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앙일보 (문단 편집) == 역사 == 호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언론사업에 관심을 가진 건 해방 후 <대구민보> 소유주 '을유회'의 일원으로서 활동했을 적이었다. 당시 그는 사업확장에 치중한 터라 언론사업에 신경쓰지 못했다가, 1961년 그룹 비서실이 '신문 창간계획'을 내면서 신문사 설립 움직임이 구체화되어 1963년 신문발간준비위원회가 결성되었다. 1964년 서소문 빌딩을 착공했으며 제호는 중앙일보와 동양일보, 제일신문 등 3개가 최종 후보였다. 그러나 동양일보는 기존의 신문과 어감이 비슷해, 제일신문은 제조업체인 [[CJ제일제당|제일제당]], [[제일모직]]과 이름이 비슷해 언론으로서의 중후함이 떨어져 탈락했고, 결국 중앙일보가 제호로 결정되었다. 1965년에 정식 설립 후 창간했다. 초대 사장으로는 이병철, 부사장으로는 유민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 편집국장은 이원교가 각각 선임되었으며, 창간 당시 이병철 초대 사장이 직접 윤전기 시동버튼을 누르기도 했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이병철이 사장직에서 물러나자 원종훈 상무가 잠깐 사장을 맡았다가, 1968년 이병철 회장, 홍진기 사장 체제로 바꾸면서 홍진기의 영향력은 점차 커졌다. 애초에는 장남 [[이맹희]]가 삼성그룹 회장직과,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들을 물려받고[* 차남 [[이창희(기업인)|이창희]]는 삼성을 퇴사하고 독자적으로 새한미디어를 창업하였다.] 3남 [[이건희]]는 동양방송과 중앙일보만 물려받아 삼성그룹에서 계열분리할 계획이었으나, 이병철이 이맹희와의 불화 끝에 이맹희를 쫓아내고 이건희를 후계자로 정하여 이건희가 삼성그룹을 물려받고 중앙일보는 홍진기의 아들이자 이건희의 처남인 [[홍석현]]이 경영권을 인수하였고 이맹희의 아들 [[이재현(기업인)|이재현]], 이재환과 딸 [[이미경(기업인)|이미경]]이 [[CJ제일제당|제일제당]]만 들고 [[CJ그룹]]으로 독립하여 식품사업에서 물류·유통, 미디어사업으로 사세를 확장하였다.[* 이들 3남매는 CJ가 삼성에서 독립할 당시 30대의 초중반의 나이였기에 대기업을 이끌어 가기에는 연륜이 부족한지라, 경영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이맹희 대신 그의 처남이자 3남매의 외삼촌인 [[손경식]]이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공동회장으로 재임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은 5녀 [[이명희(기업인)|이명희]], [[한솔제지]]는 장녀 [[이인희]]가 물려받아 삼성에서 독립하였고, [[도레이케미칼|제일합섬]]은 차남 이창희가 창사한 [[새한그룹]]에 인수되었다. [[삼성물산]]에서 운영하던 삼성몰·삼성플라자는 [[애경그룹]]에 인수되어 [[AK플라자]]로 바뀌었으며, [[홈플러스]]는 영국기업 [[테스코]]에 인수되었다가 다시 [[MBK파트너스]]에 인수되었다.] 1974년 12월 21일 동양방송을 합병해 사명을 '(주)중앙일보·동양방송'으로 변경하고 1978년 발행부수 1천만 부를 돌파했으나, 1980년 [[언론통폐합]]으로 방송 부문을 [[한국방송공사]]에 넘기고 원래 사명으로 환원했다. 1984년에 중구 순화동 신사옥으로 옮기고 1988년 <중앙경제신문>을 창간했다. 1992년 제작방식을 납활자 대신 CTS 체제로 바꾸고 1995년 조간 전환 후 인터넷 홈페이지를 열었고, 10월부터 가로쓰기를 실시했다. 중앙일보는 삼성의 핵심 주력 계열사로서 그 비중 또한 [[삼성전자]] 못지 않게 컸다.[* 1993년 이건희의 신경영체제가 시작되기 전까지 삼성전자는 가전 중심의 산업구조에 반도체 산업을 넓혀가던 중이었으며, 해외에서도 일본의 유수 전자업체들의 아류 정도로 취급받는 등 지금보다는 규모와 영향력이 엄청나지 않았다.] 그래도 해방 이후에 발간된 신문이라 역사 문제에서 어디까지나 '''비교적'''으로 조선일보, 동아일보보다 자유롭다고들 하나, 초대 회장 홍진기가 일제강점기 판사로 독립운동가를 처벌한 게 드러나서 2008년 [[친일인명사전]]에 올랐다. 참고로 친일인명사전이 나왔을 때 중앙일보에선 [[여운형]]을 까면서 좌익-우익 균형 논란 등 물타기 스킬을 시전하기도 했다. [[http://www.joongang.co.kr/article/3861331|#]] 그리고 일본 위키가 저 사설의 일본어판을 근거 삼아 여운형을 친일파라고 기록해놓기도 했다. 여운형이 조선중앙일보 사장이었다는 점을 고려해볼 때 비록 이름만 비슷하지 전혀 다른 신문사이지만 기묘하다면 기묘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1999년 삼성그룹에서 ''' 계열분리'''됐다. 현재는 이건희 회장의 처가인 홍씨 일가[* 홍씨 일가는 이외에도 '''[[BGF그룹]]'''을 소유하고 있다.[[http://www.bokwang.com|#]]] 소유이다. 그러나 당시 [[홍석현]] 회장이 당시에 중앙일보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자금이 없었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명의만 바꾸어놓은 위장 계열분리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JTBC]] 출범 당시, 어느 전직 중앙일보 기자가 했다는 '''"신문은 사실상 이씨 것(삼성가)이고, 방송은 홍씨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발언이 [[시사in]]에 보도되기도 했다. 실제로 [[김용철(1958)|김용철]] 변호사는 '중앙일보의 실질적인 의결권은 이건희 회장이 행사한다는 계약서를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삼성이 중앙일보를 분리하려고 하긴 했지만, 홍씨 일가가 지분을 인수할 돈이 없었고, 궁여지책 끝에 이건희 회장 명의로 된 주식을 차명으로 홍석현에게 넘기고, 의결권은 이 회장이 행사하도록 계약서를 작성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시 [[공정거래위원회]]는 중앙일보 위장 계열분리 의혹을 묵살하였고, 삼성 특검은 김용철 변호사의 진술 이외에는 증거가 없다면서 무혐의 처리했다.] 일례로 삼성 특검 당시 3차 공판 증인으로 출석한 중앙일보 임광호 재무이사는 "홍석현 회장이 삼성그룹 비서실에서 141억원을 증여받아 삼성 계열사들이 가진 중앙일보 지분을 인수하는 데 드는 자금을 충당한 것"이라고 증언하여, 위장 계열분리임을 간접적으로 인정하기도 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삼성 측 변호인은 "삼성에서 증여받은 돈이 아니라, 홍석현 회장이 선대로부터 상속받은 것을 삼성 비서실에서 보관했던 돈"이라는 식으로 군색한 변명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한편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위장 계열분리 대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이야기들이 꽤 나온다. 예를 들어 중앙일보가 1999년 계열분리를 선언한 뒤에도, 중앙일보 편집국 내부의 정보 보고 내용이 하루 두 번씩 삼성그룹 구조본[* 당시의 구조조정본부. 현재의 미래전략실]으로 전달됐을 정도였다고 한다. 또 중앙일보는 별의 별 이유로 삼성에 돈을 요구하는 일이 많았는데, 심지어 수해를 입은 중앙일보 지하주차장 수리비까지 삼성그룹 본사에 요구해서 삼성 구조본 재무팀에 있는 담당자가 몹시 힘들어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삼성그룹 구조본의 김인주 사장은 사무실 창밖에 내다보이는 중앙일보 건물 끝에 있는 'J'자를 가리키면서 '도둑놈'이라고 했다고 한다. 2011년 3월 발생한 [[도호쿠 대지진]]에 대해서는 '일본침몰' 같은 자극적인 헤드라인이나 이치에 맞지 않는 운명론, 지진 여파에 따른 한국의 반사 이익을 기대한다는 내용의 기사와 칼럼을 실었다가 피해자들을 조롱하냐고 한일 양국에서 신나게 까이기도 했다. 2013년 5월 21일부터 일주일에 한 번 주요 쟁점에 대한 [[사설]]을 자사와 반대편 논조 신문인 [[한겨레]]와 비교, 분석하는 지면을 기획했다. 여태껏 국내 주요 언론에서 시도되지 않은데다가 주요 쟁점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독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참신하다는 의견이 많다. 그러나 몇년 가지 않아 이 기획도 흐지부지 되었다. 2014년 4월 14일자부터 "벽을 깼다"라고 크게 어필하며 기존에 여러 메이저 일간지에서 고수해오던 종합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스포츠 - 오피니언으로 이어지는 형식적 지면 편집을 타파하겠다며 콘텐츠 내실화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어서 중견 기자들의 분석 및 심층 보도 기사를 대폭 확대하고 요일별 프리미엄 면을 확충한다고 밝혔다. 허나 실상은 각 면에 "종합", "정치" 등으로 나오던 구획 이름을 그냥 톱기사 제목을 그대로 박아넣은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 혁신이라 보기는 애매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