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구(인천광역시) (문단 편집) === 원도심 === [[인천광역시]]의 방위와 관련된 지명(동인천, 하인천, 상인천)은 이 지명이 예로부터 내려오던 것이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행정편의를 위해서 생긴 명칭이다. 당시 인천부(즉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 의해 축소된 인천부)는 면적이 인천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만석동, 남쪽으로는 용현동 부근, 동쪽으로는 도화동 일대에 국한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영종국제도시를 제외한 중구, 동구, 남구의 서쪽 일부만 해당한다.] 당시 한국 최대의 염전지대였던 주안과 남동구, 서구 일대(가좌동에 국한됨)는 '''경기도 부천군''' 관할이었으며, 부평구는 사실상 '''경기도 부천군의 중심지'''였고,[* 애초에 부천이라는 이름의 뜻이 부평+인천이며, 1914년 당시 명목상 중심지는 부천군청이 설치된 지금의 남구 관교동/문학동쪽.] 서구 일부(검단)는 '''경기도 김포군'''이었다. 이미 이러한 지명들이 정착한 뒤에야 주안이 1930년대에, 부평이 1940년에 인천으로 편입되었으므로 이 지역들을 무시하고 이해하는 것이 매우 빠를 것이다.[* 현재의 개념상 방위로 칠 때 인천시청이 구월동으로 고정되는 것을 기준으로 판단될 경우, [[남동구]]를 중구와 남촌구로 분할하여 고정해야 하고, 서구는 북구, 중구는 서구, 동구는 화도진구, 남구는 문학구 혹은 미추홀구, 부평구는 동구[* 하지만 기존의 부평이라는 지명이 매우 익숙하기 때문에 이 명칭은 바뀌지 않을 확률이 매우 높다.], [[계양구]]와 [[연수구]], [[강화군]] 등은 현재대로 써야 바람직하고 옳은 명칭이 성립되는 조건이 있다.] 일제는 편의상 인천을 '''상인천''', '''하인천''' 으로 나누게 된다.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자유공원]]을 인천의 중심으로 둔 것은 이 당시 인천부 청사가 자유공원 기슭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천부 청사는 해방 이후 경기도 인천시의 시청으로 쓰여졌고 1985년 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된 후부터는 중구청 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동쪽은 상인천, 서쪽은 하인천으로 하였던 것이다. 이와 관련된 유적이 있는데, 바로 자유공원 밑에 있는 [[홍예문]]이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문이 아니라, 일제가 상인천 지역과 하인천 지역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1900년대]] 초반에 산사이를 뚫어 만든 문이다. * [[동인천|동인천(상인천)]]: 상인천은 현재의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하여 전동, 신포동, 용동 일대를 일컬었다. 참고로 [[상인천중학교]]의 상인천은 여기서 유래한다. 원래 배다리 율목동에 있던 인천고등학교 (현 정보산업고 자리)에 병설로 생긴 까닭에 상인천 중학교로 명명된것이다. (물론 인천중학교라는 명칭을 제물포고등학교에서 이미 선점했던 까닭도 있다. 제고의 전신이 인중이기 때문이다.) 동인천은 상인천과 더불어 사용된 명칭이다. * 하인천: 하인천은 [[인천역]]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사동, 북성동, 신생동 일대를 지칭하는 곳이었다. 오래전부터 인천역 주변을 하인천이라 통칭한다. 현재 인천역 앞의 지구대도 하인천 지구대라 통칭. 과거 축현역을 상인천으로 개명한 이후 인천역을 하인천으로 통칭한 듯 하다. '원(原)인천' 또한 다중적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구한말의 개항을 시점으로 개항 이전의 원인천과 개항 이후의 원인천으로 나누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개항 이전 원인천(전근대적 원인천): 지금의 미추홀구 '''관교동, 문학동 일대'''. [[인천도호부관아]]와 인천향교 소재지이며, 관교동이라는 이름 자체가 인천도호부 관청과 인천향교에서 유래된 것이다. 또한 문학산 기슭에 비류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문학산성('미추홀 산성'이라고도 한다)의 흔적이 남아있다. 따라서 삼국시기때 '미추홀'은 [[제물포]] 일대라기 보다는 지금의 문학동 일대 지역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인천의 역사를 자세히 알고 있지 않는 이상, 이곳이 원인천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일반인(특히 인천 출신이 아닌 경우)이 잘 알지 못하는 편. * 개항 이후 원인천(근대적 원인천): 개항 이후[* 강화도 조약에 따른 [[제물포]] 개항을 한국 근대의 출발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인천의 경제적, 사회적 중심이 관교-문학 지역에서 '제물포'로 옮겨짐에 따라 인천부 청사도 관교동에서 '''제물포'''로 이전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의 원인천은 '제물포'나 '동인천' 또는 '상/하인천'로도 통할 수 있다. '''일반인들이 어렴풋이 알고 있는 원인천의 의미는 이쪽이다.''' * 넓은 의미의 원인천: 넓은 의미의 원인천은 현 인천광역시 지역 중에 부평도호부(+ 김포군 검단면) 지역(부평구, 계양구, 서구)이 아닌 '''인천도호부 지역이었던 인천 중구, 동구, 미추홀구(+부평구 십정동), 연수구, 남동구 일대'''를 가리킨다. 인천도호부 지역이었던 경기도 '''시흥시 북부'''(구 소래읍)도 포함되기도 한다. 이 밖에도 경기도 부천시(시역 대부분이 부평도호부 소속)의 계수동과 옥길동, 경기도 광명시(시역 대부분이 오리지널 시흥군 소속)의 옥길동도 인천도호부 소속이라 이쪽 의미의 원인천에 속하긴 하나 그쪽 동네에선 존재감이 없는 동네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