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세 (문단 편집) === 시대적 구분 === 유럽 중세의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대체로 476년부터 1453년이나 1492년이라는 의견이 대세이긴 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다양한 담론이 등장하면서는 중세의 시기에 대해서도, 그리고 중세의 성격과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일어나게 되었다. 대략적으로 중세의 시작과 끝을 설정하는 시각은 다음과 같다. 다만, 요즈음의 역사에서의 시대구분은 시대구분이 상당히 자의적이라는 비판에 의해 시대구분을 역사가의 소명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중세를 정확히 어느 시점이 시작점이고 어느 시점이 끝나는 지점인지에 대한 담론은 크게 유의미하지 않다. * 시작 * [[고대 로마]]에서 '유일한 황제' 개념이 붕괴되고, 사실상 그리스 지역으로 힘이 많이 기운 [[디오클레티아누스]] 시대 * [[밀라노 칙령]]과 더불어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하여 그리스도교 중심의 세계로 재편된 4세기경 * [[게르만족]]이 대이동을 본격적으로 개시한 375년 * 그리스도교의 로마가 시작된, 최후의 동서 로마의 황제였던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한 395년 1월 17일 * [[로마 약탈(410년)|국가 로마가 강대국으로 성장한 이래 처음으로 도시 로마가 외적에게 짓밟힌]] 410년 *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476년'''[* 통념적으로 가장 흔하게 사용되는 구분법 중 하나이기는 하나, 로마 제국의 서부 상실, 그리스도교의 성행, 봉건 제도의 부상이 연결되지 않는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정치적인 사건을 가지고 시대를 구분할 수 있느냐'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 다만 게르만 민족의 이동과 서로마의 붕괴로 인해 서유럽에 여러 혼란이 야기 되고 다시 교황권과 프랑크 왕국의 동맹으로 질서가 재편되었단 점에서 서로마의 멸망은 적어도 동로마의 멸망보단 확실하게 역사적인 변곡점이 될 수 있다.] * [[동로마 제국]]의 [[서로마 고토 수복 전쟁]]으로 인해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가 초토화된 [[유스티니아누스]] 시대 * 이슬람 세력이 크게 성장했으며, 서유럽 카톨릭권이 동로마에서 독립하고 프랑크 왕국의 주도 아래 형성되기 시작한 8세기[* 앙리 피렌의 <마호메트와 샤를마뉴>. 앙리 피렌은 중세가 점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인식했고, 중세의 시작점을 476년보다 뒤로 설정했다는 의의를 남겼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부적절하다. 8세기까지도 도시, 상업, 시장경제 등에서 고대적 요소가 잔존했다고 하나 로마 말기에 이미 도시와 상업과 시장경제는 쇠퇴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슬람 세력의 팽창이 유럽 전체를 농업 문명 사회로 바꾸었다는 그의 주장은 적절치 못하다.] * 그리스도교의 교리가 통일된, 즉 아타나시우스파를 정통으로 인정한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 그러나 이것은 테오도시우스의 그리스도교 국교화가 더 의미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약간 퇴색된다.] * 끝 * '''[[동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백년전쟁]]이 끝난 1453년'''[* 일반적으로는 동로마 제국의 멸망이 중세의 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그 이후를 근세라고 평하기는 하나 실질적으로는 학자들마다 논의가 다양하며 확실하게 정해진 것은 없다. 주로 15세기로 뭉뚱그려 표현하며 더 나아가서 아래와 같이 산업시대 이전까지도 중세라고 보기도 한다.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은 극히 애매하며 동로마가 멸망한 전투인 콘스탄티노플 전투와 동시기 서유럽에서 일어난 백년전쟁은 전쟁사적으로, 무기사적으로도 큰 변곡점이 되었지만 그외적인 부분으로는 딱히 변화한게 없다. 경제적으로는 오히려 16세기 절대왕권과 중상주의로 인한 변화가 더 크며 인식의 변화를 추구한 르네상스 역시 14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초반까지 큰 범위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중세와 근대를 나누는 기준은 콕 찝어서 표현하기 애매하다.] * [[레콩키스타|이베리아 반도의 수복]]이 완료되고 신대륙이 발견된 1492년 * [[사코 디 로마]],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등으로 [[교황]]권이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걸을 정도로 몰락하게 된 16세기 초반 * [[르네상스]]가 끝나고 [[30년 전쟁]]이 끝난 17세기 초중반[* 정치, 문화, 사회적으로 인본주의가 완성되었으며 이 영향으로 루터와 칼뱅과 같은 인물들에 의해 종교 개혁이 일어났고 그 막바지에 이르러 30년 전쟁을 통해 유럽에서는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었다. 30년 전쟁은 유럽 최초의 국제전임과 동시에 부르봉 왕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패권 다툼이었다. 한편 가톨릭 국가였던 프랑스가 교황의 눈치를 안 보고 신교 국가의 편을 들었단 것은 교황의 권위가 크게 실추되어 종교적 영향력이 감소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 [[산업 혁명]]의 영향으로 유럽 사회의 봉건적 생산 구조가 완전히 붕괴한 19세기[* 자크 르 고프를 비롯한 아날학파는 장기지속적인 중세를 주장했다. 이들은 이전까지 중세 사회 변혁의 계기로 취급받던 르네상스나 흑사병을 중세와 이후 시대를 구분하는 단절의 계기가 아니라 중세의 장기지속적 현상 중 하나로 보았다. 15~16세기의 대르네상스 전후로도 유럽인들은 빈번히 고대 황금시대로의 회귀를 추구했고, 흑사병은 14세기 이후 18세기 초까지 창궐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유럽 사회의 중세적·봉건적 심성(망탈리테)가 기존 중세라 불리던 시간을 넘어 산업화 시기까지도 잔존해 있었다고 보며, 중세 중 특정한 시기만 골라잡아 중세라 정의해놓고 암흑기 혹은 낭만적인 시대로 치부하는 시각을 거부한다.] 이처럼 사실 '중세' 담론이 가장 뚜렷한 유럽 역사에서도 중세의 시작과 끝을 딱 잘라 말하기는 힘들다. 이미 게르만족의 대이동 이전부터 이미 [[로마]]와 게르만족의 문화는 뒤섞이고 있었고, 중세에 게르만족에 의해 나타났다고 여겨졌던 요소들이 (주로 [[프랑스]] 아날 학파 사학자들의) 최근 연구로 고대 로마에도 존재했었고 그것이 [[게르만족]]만의 것도 아니었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굳이 시작을 말하자면 대부분의 학자들은 오도아케르가 서로마 황제를 몰아내고 동로마에 서로마 황제의 휘장을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본다. 중세는 1000년에 가까운 긴 세월이라 요즘에는 중세를 다시 구분해 크게 초기, 중기(전성기), 말기로 보고 있다. 이는 중세라는 시대가 변화하지 않았던 고정의 시대라는 관념을 타파하고, 역사상의 변화라는 것이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급격히 변하여 시대가 어느 순간 바뀌기 시작한다는 기존의 관념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 중세 초기(Early Middle Ages) - 중세 초기에 대해선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과 게르만족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로마 제국]]의 중심으로 중세 초기를 바라봤을 땐 [[로마 제국]]이 수도를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천도하고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심지어 국교로 삼아 기존 [[다신교]] 중심의 제국을 [[그리스도교]] 중심의 제국으로 재편하는 4세기부터 [[십자군 전쟁]]이 일어나는 11세기 후반까지를 일컫는다. 중세의 절반을 차지하는 가장 긴 기간으로 [[동로마 제국]]이 전 유럽에서의 패권을 유지한 시기이다. 반면 [[게르만족]]의 중심으로 중세 초기를 바라봤을 땐 [[서로마 제국]] 멸망을 중심으로 5세기부터 10세기 후반까지를 일컫는다. 주요한 사건으로는 [[이슬람]]의 대두, 동로마 제국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원정, [[카롤루스 대제]]의 [[프랑크 왕국]]과 베르됭 조약으로 서, 중, 동으로 분열, [[바이킹]] 침략 등이 있다. 이 시기는 잦은 전란으로 온갖 것이 파괴되는 일이 빈발하던 시절이라, 흔히 암흑시대로 알려진 중세의 이미지는 이때에 가깝다. 실제로도 남아있는 사료의 양이 워낙 적어서, 학계에서도 이 시기를 연구하기 힘들다며 [[암흑시대]]라 부르는 것이다. 이 시기는 [[그리스도교]]와 [[켈트 신화]], [[게르만 신화]]가 혼재되어 있던 시대로, 널리 알려진 [[아서 왕]]과 [[성배]] 전설, [[디트리히 폰 베른]], [[베오울프]], [[시구르드]]와 [[성 조지]] 등 신화적인 중세 [[서사시]]는 모두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다. 중세 중기만 되어도 현실적인 정치, 사회상에 밀려 신화적인 이야기는 잘 등장하지 않는다. * 중세 중기 혹은 중세 성기(High Middle Ages) - 보통 11세기(서기 1000년)부터 13세기 후반까지를 말한다. 로마 [[교황]]의 독립과 더불어 게르만족의 새로운 강대국이였던 [[프랑크 왕국]]을 포교함으로서 유럽의 새로운 강대국이 등장하였고 이를 이은 [[신성로마제국]]이 등장하고 [[신성로마제국]], [[동로마 제국]]의 경쟁 구도로 재편되게 되었다. 또한 [[셀주크 튀르크]]의 등장과 더불어 [[만지케르트 전투]]에서 대패한 [[동로마 제국]]은 제국의 중심이였던 아나톨리아를 점차 모두 상실하였지만 [[강대국]]으로서의 정체성은 유지할 수 있었다. 이 시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사건은 [[십자군 전쟁]]이며 그 밖에 [[윌리엄 1세]]의 [[잉글랜드]] 정복으로 [[노르만 왕조]] 성립, [[기사도]]의 성립, [[동서 교회 대분열]], [[스칸디나비아]]를 포함한 전유럽에 가톨릭-그리스도교 전파, [[몽골]]의 침략, [[헝가리]]와 [[폴란드]] 왕국의 성립, [[고딕 양식]]의 등장 등을 들 수 있다. 현재까지 내려오는 주요한 유럽의 국가들이 대체로 나타난 시기이며 널리 알려져 있는 중세의 이미지는 중세 중기에 가장 가깝다. * 중세 말기(Late Middle Ages) - 보통 14세기 초부터 15세기 중반~16세기 초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이 몰락하여 [[오스만 제국]]의 성장과 더불어 사실상 도시국가로 전락하고 1453년에 [[오스만 제국]]에게 멸망하였다.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곧 그리스도교 세계의 위기감을 조성하였고 그 대상으로 [[오스만 제국]]에 대한 무역금지를 조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새로운 무역로를 찾기 위해 [[대항해시대]]가 도래하였고 [[동로마 제국]]의 인본주의가 [[이탈리아 반도]]로 건너가 [[르네상스]]를 꽃피우게 되었다. 한편 서유럽에서는 [[프랑스 왕국]]에 대한 [[잉글랜드 왕국]]이 왕위 계승 문제를 대두하여 [[백년전쟁]]을 벌이게 되었고 결과는 프랑스 왕국의 승리로 프랑스 왕국이 강대국 반열에 오르게 되었으며 또한 프랑스 왕의 권력이 상승하게 되었다. 그리고 백년전쟁이 발생하기도 전인 1309년에 [[아비뇽 유수]]가 발생하여 교황권이 약화되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는 초기 [[아스투리아스 왕국]]을 중심으로 이슬람의 [[우마이야 왕조]]에게 빼앗긴 그리스도교 세계를 되찾는 다는 목적의 [[레콩키스타]]가 결실을 맺게 되었으며 그 중에서 대표적인 국가였던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이 혼인동맹을 맺고 이후 두 국가가 [[동군연합]]으로 묶여져 새로운 [[강대국]]인 [[스페인 왕국]]이 등장함과 더불어 [[대항해 시대]]의 선두주자로 자리매김 하였다. 한편 [[신성로마제국]] 내부에서는 농민에 대한 탄압과 더불어 성직자의 부패로 인해 [[종교 개혁]]이 일어나게 되고 이 여파로 [[30년 전쟁]]을 거치면서 [[신성로마제국]]은 사실상 내부분열이 일어나 황제 중심의 가톨릭vs개신교 선제후국을 중심의 연합으로 분열하게 된다. 황제의 처신을 통해 제국은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지만 사실상 황제가 제국 내의 일부 권역에서 세력을 펼칠 수 없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