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문단 편집) ==== 관직과 행정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동로마 제국/작위 및 관직)] [include(틀:상세 내용, 설명=중세 초기 서유럽권 관직의 작위화에 관한, 문서명=작위/유럽)] [include(틀:상세 내용, 설명=중세 초기의 행정 양상에 관한, 문서명=자유도시, 문단=2)] 중세 유럽의 행정은 당시 건재한 [[동로마 제국/관직|동로마 제국]]을 제외하면 다른 문화권, 특히 한·중·일 등의 한자 문화권과 비교하면 전문적인 관료조직과 관료들이 전무했다. 정확히는 관료 조직으로서의 개념이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암흑 시대로 알려진 중세 초기만 하더라도 서로마의 관료제가 어느 정도 남아 있었다. 서유럽에선 게르만계 지도자들이 로마를 모방하면서 황제의 고위 행정관을 지칭하는 코메스(Comes largitionum), 군대 사령관을 뜻하는 독스가 그대로 게르만계 국가들 중 고트족들의 [[서고트 왕국|두 개의]] [[동고트 왕국|왕국들]]과 [[프랑크 왕국]]의 [[메로베우스 왕조]]에 도입되었으며, 800년대 카롤링거 왕조 시기에 변경지대를 관리할 목적으로 변경주(Mark)를 만들어 변경주를 통치할 관리로 Mark Graf를 두었으며, 더 멀리 가면 이전 왕조였던 메로빙거 왕조 때는 [[궁재]]를 두고 있었다. 이밖에도 브리튼 제도에서는 10가구를 관리할 목적으로 성인 남성에게 치안 의무를 부여하였고, 다시 100가구씩 묶어 범죄자를 추적하고 체포하며 마을 전체의 말과 무기의 관리를 담당하는 자경대장(Constable)[* 자경대장으로 불리지만 사실 고대 로마 시대 때 황제의 말들을 관리하던 직책에서 유래되었다.]을 선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자경대장들의 통제하는 100가구씩 묶은 단위를 Hundred라고 불렀고, 이것이 여럿 모인 행정단위가 오늘날의 주(County)에 해당하는 샤이어(Shire)였는데, 샤이어를 담당하던 관리가 오늘날 [[보안관]]의 기원이었던 [[https://en.wikipedia.org/wiki/Reeve_(England)|샤이어 리브]](Shire Reeve)로 약칭으로 리브로 불렸으며, 그 위로 [[https://en.wikipedia.org/wiki/Ealdorman|엘더맨]](Ealdorman)이 있는데 지방장관으로 번역된다. 보통의 봉건 영주와 비슷한 직위지만, 가문에 상속되는 타국의 봉건제와 달리 샤이어무트에서 선거제로 선출 후 왕에 의해 형식적인 승인을 받거나(머시아의 경우) 왕에 의해 테인들 중에 임명되는(웨섹스의 경우) 직위라는 차이점이 있다. 하지만 이 당시 문맹자의 비율이 높았고, 특히 지배층들 또한 문맹인 경우가 허다했기에 행정 실무를 전담한 것은 성직자들이었다 이들은 당시 암흑 시대로 알려지던 중세 초기의 유일하게 글을 읽고 쓸줄 알았던 이들이 지식인이 될 수 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행정 실무인 출생신고, 사망신고, 교회와 관련된 교육 및 복지 행정 등을 담당하게 되었고, 이는 중세가 끝난 후 [[종교개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진 후에도 근대까지 이어지게 되었다.[[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91351#0DKU|#]] 특히 도시가 성정한 후 도시 인구 또한 자연스럽게 증가함에 따라 행정 또한 인구수에 맞춰 분할할 필요성이 있었고, 이에 따라 도시 내의 구역 또한 교회를 중심으로 하게 되어 근대 이전까지 도시의 구역명을 [[교구|교구명]]으로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가 되었다. 또한 [[신성로마제국]]은 생산량이 풍부한 지역에 각각 [[팔츠]]라 불리는 [[행궁]]격의 궁정을 두어 일정 시기마다 다른 팔츠로 이주했다. 그러다가 중세 중기로 들면서 이러한 행정에 큰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11세기가 되면서 법학을 전공으로 하는 [[볼로냐 대학교]] 설립과 함께 로마법 부흥이 시작되면서 유럽 각지의 사람들이 로마법을 배우기 위해 볼로냐 대학교로 몰려들어 법학을 전공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 법률가로 활동하거나 왕에 의해 세속인 출신의 관리가 되어 행정가로서 활동했다. 또 이 즈음부터 점진적으로 관료제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 시기는 세속군주들과 로마 교황과의 대립이 있던 시기로 아이러니하게도 중세적 관료제의 발달을 불려오게 되었다. 우선 관료제가 먼저 정비된 곳이 바로 교황령으로 교황을 비롯한 지도층이 세습이 아닌 선출 및 종신 임용직이었기에 교황과 그 아래의 추기경, 대주교, 주교 등으로 구성된 피라미드 형태의 정부 조직을 구성해 어느 정도 관료제가 형성될 수 있었다. 특히 교회법의 집대성인 그래티안 교령집의 저자인 볼로냐의 [[수도자]]이자 법학자였던 그래티안은 교회를 구성하는 성직자들이 단순한 연공서열이 아닌 실적과 성과에 따라 경력이 관리되어져야 하며 [[성직자]]로서 서품하는 것 역시 능력에 대한 검증이 이루어지고난 후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성직자는 구두가 아닌 문자화된 지시에 따라 일을 수행하여야 되며 법적인 훈련이 요구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이 당시에 교회조직의 영향력은 지대했으며 이것은 또한 행정관료제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그래티안의 이러한 주장들은 1231년에 프리드리히 2세에 의해 발표된 포고령의 내용과 아주 흡사한데 이것은 알게 모르게 근대행정관료제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하는 것이었다. 이후 [[교황령#s-4|교황령]] 뿐만 아니라 [[프랑스 왕국#s-3.1|프랑스]]와 [[잉글랜드 왕국#s-4|영국]] 등에서도 관료제도를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신성 로마 제국#s-7|신성 로마 제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도 군주의 직활지를 통치하기 위한 목적으로 여러 관직들을 만들기 시작했고, 대체로 아래와 같이 고위 관직들을 설치했다. 그밖에도 [[헝가리 왕국#s-3|헝가리 왕국]]처럼 봉건제가 미발달된 국가에서는 별도의 관료제가 형성되는 곳도 있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ancellor|챈슬러]](Chancellor):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신성 로마 제국,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폴란드, 베네치아, 시칠리아 포르투갈 카스티아, 아라곤, 헝가리 등에 설치된 고위 관직으로 영어에선 [[재상]] 혹은 [[총리]]로 번역되나 실재로 영어권에서 현대의 총리직보다는 사법권을 전담했으며,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그나마 신성 로마 제국과 덴마크, 노르웨이, 폴란드에서 그나마 현대의 총리직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했지만 첸슬러들의 임무는 주로 외교 업무를 관장하는 것이었고, 대체로 성직자들이 독점했다. 참고로 신성 로마 제국은 해당 직책으로 각각 성직 선제후인 마인츠, 쾰른, 트리어의 대주교들이 각각 공통으로 독일 왕국의 제국 재상과 이탈리아 왕국의 제국 재상, 부르군트 왕국의 제국 재상으로 겸임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Chamberlain_(office)|체임벌린]](Chamberlain):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신성 로마 제국, 세르비아, 동로마 제국, 카스티야, 포르투갈, 교황령 등에 설치된 고위 관직으로 프랑스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동로마 제국, 카스티야, 포르투갈에선 궁정 업무를 총괄하는 관직 중 하나였지만 신성 로마 제국, 세르비아에선 재정 업무를 관장했다. [[https://en.wikipedia.org/wiki/Constable|콘스테이블]](constable):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카스티야, 포르투갈, 아르메니아, 조지아, 동로마 제국, 스웨덴, 덴마크 등에 설치된 고위 관직으로 현대 영어에선 순경으로 표기되나 중세때만 하더라도 마샬과 함께 왕의 마굿간을 감독하면서 왕의 기병대의 지휘관이기도 했기에 무관장이나 기병대장으로 표기되며 예루살렘 왕국 항목에서는 집정관으로 표기되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Marshal|마샬]](marshal): 프랑스,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각각 얼마샬과 나이트 마샬이 있었다.], 신성 로마 제국, 카스티야, 포르투갈, 나바라 등의 설치된 고위 관직으로 군대의 [[원수(계급)|원수직]]이 마샬에서 유래되며, 콘스테이블과 업무가 겹치지만 서열상으로 아래이다. 재정 업무에선 잉글랜드와 스코트랜드의 [[https://en.wikipedia.org/wiki/Lord_High_Treasurer|재무상]](Lord High Treasurer), 위에 상술한 스웨덴, 신성 로마 제국과 세르비아의 체임벌린, 프랑스의 Grand chambrier과 세네샬, 스웨덴과 덴마크에서 스튜어트(steward) 해당되는 Drost 등이 있었고, 시칠리아에서는 Luogotenenza del regno가 있었고, 이밖의 나라들은 스튜어트들이 재정을 담당했는데, 스튜어트들은 왕의 사유 장원들을 관리하던 관직으로 장원에서 나온 소득 또한 스튜어트들의 감독하에 있었다. 다만 위의 관직들말고도 국가별로 다양한 관직들을 신설해 운영했다. 특히 13세기경 반상비적인 해군을 만들면서 해군을 총지휘할 지휘관인 제독직이 이때에 생겨난 직책이었다. 그외에도 여러 관직들이 독자적으로 신설되었다.[[https://en.wikipedia.org/wiki/Great_Officers_of_State#Holy_Roman_Empire|#]] 다만 이 당시의 관리들은 전부 고대 로마처럼 공사가 구분된 이들이 아닌 군주의 하인과 같은 존재들이었으며, 무엇보다 고위 관료들로 갈수록 세습 내지는 [[매관매직]]과 같은 [[엽관제]]로 운영되는 것이 보통이었고, 능력 있는 이를 기용하더라도 그것은 군주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한편 12세기가 되먼서 봉건영주, 주교의 통치에서 벗어난 [[자유도시]]가 생겨나 시정참사회를 중심으로 한 [[코뮌]]을 구성하기 시작했다. 시정참사회는 도시법의 제정과 집행뿐만 아니라 도시의 행정을 총괄했다. 참사회원의 수는 도시마다 수 명에서 40명 사이였다. 시정참사회가 자유도시의 통치 기구였던만큼 시정참사회의 수장이 [[시장(공무원)|시장직]]을 겸직했는데 근현대와 달리 시장이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었다.[[https://blog.naver.com/yoons_cha/40107639737|#]] 이러한 시장직은 국가별로 부르는 명칭이 달랐으며, 봉건제가 뿌리 깊이 내린 이탈리아 남부를 제외한 북부와 중부에서는 포데스타(podesta)로 불렸다. 12세기가 되면서 공화정을 채택하던 도시국가나 자유도시들이 점차 생겨나면서 별도의 행정제도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베네치아 공화국의 경우 산 마리노와 함께 다른 공화국들보다 수세기전에 건국되었으며, 국가원수인 도제는 초기엔 세습제에 가깝게 선출되다가 이후 확실하게 연륜있는 인사를 선출하는 형태가 자리잡게 되었지만 여전히 종신제였다. 이에 베네치아는 도제의 권력을 견제하고 만일 도제가 사망한 후 차기 도제를 선출하는 기간동안 발생하는 행정적 공백을 매꾸기 위한 목적이나 회계 감사 등으로 여러 정부 조직등을 신설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경우에도 별도의 관직이 있었다. [[https://ru.wikipedia.org/wiki/%D0%9F%D0%BE%D1%81%D0%B0%D0%B4%D0%BD%D0%B8%D0%BA|포사드니크]](посадник), [[https://ru.wikipedia.org/wiki/%D0%A2%D1%8B%D1%81%D1%8F%D1%86%D0%BA%D0%B8%D0%B9|티샤츠키]](Тысяцкий)로 포사드니크는 흔히 시장으로 변역되나 이는 노브고로드·프스코프 공화국 한정으로 원래는 크냐지의 보좌직으로 크냐지의 개인 영지의 관리 및 사병 집단인 드루지나의 관리와 법률, 외교 등의 업무를 보조했다. 티샤츠키는 천인대장으로 번역되며 본래 도시나 마을의 민병대의 수장이었으며 자신들보다 상급인 20명의 사령관을 의미하는 [[https://ru.wikipedia.org/wiki/%D0%A1%D0%BE%D1%82%D0%BD%D0%B8%D0%BA|소트니크]](Сотник)에게 복속되어 있었으나, 나중에는 법률 및 상업 관리를 가리키게 되었다. 이러한 관직들은 군주제가 자리잡은 러시아 공국들에서 군주가 임명하는 것이 아닌 민회에서 선출하는 방식으로 임명되었으며 그 기원은 9세기에서 10세기에 시작되었으며, 본래 크냐지 또한 민회에서 선출된 직책에서 기원되었다. 러시아 전역이 봉건적 세습 군주제가 일반화되어가는 와중에 노브고로드와 프스코프에선 민주공화제를 실시해 크냐지와 대주교를 비롯해 그 예하의 관직들이 선출직으로 바뀌어 16세기까지 이어졌고, 이러한 경향은 [[러시아 제국]] 초기까지 이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