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공산당 (문단 편집) === [[능력주의]]와 [[꽌시]]의 공존 === [youtube(76nPUtGl-KM)] [youtube(AXcf8XmAtF4)][* 중국공산당에 들어갈 수 있는 법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의 당원 선발 절차는 매우 엄격하고 까다롭다. 먼저 [[무신론자]]여야 하고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약칭 공청단)이라는 예비 조직에 들어간 뒤에 약 3년이 걸리는 능력 검증 절차를 밟는다. 하지만 거꾸로 실력있는 사람들을 당원으로 받아서 체제를 유지하고 당 내의 세대 교체를 하려고 하는 기능도 있다고. 실제 사례로 중국 [[베이징대학]] 학생들은 [[1991년]]에는 5%, [[2009년]]에는 10%가 공산당 당원으로 입당하는 등 점점 입당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심지어 처음엔 차단되었던 자본가들도 많이 입당했다. 그래서 그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는 '[[꽌시]]', 즉 [[인맥]]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며, [[정경유착]]도 상당히 심각하다. 더군다나 [[정경유착|정부와 기업, 민간이 힘을 합쳐 그것을 덮기 위해 사실상 통제한다고 보면 된다.]] 공산당 최상층부에는 '''[[태자당]]'''이라 불리는 [[개국공신]]의 2세, 3세들이 상당수 있다. 하지만 '''[[공청단]]'''에서 제도적으로 고급 당료가 끊임없이 수혈되고 있기 때문에 태자당이 고위직을 독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태자당과 공청단이 서로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상호견제 하기도 하고, 그 드넓은 중국의 모든 지역을 커버하고, 당이 모든 것을 지도한다는 방대한 공산당 당조직의 전부를[* 장관급 공직자만 400명에 달하는 나라다. 직급 인플레가 있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중국은 인구 수천 만에 달하는 일급행정구만 31개에 당이 사법부와 입법부는 물론이고 경제와 문화, 과학 등 모든 분야를 영도하기 때문에 당과 정부조직이 거대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 중에서도 요직과 한직이 갈리지만, 한국에서 의전서열만 높고 실제로는 명예직일 뿐인 자리들과는 달리 이런 관직에 있는 사람들도 고위관료들 사이에서 밀릴 뿐 실제로는 어마어마한 권력자이다.] 특정 파벌이 전부 장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 일례로 현 [[시진핑]] 국가주석은 정통 태자당이고, [[후진타오]] 전 주석은 공청단 출신이다.[* 후진타오는 공청단 후배인 [[리커창]]을 차기 대권후보로 밀었으나, 태자당과 [[상하이방]]의 견제 때문에 결국 시진핑 [[중국 주석|국가주석]], 리커창 [[중국 총리|국무원 총리]] 체제로 결론이 났다.] 여기에 지방조직[* [[중국]]에서 최고위직에 오르려면 지방행정 실무경험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시진핑]]만 하더라도 [[허베이]], [[푸젠]], [[저장성]] 등을 거쳤다. 이렇기 때문에 [[베이징]]에서 주재하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오를 수 있는 직위가 [[장관]]급이 한계이다. 학자 출신으로 당 중앙정책실에만 20년을 있었던 [[왕후닝]]이 이례적으로 상무위원 자리까지 오르긴 했지만 이런 사례는 극히 예외이며, 당중앙에서 출세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지방 조직을 거쳐야 한다.]에서 실력을 검증받지 못하면, 최고위직까지 오르기가 힘들다. 아무리 부모 덕을 보더라도 [[20대]] 중반부터 시작하는 당조직 말단에서 30년 안에 4-5 단계의 직위를 '''한 번도 미끄러지지 않고 고속 승진'''해야 정치국 상무위원(정원 7명)의 후보자로 들 수 있는 당 중앙위원회(정원 205명)에 진입할 수 있다. 실력을 입증하더라도 비리에 연루되는 등 구설에 오른다면 그것을 덮어줄 수 있는 최고위층 인맥의 적극적 비호가 있지 않는 이상 낙마할 수 있다. [[장쩌민]]도 80년대 상하이에서 부정부패 문제로 날아갈 뻔 했다가 보이보[* [[보시라이]]의 아버지]의 구원으로 살아남았고 [[시진핑]]도 푸젠 시절 밀수사건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는 등의 위기를 겪었다. 물론 [[시진핑]]과 같은 태자당 인사들이 출세에서 부모 덕을 본 것은 맞지만, 신중국 수립 초기부터 부총리급 이상의 직위를 지낸 인사의 자녀들은 수백 명에 달했으니 고위직에 오르기까지 대단한 경쟁을 뚫어낸 것이 맞다. 결국 본인의 능력도 있어야 한다는 말. 덩샤오핑의 9자녀들 가운데서도 [[장관]]급까지 오른 자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전국 정협]] 부주석 덩푸팡 뿐이며, 이 자리도 거의 [[장애인]] 할당으로 얻은 자리다.[* [[시진핑]]의 아버지인 시중쉰보다 더 끗발좋았던 [[아버지]]를 둔 [[보시라이]](개국공신 보이보의 아들)는 7인에 뽑히는 것이 유력했으나, [[2012년]]에 비리로 몰락했다. 보시라이의 몰락은 역설적으로 [[시진핑]]의 집권을 도왔는데, 태자당 내 유력 주자 한 명이 날라가면서 당 중앙위의 태자당의 표가 분산되지 않고 시진핑으로 집결된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