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필연 (문단 편집) === 1970~71년 (42~43세) === 드라마 기준, 1~8회 중반. [[파일:external/www.campusweek.co.kr/img_17946_3.jpg]] [[부산]]에서 보안반장([[대위]](당시 '''43세'''))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 [[금괴]]를 밀수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대수와 이강모가 보급품 운송 중 엿들은 것을 신고한 것이다.] 그 일을 자기 선에서 처리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이런 큰 실적을 거둔 그에게 진급을 시켜주진 못할 망정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인사 발표에서 밀려 오지([[강원도]] [[삼척시]])로 발령되자 이에 분개하여 [[황태섭]]을 꼬드겨 밀수꾼들로부터 금괴를 빼앗고 이에 휘말린 [[이대수(자이언트)|이대수]]([[이강모]]의 아버지)를 총으로 쏴서 살해했다.[* 조필연의 살인 행위에 대해 얘기하자면, 조필연이 살인에 익숙한 이유도 군대에서 터득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조필연은 '''"사람 죽이는거? 그거 아무나 하는거 아니지"'''라고 말하는데, 그 얘기를 진지하게 생각해보면, 조필연은 이미 살인 경험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조필연의 기수인 육사 8기는 장교로서 한국전쟁에 투입되었을 것이다. 즉, 그 과정에서 출세를 위해 살인을 전혀 가리지 않는 성격을 가진 조필연이 전쟁 시기, 과연 어떠한 짓을 했을지는 예상이 되는 일이고, 그런 점을 감안 하자면, 좌익학살을 표면적으로 내세운 무차별 양민학살에도 관여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들어,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 토벌 과정에서 토벌대에 의한 양민학살이 벌어졌는데, 조필연 또한 그런 학살에 개입하고 그걸 군 전과로 허위보고 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조필연의 피도 눈물도 없는 살인마적 성격은 전쟁 당시 북한군과의 교전과 좌익학살과 양민학살을 통해 습득된 것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 다만 1949년에 임관한 사람이 1970년에 대위라는게 황당무계한데, 해당 육사 8기는 6.25 발발 당시 중위였고 전쟁중 중대장으로 수많은 사선을 넘나들며 초고속 승진했다. 예컨대 1961년에 육사 8기 [[김종필]] 준장은 35세 나이로 초대 중앙정보부장을 했고, 역시 육사 8기인 [[김형욱]]이 1963년에 제4대 중앙정보부장이 된다. 1962년에 임관한 육사 18기는 되어야 1970년에 대위가 가능. 6.25 이전에 임관한 육사 9기는 중간에 '전쟁중 임관한 육사 10기 -> 갑종 1기~2기 -> 종합행정학교 1~32기 -> 갑종 3~38기'가 있기 때문에 6.25 이후인 1955년 임관한 육사 11기와 승진 차이가 어마어마 했다. 즉, 육사 8기로 1970년에 대위라는 것은 설정 오류. 아무리 진급 인사 발표 누락이라는 설정을 통해 계급을 낮게 잡으려고 했어도 시대상 성격을 반영하자면 연대~단장급의 보직을 가진 대령정도의 계급이 적당한게 맞다. 본래 이대수의 친구이기도 했던 황태섭에게 이대수를 죽이라고 시켰지만, 상황이 마무리됐다고 판단하고 도착했을 땐 황태섭이 차마 자기 친구를 죽이지 못하고 있던 걸 조필연 본인이 직접 죽였다.[* 한국어 [[위키백과]]에 기재된 사항으로 이대수는 [[독립운동가]]였고, 6.25 전쟁 당시 인민군으로 변장하여 숙원이었던 친일파 조만근의 가족을 죽였는데 이때 조필연만이 살아남았다는 설정이 있다. 하지만 극의 전반적인 주제와 이강모와 조필연, 두 인물의 동선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저 설정은 작중에서 한 번도 언급이 안 되는 것으로 보아 기획 단계에서 폐기된 것으로 보인다. 공식 홈페이지에도 저 내용은 없다.] 이 금괴를 당시 [[민주공화당|공화당]] 소속 국회의원이자 국회 재무위원회 위원장인 [[오병탁]]에 바쳤다. 오병탁은 정치 자금 확보를 위해 [[박정희|대통령 각하]] 몰래 [[서울특별시/강남|강남]] 땅 투기를 하고 있었고, 그것이 [[주한미군]]에 포착되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조필연의 뇌물을 받았다. 그 이유는 오병탁 포함 인사들이 미군 첩보부 측에서 자신들이 차명으로 강남에 땅을 산 것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빌미로 대선에 개입하여 박정희의 집권을 막으려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군 측 기밀을 맞바꿔 서로 입을 닫게할 목적으로 벌인 것이다. 그래서 금괴를 가지고 온 조필연의 제의를 받아들였고, 그 대신 중앙정보부에 들어가려는 조필연에게 우선적으로 미8군 한국군 지원단에 자리를 내줌으로써, [[베트남 전쟁]] 관련 미군 기밀문서를 빼오도록 시킨다.[* 작중 배경인 1970년에서 1971년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여론이 전혀 좋지 않은 상태였다. 1968년 구정 대공세 이후 미국 내에 반전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었고, 서방 진영에서도 미국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했다. 비록 당시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전투부대를 파병한 나라였지만, 적어도 한국의 지도부들은 베트남 전쟁이 국제적으로 비난받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만약 미국측 기밀문서가 세상에 공개되면, 미국이 세계언론의 몰매를 맞을테니, 드라마 상에 나온 오병탁 포함 정치인들은 미국 측 기밀을 빼면 자신들의 기밀을 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여기에 [[이성모]]의 도움으로 얻은 공적[* [[중앙정보부]]에서 [[소령]]으로 위장 잠입시키고 베트남 전쟁 [[미군]]의 기밀 문서(작중에서는 [[통킹만 사건]]의 진상이 담겨져 있다고 함)를 확보하라고 지시를 내렸다. 극비 기밀문서라 하는 걸로 봐선 [[펜타곤 페이퍼]]가 분명하다.]까지 더하여 당시 정권의 최고 핵심 권력 기관이었던 [[중앙정보부]]에까지 진출한다.[* 다시 말하지만 1960년대 초에 이미 동기인 육사 8기들이 중앙 정보부장을 하고 나간지 한참 되었는데, 조필연 소령은 이제야 중앙정보부에 들어간다.] 그리고 중앙정보부 [[감찰]]부에서 온갖 전횡을 부려 [[중소기업]]에 불과했던 만보건설을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으로 성장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