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문단 편집) == 유럽 밖의 중세 == '중세'의 비유럽사에는 적용하기 어려우며, 유럽이 아닌 지역에 '중세'가 존재하였는지도 학자에 따라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이는 애초에 시대구분론이 서양사 중심의 세계사가 형성된 탓이 크기 때문이다. 노예제도를 타파하고 발전한 농노제도라는 경제시스템은 전세계 보편적인 것이라기 보다는 유럽이라는 특수한 지역의 특수성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 하지만 제국주의 진영에서 사회진화론을 밀고, 이후 사회주의 진영에서도 마르크스의 5단계 발전설을 밀면서 엄청나게 긴 시간동안 이러한 설[* 이 두 가지는 엄밀하게 말하면 대립은커녕 양립했고, 지금은 통합되었다고 봐야한다. 현대의 시대구분론은 마르크스의 경제체제적 구분에서 '공산주의는 현대'라는 부분을 뺀 것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이 좌우를 가리지 않고 통설이 된 몇 가지 예 중 하나이다.]이 퍼지게 된다. 대체적으로, 유럽 외부의 중세를 설정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 [[통일신라|고대]]에 [[발해|확립]]되었던 [[대인선|왕국]]이 [[야율아보기|붕괴]]하거나 [[경애왕|이런 관념]]이 [[견훤|유명무실화된다.]] * 이에 따라 [[통일신라|고대 제국]]의 [[후백제|부산물]] 격으로 [[태봉|성장하게 된 변방]]에서 [[고려|독자적인 세력이 대두]]되는 한편, [[발해|통제력을 상실하게 된 국경 지대]]에서 [[거란|이민족이 유입된다.]] * 이로 인해 보편적인 [[남북국 시대|하나의 관념으로 구성된 '세계']] 내에서 [[후삼국 시대|다수의 국가]]가 [[발해부흥운동|존재]]하게 된다. * 고대사회를 지탱했던 [[불교|종교계]]에서도 갈등을 겪는데 [[교종|주로 종파간의]] [[선종(불교)|대립이고]] 이 과정에서 둘은 [[조계종|절충되거나]] [[천태종|융합된다.]] * 이러한 혼란 속에서는 [[6두품|계층 구조]]가 [[고려/호족|혼란]]할 수밖에 없으므로, [[골품제|고대의 획일적 계층 구조]]보다는 [[과거제|비교적 유연한 계층 구조]]가 형성된다. * 이러한 [[고려|중세적 구도]]는 [[조선|통일 왕조가 재건]]되는 한편 [[훈민정음|권력의 틀을 벗어]]난 [[민요|서민 문화가 성장]]하면서 [[갑오개혁|붕괴하게 된다.]] (단, 중세와 [[근대]] 사이에 [[근세]]와 같은 단계를 설정한 경우에만 해당. 그게 아니라면 얄짤 없이 [[근대]] [[산업 혁명]] 이전[* 현대 역사학에서 근대의 기점은 어디까지나 [[자본주의]]의 발달이다.]까지 중세에 포함시키기는 하나, 유럽 외 지역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부터는 '근세' 등에 대한 담론이 활발해지는 상황이다. 게다가 아에 집약적 산업의 발전으로 [[청나라]]대 이후에는 "동양 발 근대도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며 근대도 재정의하려는 시도도 있다. 어디까지나 시도까지만의 영역이지만.) [[한국사]]에서는 [[삼국시대]]까지 고대, [[남북국시대]]부터 중세로 보거나, 혹은 [[남북국시대]]까지 고대, [[고려시대]]부터 중세로 보는 두 설로 나뉜다. 과거에는 고려시대부터 중세라는 것이 다수설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남북국시대를 중세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학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사의 고대와 중세의 분기점 참관기,전덕재] 새로운 학설에 보수적인[* 당연히 어느 학설이 새로 나오고 대세가 된다고 해서 교과서가 막 바뀌고 예전과 답이 달라지면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교과서는 대체로 가장 늦게 바뀐다.] 고등학교 교과서 차원에서는 고려시대부터 중세라고 가르치는 중이다. [[한국사]]에서도 중세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떡밥]]이다. 중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일본에서 발견된 [[신라]] [[민정문서]]의 내용으로 보아 [[통일신라]]는 한 지역에서 노비가 전체 인구의 4%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대 노예제 사회가 아님이 확실하므로 삼국통일부터는 중세로 봐야 한다는 설이 대두되고 있다. 중세가 끝나는 시점은 [[근세]]를 제외한 3분법의 경우 [[고려]]와 개화기 이전의 [[조선]]을 합쳐 중세라고 일컫는 것이 우세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상에 의한 암묵적 합의. 고려를 중세로 보는 시각은 대체로 동일하나 조선을 중세로 볼 것인지 근세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상당한 떡밥이었으며, 마르크스 사관에 기반한 민중사학에서는 중세의 기원을 [[신라]]의 삼국통일과 [[신문왕]]의 개혁으로, 심하게는 562년 [[가야]] 멸망까지 끌어올리기도 한다.[* 이것의 시초는 일본의 정체성론에 대항하려는 [[백남운]] 등 사회경제학파의 담론이다. [[김석형]] 등의 학자는 아예 [[외거 노비]]를 [[농노]]와 유사한 단계로 파악해 중세를 끌어올리려 노력했는데, 현재에는 많이 기가 죽은 이론이기는 하나 일본의 게닌(下人, 사무라이 계층에 딸린 예속적 농민)에 대한 재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등 많은 논의를 불러 일으켰다.] 또 [[신라]]의 삼국통일을 기점으로 하거나 [[가야]] 멸망을 중세의 기점으로 볼 경우 유럽의 중세 시기와 잘 일치된다는 것도 중세의 기원을 끌어올리는 여론이 세를 얻어가는 원인이다. 메이저인 [[서울대학교]] 쪽에서는 고려를 중세, 조선을 근세로 보는 경향이고[* 국사학과의 주도적 견해. 역사교육과는 오히려 연세대와 비슷한 경향이다.] [[연세대학교]]는 중세를 중세Ⅰ, 중세Ⅱ로 나눠서 중세Ⅰ을 고려 시대, 중세Ⅱ를 조선 전기(임진왜란 전)로 보고 조선 후기(임진왜란 후)를 근대로 구분한다. [[고려대학교]] 쪽에서는 한국사에서의 중세, 근세 개념을 아예 부정하고 왕조구분법으로 쓴다. 혹은 근세를 [[임진왜란]] 이후로 보기도 한다. (러시아가 유럽이냐 아시아냐 하는 문제는 지금도 신나게 싸우는 논쟁거리지만) [[러시아]]의 경우, 중세란 표현 자체를 쓰지 않는다. 9~13세기, 몽골 침공 이전을 고(古) 러시아라고 부른다. 국내 서적에서는 [[고대]] 러시아라고 종종 번역하는데 그보다는 고조선/조선 구분의 古에 더 가깝다. 이 시기는 서유럽의 중세와 겹친다. [[인도]]의 경우, [[굽타 왕조]]가 [[에프탈]]의 침입으로 붕괴된 시기를 중세의 시작으로 잡아 [[무굴 제국]]에 의한 통합을 중세의 끝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동]]과 [[아프리카]]의 경우 [[이슬람교]]의 등장 자체가 워낙 큰 전환점이다보니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집트와 시리아, 이란, 레바논,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라크 등에서는 이슬람 제국의 정복 된 시점을 중세의 시작으로 보며, 이후 9세기경부터 분권적 질서가 나타났다가, [[오스만 제국]]이 다시 한번 통일 제국을 재건하게 되고, 사파비 제국이 수립되었을때를 중세가 대체적으로 끝났다고 본다. 아시아권을 통합해서 등장한 것은 소위 '''아시아적 생산양식 논쟁'''이다. 주로 사회주의[* 애초에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란 표현 자체가 마르크스의 책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거쳐서 공산주의가 도래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 때문에 역사를 잘게 쪼개서 억지로 자본주의를 거쳐야 되느냐 아니면 바로 공산주의로 넘어가도 되느냐로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쪽에서 주로 시작한 이 논쟁은 아시아의 특수성과 역사발전 단계이론이라는 단선적 발전사가 조화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말이 많았다. 여기에 바르가, 칸토르비치, 비트포겔 등의 특수성 긍정론과 [[블라디미르 레닌]]의 국가론에서 [[스탈린]]으로 대표되는 단선적 발전론이 충돌하면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이후 전개와 자세한 것은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6&dirId=6&docId=511746&qb=7JWE7Iuc7JWE7KCBIOyDneyCsOyWkeyLnSDrhbzsn4E=&enc=utf8§ion=kin&rank=1&search_sort=0&spq=0&pid=RSXiE35Y7vhssvnEKu8sssssstC-511362&sid=UVuZm3JvLDYAADPmK0I/|외부]][[http://terms.naver.com/entry.nhn?cid=272&docId=1530463&mobile&categoryId=272/|링]][[http://terms.naver.com/entry.nhn?cid=276&docId=1691078&mobile&categoryId=1112/|크]] 참고. 중국은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혹은 [[오호십육국시대]]를 중세의 시작으로 잡고, 서민 문화가 성장한 [[북송]]은 근세로 보고 당나라 말기까지(보다 현대적인 시각) 혹은 [[한족]]에 의한 통일 왕조가 재건된 [[명나라]]대까지를 중세의 끝으로 보고 있다. 한편 일본 학계에서는 중국사의 후한-삼국-서진 교체기, 당-송 교체기, 명-청 교체기, 아편전쟁 전후 시기를 중국사의 중요한 변곡점이 되는 시기로 보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유파에 따라 후한-삼국-서진 교체기부터 당-송 교체기까지를 중세로 보는가 하면, 당-송 교체기부터 명-청 교체기까지를 중세로 보기도 하며, 후한-삼국-서진 교체기부터 명-청 교체기까지, 혹은 후한-삼국-서진 교체기부터 아편전쟁 전후 시기까지를 중세로 간주하기도 한다. 한편 구미의 학계에서는 고대, 중세, 근세 개념을 적용하지 않고 대체로 중국사를 선진 시대, 진의 전국 통일부터 당-송 교체기 이전, 당-송 교체기 이후부터 청 말기, 신해혁명 이후를 기준으로 시대를 구분한다. [[일본]]은 [[헤이안 시대]]후기 11세기에 등장한 장원공령제의 모습이 유럽의 장원제와 상당 부분 흡사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시기부터 [[오다 노부나가]]/[[도요토미 히데요시]]/[[에도시대]] 이전까지를 중세로 파악하는 시각이 강하다. 결국 동아시아의 중세란 '근세적' 요소(과거제, 세련된 정치 문화)가 성숙되어가는 시기로 어렴풋한 합의가 이뤄진 것이다. 사실 이는 서유럽 식으로 보면 다 이상한 방식이기는 하다. [[근세]]라는 단어 자체는 일본에서 에도 막부 시대를 설명하려고 '근대적 요소는 있는데 근대는 아니고, 그니까 근대의 근에 중세의 세 합해서 근세' 해서 나온 개념이고, 왕조별 구별에 대해서는 현재 부정적인 것이 일반적 반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달리 방법을 못찾았는지 근대 이전의 경우에는 고대와 중세라는 표현을 사실상[* 여기서 사실상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시대구분론으로서 '고대', '중세'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단적으로 '고대국가'라는 표현이 사용되는데, 이 단어가 시대구분으로서 고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모로 대충 얼버무린 감이 있다.] 배제하고 왕조구분론으로 교과서가 구성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사의 경우에는 [[고조선]], [[원삼국시대|초기 삼국의 발전]], [[삼국시대]], [[통일신라]]와 [[발해]], [[고려]], [[조선]] 이런 형식으로 단락이 구성된다. [[분류:중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