 속도가 느리고 방아쇠를 당기는 데 힘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이는 진동을 발생시켜 명중률을 떨어뜨리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야전을 중시한 서양과 중동, 중국에서는 집단운용에 유리하다는 명확한 장점 덕분에 이를 그리 큰 단점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명나라는 이 루미총을 단순히 개량하는 것을 넘어서서 아예 거치식 대형총인 총관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방식은 화승총 시기에는 지배적인 방식으로 사용되었지만, 오직 화승총에만 적합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후에 수발식이 일반화되면서부터는 순발식에 자리를 내주고 사라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