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황양이 (문단 편집) == 사상적 기틀 == 존황론과 양이론이 결합된 것이다. 전반적인 핵심 개념은 일본식 [[유교]] 및 [[국학(일본)|국학]]의 일종이라 볼수 있는, 미토가쿠(水戸学)[* "(전기) 미토학." [[미토 고몬]]으로 유명한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학문에 힘쓰고, [[대일본사]] 편찬에 착수하는 등 [[미토시|미토]]를 학문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미토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사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에서 [[유교]]는 [[중국]]과 [[조선]]에서보다는 그 영향력과 파급력이 작았다. 가장 큰 이유로 일본 특유의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다. [[천황]]의 조정과 [[쇼군]]의 [[막부]]로 대표되는 이원화된 정부체제 때문에 일본의 유학자로서는 누구에게 충성을 바쳐야 할지 애매모호 하였다. 유교는 [[동아시아]] 여러 왕조에서 [[왕권]]을 드높일 의도로 많이 연구하고 채택했지만, 유교에서 말하는 '군(君: 임금)'이 누구를 말하는지 일본에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에도 막부]]가 설립되고 사회가 안정화되자, [[막부]]의 권위를 튼실히하고자 충효사상을 강조하는 주자학([[강항]]) 등 [[유교]]를 본격적으로 이용했다. 원칙대로라면 충의 대상은 당연히 그 나라의 임금이어야 하지만, [[일본]]에서는 [[쇼군]]이 실권을 쥐었다. 유교적 명분과 현실이 너무 다른 상황에서 타협하여 '[[천황]]이 군림하되 [[쇼군]]이 통치를 대행한다.'는 인식이 퍼졌다. 천황은 권력을 쇼군에게 잠깐 양도했을 따름이란 것이다. 이를 '대정위임론'이라고 부르지만 딱히 막부에서 공인한 것은 아니었다. 개개인이 그렇게 생각했을 뿐...[* 대정위임론을 명확히 규정함은 참으로 얄궂게도 막부의 생명이 끝나는 [[대정봉환]] 때에나 되었다.] 같은 [[섬나라]]인 [[영국]]이 [[명예혁명]] 이후 군림하는 왕과 [[실권자]]가 구별되는 것과는 다르다.[* [[영국]]은 실권이 의회에 있더라도 어쨌든 최종결재권은 왕에게 있었고, 명예혁명 이전까지는 의회 해산권이 국왕에게 있었기 때문에 국왕이 마음에 안 들면 마음대로 의회를 무기한 해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막부 시기에 [[천황]]은 그저 뒷방 늙은이--임명장 자판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모든 실권과 결정권이 전부 [[쇼군]]에게 있었다. 사실 쇼군들이 천황 자리를 차지하지 않은 것도 초기에는 '[[신토]]의 중심인 천황의 자리를 빼앗았다가는 전 일본을 상대해야 하는 위험을 안게 되어서', 후기에는 '이미 모든 권력이 쇼군에게 있는 만큼 굳이 천황의 자리를 차지할 필요가 없어서'였다.] [[오규 소라이]]와 [[국학(일본)|고쿠가쿠(国学)]]도 이 점에 대해서는 두루뭉술 넘어갔다. 하여, 일본의 유교는 명분론보다는 실리론에 치우쳐진 경향이 크다. 미토가쿠 사상은 전기와 후기로 나뉘는데, 전기는 [[대일본사]]를 편찬한 [[미토 고몬]]이 시작한 학파로 유학([[주자학]], [[양명학]]), [[사학]], 국학, [[신토]]가 결합한 형태였다. 후기는 [[미토(일본)|미토]]번주였고 열렬한 존황양이론자였던 도쿠가와 나리아키[* 15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친부.]가 주도했다. [[오규 소라이]]와 국학의 사상에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에도 막부]] 말기에 이르러, 미토카쿠의 후지타 도코(藤田東湖), 아이자와 야스시(会沢安) 등이 중심이 되어 '임금을 받들고 오랑캐를 쫓아낸다.'는 고대 [[중국]] [[춘추시대]]의 표어를 차용하여 존황양이론을 도입했다. 유학자들은 막부나 미토 번의 후원을 받는 경우가 많았고, 막부 타도를 내세우지는 않는 편이었다. 존황론을 주장했지만 [[에도 막부]]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도막파와는 달리 [[천황]]의 권위를 바탕으로 막부 중심으로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반면 미토학의 영향을 받은 학자들 중에서는 유교적 충 이념에 따르자면 막부는 천황에게 돌아가야 할 권력을 가로챈 역적이니 토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았으며, 존황양이파 하급 무사들에게 많은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