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시경 (문단 편집) == 기타 == * 서구권 알파벳의 영향인지 풀어쓰기를 주장했었다. 이는 당시 제대로 된 한글 [[타자기]]가 나오지 않았던 이유도 있는데 이는 이후 최현배 등의 국어학자들에 의해 실험되었으나,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모아쓰기의 승리. 모아쓰기 타자기는 이후 안과의사인 [[공병우]]에 의해 개발되었다. 자세한 것은 [[풀어쓰기]] 참조. * [[이승만]]이 [[고종(대한제국)|고종]] 퇴위 음모에 연루되어 한성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주시경이 탈옥용으로 [[리볼버]]를 몰래 넣어준 적도 있다고 한다. * 본래는 [[개신교]] 신자였지만 [[대종교]]로 개종했으며 동시에 다른 개신교인들에게 대종교 같은 민족 종교를 믿으라는 개종 운동을 전개하여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다시 개신교로 돌아왔다고도 한다.[* 말년에 별세할 때까지 상동청년학원, 배재학교, 이화학교 등 개신교 계통 학교 교사로 활동했으며 장례식 또한 감리교 상동교회에서 거행됐다고 한다.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304589|#]]] 한때 종교적인 주제로 주시경과 논쟁을 벌인 [[전덕기]]라는 [[감리회]] 목사도 있었다. 전덕기 목사 역시 주시경 선생처럼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였는데 나이도 비슷했고[* 다만 전덕기는 1875년생으로 주시경보다 한 살 많았다.] 1914년 한창 나이로 비슷하게 38세에 요절했다. * 한글이라는 말은 주시경이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한글을 창제한 건 [[세종(조선)|세종대왕]]이지만 그 때는 한글이라고 하지 않았고 [[훈민정음]](줄여서 '정음')이라고 했으며 민간에서는 '언문', '암클', '아해클'[* '언문'의 경우 훈민정음 '''언해본''' 등의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 비교적 중립적으로 훈민정음을 지칭하는 표현이었으나, 암클은 '암놈이나 쓰는 글', 아해클은 '아이들이나 쓰는 글'이라는 비하적 표현이다.]이라는 낮춤말이 더 많이 쓰였다. 한글은 [[조선시대]] 내내 있었지만 주시경이 사실상 현대인이 사용하는 한글을 정립했는데, [[한글날]]에 세종에게 밀려 어째 언급이 안되는 인물 중 하나지만, 현대 한글의 아버지는 주시경인 셈. 맞춤법도 주시경이 만든 것이므로 사실 맞춤법이 틀리는 상황에서는 세종이 아니라 주시경을 소환하는 것이 옳다. 다만 이것도 정확하지 않은게 훈민정음 반포 이후 [[임진왜란]] 전까지 조선 정부 차원에서 [[한자]] 독음 표준화를 포함한 언어 표준화를 줄곧 실시해왔기에 맞춤법의 초안은 그 때 완성된 것. 따라서 개항기 무렵 존 로스 선교사가 맞춤법을 사용하는 등 규범표기 자체는 이미 존재한 상황이었다. 다만, 이것을 현대화하고 정립한 것이 주시경이고 주시경의 제자들로 구성된 [[조선어학회]]에서 집대성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이 남북한 현행 언어규범의 직계 전신이 되었다. 간단히 말하면 규범화는 조선전기에 이미 한 차례 이루어졌고 근대에 다시 규범화가 이루어질 때는 아래아, 순경음비읍 등 현대 [[한국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기호들을 제거하는 등의 소규모 작업이 있었다. * 주시경의 제자들 또한 국어 연구에 큰 발자취를 남겼으며 한국어를 연구하고 한글을 쓰기 쉽게 다듬어 한국어를 근대성을 지닌 언어의 반열에 올려놓는데 이바지했다. 주시경의 제자들 중 유명한 사람은 [[북한]]의 초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낸 한글학자 [[김두봉]], 대한민국에 남았던 동문 [[최현배]]로 남북한 모두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이 언어 정책을 맡아 남북의 언어가 지금까지도 서로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이러한 주장은 상당히 엘리트주의적인 언어관으로서 규범이 언어생활을 규제하고 선도해야 한다는 [[규범주의]]이다. 기술주의적 관점에서 남북의 언어가 애초에 크게 다르지 않은 이유는 같은 스승을 둔 제자가 각각 남과 북에서 언중들을 '''영도/령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차이가 크지 않았던 서울말과 평양말을 중심으로 표준어/문화어가 발전했기 때문이다.] 그의 다른 유명한 제자로는 이규영, 김윤경, [[권덕규]] 등이 있으며 550명 정도가 주시경 사후 본인이 주시경의 제자였음을 주장하였다. * [[배재고등학교]]의 주시경관은 그가 [[배재학당]]의 졸업생이라 세워졌다. * 1980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에 추서되었다. * 2019년 개봉한 영화 <[[말모이]]>는 그의 제자들이 모여서 만든 학회가 겪은 소요인 [[조선어학회 사건]]을 묘사한다. * NYU 언어학과 대학원생 중에서 자신이 주시경의 후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https://vm.tiktok.com/TTPd2p9Wqs/|틱톡영상]][[https://sarahfphillips.com/|#]] * 1959년 개봉한 영화 <[[독립협회와 청년 리승만]]>에서는 배우 [[남궁원]]이 연기했다. *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하루전에 죽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