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공업 (문단 편집) ==== 박정희 정부 전기(1962~1971) ==== 미국정부의 무상원조가 끊기자 삼백산업[* 미국의 주요 원조품인 밀가루, 설탕, 면화를 가공하는 경공업 산업을 일컫는다.]이 무너져서 한국에는 심각한 불황이 닥쳤고, 이로 인하여, 이승만 정권이 무너졌다. [[장면 내각]]은 이승만 정권의 경제진흥책을 수정하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했으나, 정권이 1년도 못채우고 [[5.16 군사정변]]으로 무너져 국민들의 경제적, 정치적 요구를 하나도 이루지 못했다.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앞선 정권들이 중공업 진흥책에 실패하고 [[경공업]]에 의존하다가 경제발전에 실패하여 퇴진하게 된 것을 그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고, 군인 출신들인 자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자주국방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공업발전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전 정권들과는 확연히 다른 추진력으로 중공업발전을 도모했다. 박정희 정부는 [[대한제국]] 시절부터 [[장면 내각]]에 이르기까지 어떤 이유로든 육성에 도전하지 않던 제철산업 육성을 도모했다, 1968년에 [[한일수교|한일국교정상화]]로 얻어낸 자본으로 포스코를 설립하여 중공업 발전의 포문을 열었다. 1968년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처음으로 개통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비슷한 시기에 [[HD현대중공업|현대조선]]과 [[삼성전자]]가 창설되어 각각 조선업과 전자산업의 모태가 되었다. 한국의 중공업 산업 중 가장 먼저 시작된 자동차산업도 큰 지원을 받아서 1962년 4월에 자동차공업 5개년 계획을 발표했고 국산자동차 공업 보호육성법을 입안하며 그해 8월 새나라자동차[* 이 회사가 훗날 [[신진자동차]]와 통합해서 [[대우그룹]]에 넘어가서 [[대우자동차]]가 되었다.] 공장을 준공하여 자동차 생산 수를 획기적으로 늘렸다. 이 시기는 대한민국 중공업이 양적으로 크게 발전한 시기였다. 한국의 주요한 중공업 기업은 이 시기에 태동하거나 발족했다. 이 때, 야당에서는 중공업발전에 대한 투자가 실패로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가 중공업산업 위주로 발전을 결정한 것은 한반도의 안보환경 때문에 자주국방을 위한 선택이기는 하여도 결과적으론 상당히 옳은 결정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