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종로타워 (문단 편집) === 순탄치 않은 건설과정 === [[파일:화신백화점 파사드 계획 .png]] 철거가 기정사실화된 상황에서 [[한보그룹]]은 그 자리에 새로운 백화점 신축 계획[* 백화점의 이름도 한보 화신백화점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종각 네거리의 터줏대감이었던 화신백화점의 명성을 그냥 버리기 아까웠던 것.]을 세웠으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끝에 건축가 김무언의 설계안이 확정되었다. 김무언의 설계안은 건물을 원형보존할 수 없다면 새로 짓되 적어도 구 화신백화점 건물의 전면부, 즉 파사드만 남긴 뒤 신축 건물에 대입하는 방식[* 구 대법원 청사였던 서울시립미술관과 구 [[서울특별시청]] 청사였던 [[서울도서관]]이 이렇게 외형이나마 보존되었다.] 으로 화신백화점의 장소적 역사성을 보존하려는 의도가 담겼다. 1987년 마침내 신규 건축 허가가 떨어지면서 화신백화점은 폐업되고 그 해 철거가 시작되었다.[* 건축허가가 떨어진 다음 날인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3170020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3-17&officeId=00020&pageNo=12&printNo=20139&publishType=00020|87년 3월 17일]]에는 [[동아일보]] 등 각종 주간지에 전면광고까지 실어가면서 임대를 받기 시작했다. 덕분에 올 컬러로 당시의 설계안 및 분양계획을 볼 수 있다.] 계획대로였다면 1989년에는 지하 5층 지상 18층 규모를 가진 옛 화신백화점의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초대형 백화점이 종로 한복판에 세워졌을 것이다. 그러나 자금 압박으로 인해 급전이 필요했던 한보[* 이 매각으로 위기를 넘긴 한보는 앞으로는 주력인 철강, 탄광, 건설사업에만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몇년 뒤 찾아온 [[1997년 외환 위기]]로 해체되었다. 당시 한보가 철강 같은 대자본이 필요한 산업 대신 백화점 등 유통업을 선택했으면 외환위기를 넘겼을 수도 있다. 철강업은 재계순위 최상위권의 대재벌에서 가능한 대규모 사업인 반면, 유통업은 재계순위 10~30위권 기업들에게 적당하다. 또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는 거대 재벌들이 앞다투어 거대산업을 하고싶어 했던 때라서 매각을 시도했다면 어렵지 않게 제값 받고 매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때 유통을 잡았다고 해도 1990년대 1기 신도시 붐때 대대적인 출점으로 문어발식 확장을 했다가 외환위기때 망한 [[뉴코아그룹]] 같은 길을 걸었을 수도 있다. 한보 회장의 기질대로라면 충분히 그런 전철을 밟았을 가능성이 있다.]에서는 같은 해 부지를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에 재매각하게 된다. 당시 [[영등포역]]과 [[청량리역]] [[민자역사]] 유치를 시도했으나 [[롯데쇼핑|롯데백화점]]에게 번번히 고배를 마시던 상황에서 [[신세계(기업)|신세계백화점]]의 점포 확장을 위해 삼성이 나선 것이다. 1987년 말 [[이병철]]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미국]]의 건축가 엘레비 베켓에게 건물의 설계를 의뢰했다. 그리고 1990년 확정된 계획안은 기존 김무언의 설계도와는 확연히 다른 형태의 건물이었다. 그래도 구 화신백화점 건물의 전면부 전체에서 주 출입구로 한정하는 방향으로 그 범위를 줄었지만 파사드 계획을 변경 없이 지속함으로서 화신백화점의 역사를 신축 건물에 계승시키려는 의도 자체는 유지되는 듯 보였다. 동방-화신백화점(혹은 신세계백화점 종로점)으로 명명된 건물은 그렇게 확정된 설계안대로 올라가기 시작했고 1993년 드디어 골조공사가 마무리되었다. 골조를 끝냈으니 이제 마감공사를 시작해야 했지만 공사가 전면 중단되었다. 그 이유는 당시 건축주 [[이건희]] 회장이 상업시설에서 업무시설로 설계방침 및 용도변경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1993년 당시의 삼성은 [[위로부터의 개혁|위로부터의 적극적인 혁신]]을 시작, 모든 직원에게 '가족만 빼고는 모든 것을 바꾸라'고 요구했으며, 신축중인 건물도 이러한 방침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이미 신축 건물의 골조공사가 완성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차라리 기존 골조를 철거하고 처음부터 다시 짓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있었으나, 결국 건물을 개축하는 형태의 새로운 설계안을 공모했다. 1995년 라파엘 비뇰리의 설계안이 당선되었고, 지상 18층으로 계획되었던 건물이 33층으로 확장되면서 기존 골조의 대대적인 보강이 필요했다. 세 개의 타워형 코어 위에 고리 모양의 스카이라운지를 얹는 오늘날의 모습이 이때 확정되었다. 반면 종로의 역사적인 장소성 계승보다는 새로운 삼성, 삼성의 미래지향적 이미지를 추구하는 건축주의 의도를 충실히 반영한 새 설계안에서는 아쉽게도 구 화신백화점의 역사성을 어떻게든 살려보려던 이전 건축가들의 시도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설계안이 확정된 1995년 공사가 재개되었고, 1999년 9월 종로타워가 완공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