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존황양이 (문단 편집) == 존황양이파의 성격 == 존황양이라는 단어는 '''명분과 주장'''으로 이루어진 표어이다. 사실 존황론은 웅번들에게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천황]]의 권력을 정말로 높이려고 하기보다는 천황의 이름을 빌려 막부를 찍어누르기를 원했다. [[이와쿠라 도모미]] 같은 웅번과 연결된 공경들은 각종 비밀칙서를 천황의 이름으로 [[다이묘]]들에게 하달하였다. 후에 메이지 유신 시대가 열림으로써 천황 중심의 정치체계로 제편되었지만, 허울 좋은 명분이었을 뿐 실제론 사쓰마, 조슈의 가신들을 비롯한 세력이 중심이었고, 천황 또한 자신에게 돌아오는 권력의 집중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웅번들에게 휘둘렸다. 그렇다고 해서 웅번들이 진심으로 양이를 추구한 것도 아니었던 것이, 소위 ‘막말의 사현후’로 불리는 사츠마의 [[시마즈 나리아키라]], 도사의 야마우치 요도(도요시게), 에치젠의 [[마츠다이라 슌가쿠]](요시나가), 그리고 이요의 다테 무네나리 등 '웅번'의 영주들은 근대화를 통한 번정개혁 및 군사력 강화로 명성을 얻은 이들이었다. [[미일수호통상조약]] 관련으로 막부와 조정이 대립하는 과정에서도 다이묘들 대부분은 막부의 개항 결정에 따라가는 경향을 보였다. 실제로 강한 양이 의지를 드러낸 것은 번정에 참여하거나 독립적으로 과격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각 웅번의 하급 무사들이었다. 웅번들이 주창한 양이론은 양이파 하급 무사들의 폭발력을 자신들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이용하기 위한 측면이 강했고, 사쓰마의 [[시마즈 히사미츠]], 도사의 야마우치 도요시게처럼 정세가 바뀌자 번의 양이 과격파([[다케치 한페이타]] 등)들을 [[토사구팽]]해 버리는 경우도 심심찮게 발생했다. 심지어 양이파 하급무사들 중에서도 개항과 서구화의 필요성 자체는 인식하면서도 막부 타도를 위한 명분으로서 양이를 내세운 자들이 상당했으며, 바로 이들이 훗날 양이를 슬쩍 포기하고 막부 타도에 성공하여 메이지 유신의 주역이 되었다. 결국 존황이든 양이든 막부 타도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해먹는''' 신체제 수립의 명분을 확보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에 불과했고, 이는 메이지 신정부에서의 급속한 근대화 및 서구화, 천황의 제한적 권력, 번벌의 정권 장악으로 증명된다. 후세에는 존황양이가 도막파의 전유물로 취급되는 일이 많지만 실제로는 좌막파도 얼마든지 존황양이를 주장할 수 있었다. 애초에 존황양이의 사상적 배경이 되는 미토학 자체가 도쿠가와 [[고산케]] 중 하나인 [[미토 번|미토]] 도쿠가와 가문의 후원으로 정립된 것이고, 막부는 1860년대 초반까지도 공무합체를 위해 고메이 덴노의 눈치를 보며 공식적으로 양이를 표명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마츠다이라 카타모리]]나 초기의 [[신센구미]] 등 보수적인 좌막파 무사들 또한 양이론 성향이 강했고, 이들은 최소한 스스로는 덴노에게 충성을 바치고 있다고 생각했다. 고메이 덴노는 분명한 좌막파였던 카타모리나 쇼군 요시노부를 삿초보다 신뢰했던 것으로 보이며, 카타모리에 대한 호의는 메이지 덴노에게까지 이어졌다. 고메이 덴노와 갈등을 빚은 [[이이 나오스케]]가 비참하게 몰락한 뒤, [[에도 막부]]도 주요 웅번의 다이묘들도 도막파도 존황에는 찬동했다. 다만 다이묘들은 도막이나 양이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쓰마]] · 초기 [[조슈]] · [[토사]] 등 웅번 세력은 막부 자체를 무너뜨리려고 하기보다는 공무합체를 내세워 조정의 권위를 등에 업고 막부 중앙정치에 참여하려 한 경우가 많았다. 반면 [[도쿠가와 요시노부]]는 양이를 주장하는 고메이 덴노의 비위를 적당히 맞춰 주면서 덴노의 권위를 빌려 오고, 지방 웅번들을 견제하며 막부가 계속 실권을 잡고자 했다.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다이묘들의 중앙정치 참여를 무력화한 후, 그 반발로 웅번들은 서서히 막부를 포기하고 도막파로 기울게 된다. 제2차 [[조슈 정벌]]에서 막부가 대패하고 천황의 여동생과 결혼한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에 이어 요시노부를 밀어주던 고메이 덴노까지 사망하면서 도막파는 더욱 힘을 얻었다. 이에모치와 고메이 덴노의 죽음으로 요시노부가 내세울 수 있는 존황 명분은 훨씬 약해졌다. 반면 도막파는 천황에게 정권을 돌려준다는 명분을 내세워 막부와 요시노부, 좌막파([[아이즈 번]] · 구와나 번 등)를 역적으로 몰아가며 무력으로 에도 막부를 타도하고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