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종(당) (문단 편집) == 개요 == [[중국]] [[당나라]]의 제4대 황제. 본명은 이철(李哲)로 후에 이현(李顯)으로 고쳤다. [[당고종]]의 7남(혹은 9남)이자 [[측천무후]]의 3남이었다. 묘호는 [[중종]]으로 시호는 대화대성대소효황제(大和大聖大昭孝皇帝)였으며, 줄여서 화황제(和皇帝)였다. 위의 친형 '''__두__ 명'''이 죽거나 폐위되어서 운좋게 [[황제]]가 된 경우였다. 하지만 중종의 인생도 결코 순탄치 않았으니, 일생 동안 '''__두__ 번''' 정실을 맞아들이고, '''__두__ 번''' [[황태자]]가 되었으며, '''__두__ 번''' 황제가 되고, '''__두__ 번''' 모두 편하게 제위를 마치지 못한 가공할 기록의 소유자였다. 따져보면 [[고조(당)|증조할아버지]]는 건국 황제, [[태종(당)|할아버지]]는 성군인 황제, [[고종(당)|아버지]]도 황제, [[측천무후|어머니]]도 황제, [[예종(당)|동생]]도 황제라는 엄청난 가계도를 가지고 있다. 덤으로 본인이 붕어한 뒤에는 [[이중무|아들]]과 [[현종(당)|조카]]도 황제로 즉위했으니 더더욱 엄청난 가문의 소유자였다. 더군다나 아내인 [[위황후]]와 딸 [[안락공주]], 여동생 [[태평공주]]도 황제가 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으니 의미가 매우 깊다. 다만, 중종 자신은 황제로서는... '''암군이었다.''' 그리고 이 비범한 집안 내력의 부작용 때문인지, 최후는 매우 비참하기 짝이 없게도 평소에 아끼는 딸이 준 독이 든 떡을 먹고 독살당해서 '''당나라 황제들 중 처음으로 독살된 황제'''라는 기록도 달성하고 말았다. [[측천무후|무측천]] 시기부터 지속된 돌궐 제2제국의 침공에 적극적으로 대응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가 복위한 시기에는 [[묵철가한]](카프간 카간)이 당나라의 변경을 지속적으로 침공하고 있었고, 이에 중종은 [[돌궐]]을 파멸시키기 위해 오늘날의 내몽골 지역에 삼수항성을 축조했다. 또한 [[튀르기시]][* 서돌궐의 별부] 및 [[키르기스]](힐알사)와 동맹을 맺어 돌궐을 멸망시키려고 했으나, 710년 본인이 독살당하면서 북벌 계획은 허무하게 끝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