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일관계 (문단 편집) === 정치 === [[파일:external/www.chinadaily.com.cn/0013729ed148098a384206.jpg]] 중일공동성명에 서명하는 중국의 [[저우언라이]] 총리와 일본의 [[다나카 가쿠에이]] 총리 1952년 화일(華日) 평화조약으로 [[대만]]과 국교를 정상화했지만, 1972년 대만과 단교하고 중국과 수교했다. 이는 [[닉슨 독트린]]과 맞물려 이루어졌다. 중국, 대만 모두 일본에 대해서 국가적 차원에서의 청구권과 배상권을 포기하였다. [[장제스]]는 '원수를 은혜로 갚는다'라는 태도였고 [[마오쩌둥]] 역시 일본과 국교를 맺을 때 인민들의 의견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이겼으니 사죄와 배상 따윈 필요없다'거나 ‘일본인들 역시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라는 태도를 보이며 침략국이었던 일본에 유화적으로 접근했다. 이에 대해서는 공산국가에 대한 원조를 금하는 당시 미국의 전략을 중국 공산당도 알고 있었기에 배상을 단념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편 마오쩌둥은 중일전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공내전|밑거름]]이 되었다며 감사한다고 발언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실제 중일전쟁이 아니었다면 국민당의 승리는 기정사실화된 상황이었다. 다만 이 발언의 의도에 대해서는 여러 갑론을박이 있다.] 다만 일본은 ODA 등 비공식적인 루트를 통해 중국 경제를 지원했다.[* 이는 잠재력 높은 중국 시장을 선점하여 훗날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중일수교 이후 1980~1990년대까지만 해도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었다. 당시 일본은 과거사에 비교적 전향적이었고 중국 시장에 대해 긍정적인 관망이 넘쳐났으며 또한 [[덩샤오핑]] 집권 직후 개혁개방에 나선 중국에도 일본과의 경제 협력은 필수적이었기에 양국 간의 이해관계가 맞물렸다. 이러한 세기말 중일 간의 우호관계는 1989년 [[천안문 6.4 항쟁]] 당시 프랑스의 미테랑을 필두로 G7 서방국들이 중국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도하자 이에 일본이 미적지근한 자세로 일관하거나 과거 [[쿠릴 열도 분쟁]]에서 중국이 일본을 지지한 사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까지 이어지던 양국 간의 우호 관계는 21세기에 전환점을 맞이한다. 2000년대에 중국이 서유럽 주요국들과 일본을 차례로 제치고 제2의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반면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으로 국력이 역전되었다. 이 과정에서 중국에서는 패권주의가 대두되어 주변국들을 압박하기 시작하였고 일본에서는 경제위기로 인해 우경화 기조가 두드러졌다. 이러한 이유로 그 동안 수면 아래에 묻혀 있었던 양국 간의 역사 문제 및 영토 갈등([[센가쿠 열도]] 분쟁) 역시 촉발되었고 또한 미중 패권경쟁이 일본의 대중 외교 기조에도 영향을 주며 양국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어 오늘날에 이른다. 2010년대, 아베 신조의 총리 집권 이후로 일본이 우경화되어 중일관계는 악화되었다. 단순히 역사적 문제만이 아니라, 미중 패권경쟁에서 일본은 미국을 우방으로 두는 입장이고 영토 분쟁까지 겹쳐서 양국은 다방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이다. 하지만 트럼프 개인과 트럼프 집권의 미국 정부는 경제적으로 대치중인 중국 뿐만 아니라 많은 곳에서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일본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어서 무역 흑자 축소를 요구받았다. 2012년 5월 14일, 일본 정부가 세계 위구르 회의의 대표회의를 개최하자 중국 외교부가 비판했다.[[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5613340?sid=100|#]] 2018년 10월 말, 7년만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10429301|일본 총리가 단독으로 방중하고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 등도 만나게 되면서 중일관계가 본격적으로 호전될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2018년에 들어서 아베 정권의 친중 정책의 흐름에 따라 일본인들 사이에서 중국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잠시 퍼졌다.[* 본래 양국 사이에는 적개심이 컸는데 201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중국인과 일본인들에게 설문조사를 했을 때, 중국인들과 일본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가 각각 일본과 중국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06/0200000000AKR20151106118800014.HTML|2015년 기사 참조]].] 다만 이러한 중일 간의 유화 분위기는 곧 미중 갈등의 격화, 역사 및 영토 갈등으로 금세 끝났다. 아베 신조가 일본이 중심이 되어 G7이 홍콩성명을 발표하고 중국측은 이에 깊은 유감을 표하였다. [[https://www.voakorea.com/world/asia/abe-g7|아베 “일본이 홍콩관련 G7 성명 주도” ...중국 “깊은 우려”]] 스가 정권이 들어선 후 일본이 미국의 반중 연대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양국 사이의 갈등이 다시 커지고 있다. 특히 대만 문제에서 스가 총리가 대만을 국가로 발언하고 백신을 지원하는 등 유래없는 행보를 보이면서 중국은 크게 반발하는 중이다. 기시다 내각 역시 이러한 기조를 이어받았으며 특히 2022년 발발한 러우전쟁 및 중국의 대만에 대한 압박 수위 강화로 신냉전이 표면화되고 제1세계와 제2세계 국가들의 유대가 강화되면서 중일관계는 다시 경색될 것으로 전망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