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동 (문단 편집) === 역사 === 중동이라는 말에서 흔히 [[사막]]을 연상하지만,[* 단순히 면적으로만 따지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사막'이라고만 단편적으로 파악하면 중동 인문지리에 대한 이해를 망칠 수 있다. 비유하자면, 한반도의 절반 이상이 산지라고 해서 한국인들이 산속에서 사는건 아니듯이, 중동 사람들 역시도 살기 좋은 곳에 집중적으로 모여서 산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도 불리는 지역에서는 다른 곳보다 일찍이 문명이 발생하였다. 기원전 4000년 경부터 각종 도시와 국가가 성립되어 수많은 세력들이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일단 [[이집트 문명]]과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원지며, 이후 [[고대 이집트]], [[수메르]], [[아카드]],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히타이트]], [[이스라엘 왕국]]과 [[유대 왕국]] 등이 주요 국가이다. 그러다 기원전 6세기 경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에 의해 비옥한 초승달 지대 전역이 통일되었다. 그 후 200년 동안 안정되어있다가 기원전 4세기 경 [[마케도니아 왕국|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아케메네스 왕조를 정복하면서 이 지역을 지배하는 듯 하였으나, 알렉산드로스 사후 제국은 [[마케도니아 왕국]], [[셀레우코스 왕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등으로 분열되었다. 이 때 [[그리스]] 문화가 중동에 유입되었다. 그 후 기원전 1세기~ 기원 후 1세기 경 [[로마 제국]]이 [[아나톨리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등을 지배하면서 로마 문화의 영향도 적지 않게 받았다. 로마 점령 기간에 시리아 지역에 [[유대교]]를 뿌리로 한 새 종교 [[기독교]]가 등장하였고, 기독교는 박해를 받으면서도 유럽, 중동 지역으로 교세를 확장하였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이란]] 지역에는 [[파르티아|아르사케스 왕조]], [[사산 왕조]]가 세워져 로마와 대립하며 조로아스터교 등의 독자적 문화를 발전시켰다. 7세기에 접어들자 [[아랍]] 지역에서 [[이슬람]]이 발흥하여 동로마로부터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를 점령하고 페르시아를 완전히 정복하여 중동 대부분 지역이 아랍-이슬람 문화권이 되었다.[* 이슬람 발흥 전 시리아, 이집트, 북아프리카 지역은 기독교 문화권, 이란은 조로아스터 문화권이었다.] 아랍인들은 동로마와 페르시아에 비해 문화적으로 뒤떨어져 있었지만 정복지의 제도와 문화적 유산들을 빠르게 받아들였으며, 그 결과 8~11세기 동안 중동 지역은 정치, 경제, 문화 전반을 통틀어 황금기를 누릴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극동의 [[신라]]까지 아랍, 페르시아 상인들이 진출했으며, 신라가 그려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 이드리시의 지도도 이 시기에 나왔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거의 대부분을 지배하던 [[압바스 왕조]]의 통제력이 약해져 지방 군벌 세력들이 난립하고, [[용병]]으로 유입되기 시작한 유목민 [[튀르크]]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오기 시작하면서 중동 지역은 극심한 정치적 혼란 상황에 빠졌다. 이에 더해 11세기 말에는 [[유럽]]에서 [[십자군 전쟁]]을 일으키고, 13세기 초에는 [[몽골]]이 쳐들어오는 외우내환의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유럽 십자군 세력은 [[이집트]]와 시리아를 중심으로 한 서부 이슬람 세계가 정치적 통일성을 되찾자 얼마 버티지 못하고 격퇴되었으나, 이란을 중심으로 한 동부 이슬람 세계는 튀르크인 도래 이후의 오랜 정치적 혼란에 뒤이은 몽골의 무자비한 약탈과 파괴로 인해 황폐화되었다. 게다가 중동 지역 대부분은 [[사막]] 혹은 건조 기후이기 때문에 원래부터 농경지로 쓸 만한 땅이 많지 않았는데, 메소포타미아를 중심으로 한 관개 시스템 역시 수천 년에 이르는 집약적 농업으로 인한 토양의 염화[* 비가 내리지 않는 땅에 지하수를 퍼서 농사를 지었는데, 비가 안 와서 토양의 염분이 씻겨져 나가지 않고, 대신 지하수의 염분이 표토층에 누적되는 이유로 토양에 염분이 과도하게 축적되는 현상]와 관개 시설의 파괴, 사막화로 인해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13세기]] 이후 중동 지역은 인구-생산력 측면에서 유럽 지역에 비해 열세에 놓이기 시작했고, 곧 문화-기술적 측면도 유럽 지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따라잡히게 되었다. 그나마 비단길, 바닷길을 이용한 아시아-유럽 간 중계 무역으로 큰 이득을 보았지만, 이 역시 지리상의 발견과 [[대항해시대]]의 시작으로 막히게 되었다. 또 중동권 역시 [[흑사병]]에 의해 유럽 못지 않은 피해를 입었다. 그나마 중동 일대를 석권한 [[오스만 제국]]이 [[15세기]]~[[16세기]] 강력한 군사력으로 유럽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지만, 오스만 제국의 경제력은 유럽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 뒤쳐졌다. 3개 대륙에 이르는 영토를 차지하고 전쟁에서 유럽 국가들을 압도하던 16세기의 오스만 제국조차 인구 수로 따지면 유럽 전체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사실 중동은 유럽과 달리 땅이 척박해서 농경지가 많지 않다 보니 인구가 늘어날 인프라가 부족하다. 그러다 보니 옛날부터 중동의 인구는 유럽보다 훨씬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중동의 인구가 현대에 들어서 폭발적으로 늘어난것은 석유의 발견과 오일 머니로 벌어들인 돈빨로 인프라를 충족시켰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 결과 오스만 제국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전쟁 수행 능력조차 쉴레이만 1세 사후 유럽 국가들에게 급속히 따라잡혔고[* 애초에 오스만 제국이 유럽을 이길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이 유럽 국가들의 국가 체계가 봉건제 때문에 부실했고 내부 단합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대항해 시대를 지나면서 급속히 발전하면서 중앙집권을 확립하고 내부가 단합되면서 유럽 국가들이 오스만 제국을 능가하게 된다. 결국 유럽이 끝내 국민개병제를 실시한 후부터는 오스만의 유일한 강점이었던 동원력과 전쟁 수행 능력 또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1683년 [[2차 빈 포위]]의 실패를 기점으로 오스만 제국은 점차 "유럽의 환자"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막대한 양의 은화가 유입되는 가운데,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은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엉망이 되었던 반면, 좀 더 건실한 경제구조를 가졌던 프랑스나 네덜란드, 영국에서는 가격 혁명이 외려 해당국 경제에 순 영향을 주었다. 오스만 외의 다른 이슬람 국가인 [[사파비 왕조]] 역시 유럽에 비하면 국력이 상대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 이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벌어져서, 19세기 유럽의 [[산업 혁명]] 이후 중동 지역은 유럽 제국들의 압도적인 군사력 아래 [[제국주의]]적 침략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일대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등의 식민지가 되었으며, 그나마 강대국이던 오스만 제국과 오만, 이란 역시 유럽 국가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 시기의 경험 때문에 오늘날 중동 지역 사람들은 강한 반(反) 서방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에는 오스만 제국이 패배함에 따라 완전히 해체되고 지역별로 아랍 독립국가들이 성립되어 오늘날 중동의 국경선이 대략적으로 그어졌다.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해체는 이슬람과 중동의 위상이 추락함을 의미했다. 20세기 이후 [[석유]] 자원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고 그 수요가 폭증하면서 중동 국가들은 갑자기 떼돈을 벌게 되었지만, 국내 사회와 경제 기반은 여전히 낙후된 상태였기 때문에 심각한 빈부 격차, 높은 실업률, 지역/종족/종교 간의 갈등과 대립 등 각종 문제가 빈발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세속주의, 아랍[[민족주의]]와 [[사회주의]] 등 다양한 이념들이 등장하였지만, 대개 독재 정치로 흐르거나 제대로 실현이 안 되는 등 별 실효를 거두지 못했기에 갈수록 강력해지고 발전하는 서방 국가들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 후진국 신세를 면치 못했다. 특히 [[냉전]]으로 인한 [[미국]]과 [[소련]](러시아) 등의 지나친 간섭도 중동의 정세를 한층 복잡하고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중동에서 미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장난 아니게 세다. 중동의 모든 나라들이 미국과 러시아와의 관계를 신경 써야 할 지경이다. 그 중에서 가장 강한 게 미국. 중동의 대부분 나라들이 일반 국민들의 반미 감정과는 별개로 정부 차원에서 미국과 대놓고 적대하지 않는다. 예외라면 이슬람 혁명 이후 현재의 이란 정도지만, 이쪽도 자신들이 상대가 안 된다는 걸 알기에 함부로 맞서지 않는다.] 지금도 여전히 중동 국가들은 서방 국가들에게서 군사, 기술, 경제 면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종속된 거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그나마 걸프만 국가들은 부유해서 암울한 상황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들국가들도 왕정이다. 그 결과 중동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큰 좌절감과 분노를 가지게 되었고, 익숙한 종교적 메시지와 널리 퍼진 이슬람교의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이슬람 극단주의]]가 그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급격한 인구 증가[* 2017년 기준으로 서아시아는 2억 6,000만명, 북아프리카는 2억 3,000만명으로 1950년대에 각각 5,800만명, 5,500만명 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4배가 넘게 증가했다. 그밖에도 현재 아프리카 다음으로 세계에서 출산율이 높은 지역이 서아시아와 북아프리카 지역이다. 이 추세대로 계속가면 2100년에는 중동지역의 인구가 동아시아지역과 맞먹게 된다.]와 도시화[*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중동의 국가들은 인구의 70%가 도시에 거주하여 도시화가 굉장히 높다. 특히 사막화로 인해 농촌들이 파산하면서 농촌 인구가 계속 도시로 몰리고 있어 도시화가 심해지고 있다.]로 인해 수자원의 고갈이 심해지면서 극심한 식량 부족과 물 부족에 시달리고 있어 이는 중동의 미래[* 특히 중동 국가들은 국토가 척박하고 산업이 빈약해서 대부분의 생필품을 수입해 쓰다 보니 물가가 세계에서 비싼 축에 속한다. 그나마 국가에서 보조금으로 안정시켰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경제난이 심해져 보조금이 축소되면서 물가가 급증하고 있어 서민들의 생활고가 심각해지고 있다.]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그나마 이스라엘, 사우디아라비아나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같이 부유한 나라들은 담수화로 어찌어찌 해결하고 있지만 담수화하는데에도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것도 한계가 있다. 오죽하면 독일의 마인츠 시 연구원들이 이대로 간다면 중동은 곧 [[불모지|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곳]]으로 바뀔 것이라고 발표할 정도다. 국제 학술지인 네이처조차 중동은 사막화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어 늦게 잡아도 80년 뒤엔 더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될 것이라고 했다. 특히 이렇게 개막장인 환경이 된다면 중동의 국가들은 몰락할 것이 분명하고 떠나는 난민들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질 것은 자명한 일[* 실제로 중동에서는 부자와 서민 관계 없이 매년 수십만 명이나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유럽으로 떠나는 기후난민이 발생하고 있다. 경제난으로 인해 유럽으로 이민 가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다. 이 유럽행이 위험하며 막대한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도 서로 가려고 한다. 게다가 이 기후난민의 수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난민들은 유럽에 정착하길 원해서 살기 어려운 중동으로 돌아가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동에서는 인구 증가로 인한 사막화와 수자원 고갈도 문제이지만, 국외로 계속 떠나는 인구 때문에 골머리를 않고 있다. 유럽 역시 몰려드는 중동인들로 인해 골치가 아픈 상황. 중동 뿐만 아니라 똑같이 사막화로 환경이 나빠지는 아프간과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같은 남아시아 국가들과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도 유럽으로 난민이 쏟아져 오는 판국이다.]이라서 세계적으로 골치 아픈 문제가 된다.[* 그러다 보니 미디어물에서 항상 등장하는게 중동의 환경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불모지가 된 것과 이 지역 나라들의 몰락이다. 농담이 아니라 여기 나라들의 개막장스러운 현실을 보면 이렇게 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을 잘 말해주는 미래를 암시한다.] 미국으로서도 골치 아픈게 자국 경제 및 정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유대인들의 이스라엘도 이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다. 막대한 돈을 들여 70년에 걸쳐 이스라엘을 일으킨 유대인들도 이 문제에 대하여 도무지 답이 없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렇듯 암울해보이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에 있어서는 매우 중요한 터닝포인트를 해결했는데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중순까지 [[오일 쇼크]]로 사우디, 이란,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이라크 등 주요 산유국들이 석유값 폭등으로 호황을 누리자 각종 건설사업을 벌였는데 한국 건설업체들이 빠른 공사속도와 값싼 공사비용, 그럼에도 괜찮은 품질을 내세워서 건설 사업 다수를 수주했고 많은 한국인 노동자들이 고임금[* 1970년대 후반 당시에는 중동에서 건설업에 종사하면 한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몇배는 벌 수 있었다.]을 노리고, 중동에서 열심히 노동하면서 한국으로 돈을 보냈다. 당시 아싸라비아도 그런 개념에서 나온 단어이다. 그래서 한때는 한국에서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의 85% 가량이''' 중동으로부터 흘러왔을 정도[*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한국이 최첨단 전자 제품 + 반도체, 건설용 기계, 철도차량, 선박, 석유화학제품, 철강, 이차전지, 산업용 설비 및 제조장비와 부품, 자동차 등 고부가가치 제조업으로 큰 수익을 벌여들었던 나라가 아니었으며, 전자제품이 알려졌다해도 싼 맛에 소비한다는 인식이 강했다는 점을 생각해야된다.]이며, 이러한 자금을 통해서 오일쇼크의 여파를 땜방할 수 있었다. 물론 지금 한국 건설업 역시 중동에 참여하지만 단순 노동이 아닌 설계, 시공 기술 위주로 참여한다. 단순노동은 [[인도인]], [[파키스탄인]], [[네팔인]], [[스리랑카인]], [[방글라데시인]]이 담당한다. 현재도 그 인연 덕택에 중동권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은 개신교 선교사 문제만 빼면 좋은 편이고, 현재도 중동권과 경제적인 교류는 활발하다. 그렇기 때문에 1970~80년대에 만들어지거나 배경으로 삼고있는 작품들을 보면 중동에 대한 언급이 종종 나오기도 한다. 예를 들면 [[달려라 하니]]나 [[택시운전사]], [[꺼벙이]]을 예를 들수있다. 이 때 업체에서는 관련 서류에 노동자들의 종교를 전부 불교로 기재했다고 한다. 이슬람권에서는 무신론자를 매우 나쁘게 보기 때문에 무종교로 적지는 않았고, 교리상으로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다른 이교도보다 좋게 보지만 이 두 종교와는 오랜 역사적 갈등으로 감정이 좋지 않기에 대충 중동이랑 별 인연이 없는 불교로 적은 것. 21세기 들어서는 중동에서 [[금요일]]에 쉬는 국가들이 금요일과 함께 쉬는 주말 휴일을 [[목요일]]에서 [[토요일]]로 바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