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고한어 (문단 편집) == 상세 == 중고한어 [[음운]] 재구에 우선 사용된 자료는 [[601년]]에 발간된 [[운서]](韻書) 《[[절운]](切韻)》 초판 및 그 개정, 확장판이었다. 그러나 《절운》에서 음을 표기하는 데 쓴 [[반절]]이란 방법은 이전의 방식보다 분명 나았으나 정확하게 소리를 보여주지는 않았다. 따라서 재구과정에서 칠운의 음운체계를 좀더 정교하게 분석한 [[12세기]] 중반의 《운경(韻鏡)》등 다른 사료도 이용하였다.《운경》은《절운》이 발간된 지 수 세기가 지난 뒤 쓰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음운변화를 반영하였다. 몇몇 언어학자들은 《절운(Qieyun)》이 쓰일 당시의 중국어를 조기중고한어(Early Middle Chinese)로, 그리고 《운경(韻鏡)》이 쓰일 당시의 중국어를 만기중고한어(Late Middle Chinese)로 구분하기도 한다. 중고한어가 쓰이던 시기(특히 [[당나라]]~[[북송]])는 [[중원]]의 문화적 영향력이 매우 컸던 시기였기에 [[한자문화권]] 국가의 한자 발음이 대부분 이 시기에 유래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유튜브에서 상고한어와 중고한어, 기타 역사적 중국어 발음으로 같은 시를 읽는 영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중고한어가 비교적 한국어 한자 발음과 유사하다. 또한 본격적으로 [[장강]] 이남을 넘어 우이산맥~난링산맥 이남까지 이주하던 한족이 생기던 시기였기에 [[객가어]], [[광동어]] 등의 방언에는 중고한어의 흔적이 비교적 더 남아있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어와 객가어의 한자 발음이 가장 유사하다고도 한다. 또한 여기엔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다. [[중세 한국어]]의 흔적이 [[경기 방언]]([[서울 방언]])보다 [[제주 방언]], [[동북 방언]], [[경상 방언]] 등에 더 많이 남았음과 비슷한 이치이다. 다양한 (지역)언어와 접촉할수록 당연히 더 빠르게 언어가 변화하기 때문에, 예부터 다양한 집단이 혼거했던 [[관화]]를 바탕으로 하는 [[표준중국어]]는 옛 시절과 비교해서 발음이 더 많이 변했음이 당연하다.[* 쉽게 위키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관심이 큰 문서일수록 열람이 잦고 편집 횟수가 많아져서 문서 내용이 더 많이 변할 것이다. 취소선 드립이나 (...)같은 특징적 서술이 비교적 많이 남은 문서도 관심이 적은 문서에 많다..][* 한서를 바탕으로 만든 기원후 2년경 중국 대륙 인구 밀도 지도[[https://i.imgur.com/qvTDkZn.png|#]][[https://www.reddit.com/user/Fornadan/|출처]]] 가끔 중국 남부 사람들은 자기들 방언을 가지고 '중세의 발음을 더 보존하였으니 우리가 진짜'라고도 하지만 틀렸다. 중세의 언어가 태초의 모습도 아닐뿐더러, 언어는 빠르든 느리든 계속 변하기 때문이다. 당장 수십 년 전 뉴스 영상만 보더라도 현재와는 다른 억양을 느낄 수 있다. 우이산맥~난링산맥 이남으로 이주한 한족은 토착민과 교류하고 통혼하며 유전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다. 사회 문화적 주류는 여전히 한족이었기에 언어적 주도권은 유지했겠지만 변화가 없지는 않았다. 언어 권력을 쥐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변화가 느렸을 뿐이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0409/htm_2004090818291440004300-001.GIF|#]] 다만 객가어는 북중국 관화(Mandarin) 계통이고, 객가인은 유전자 풀의 대부분이 북중국인 혈통이라고 한다.[* [[https://pubmed.ncbi.nlm.nih.gov/14577381/|#]] [[https://historum.com/proxy.php?image=http%3A%2F%2Fimageshack.com%2Fa%2Fimg922%2F3269%2FUeyiia.jpg&hash=bbb31387b11189122799fbc91a7988e6|#]]] 사실 객가인은 폐쇄적이고 보수적인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물론 토착민과 교류하고 통혼했겠지만, 상대적으로 빈도수는 적었을 것이다. [[한국 한자음]] 역시 중고한어, 특히 당나라 대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일본 역시 그렇지만, 한국은 초/중/종성을 나누어 들여와 상대적으로 원음을 보존했다. 물론 한국식 한자음도 이후 한국어의 음운 변화의 영향을 받았기에 처음 들여올 때의 그 한자음을 그대로 보존한 것은 아니다. 중고한어 시대부터는 중국에 음운학 개념이 어느 정도 정립되어, 음절구조를 성모(聲母), 운모(韻母), 성조(聲調)로 분류하였다.[* 이 분류는 근고한어, 나아가 현대 중국어의 각 방언의 음절 구조를 설명할 때도 그대로 이용된다.] 더 나아가서 운모는 다시 운두(韻頭), 운복(韻腹), 운미(韻尾)로 나뉜다. 중고음을 재구한 대부분의 모델에는 보통 활음 /j/와 /w/, 연속된 /jw/ 모두 다 들어가나, /i/ 혹은 이중모음 /ie/을 활음으로 포함시키는 경우도 있다. 운미로서 /j/, /w/, /m/, /n/, /ŋ/, /p/, /t/, /k/는 널리 받아들여지는데 때때로 /wk/나 /wŋ/ 같은 추가적인 종성이 포함되기도 한다.[* Norman, Jerry (1988), Chinese,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칠운에서 같은 운율로 짝지어진 음절들은 운복과 운은 같되 운두는 많은 경우 운두는 달랐다고 여긴다. 중고음의 재구는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자음에서는 거의 합의에 도달한 반면 모음에서는 저마다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칼그렌의 설을 수정한 리팡구이의 재구와 윌리엄 백스터의 재구이다. 아래에서 중고한어 및 현대 중국 제어(諸語) 및 인접 언어(한국어, 일본어, 베트남어) 한자 발음 10종류를 비교해볼 수 있다. [[https://ai.glossika.com/free-download/glossika-ten-language-dictionary-of-chinese-characters]]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