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민국/군벌 (문단 편집) === 월계군벌(광동군벌) === [include(틀:중국국민당의 파벌)] [[광둥성]]을 기반으로 한 군벌. 통칭 월군(粤軍)으로 불렸다. 주요 인물로는 [[천중밍]], [[천지탕]], [[리지선]], [[장파쿠이]], [[위한머우]](餘漢謀, 여한모), 뤄쭤잉(羅卓英, 나탁영), [[쉐웨]], [[차이팅카이]], [[장광나이]], [[천밍수]] 등이 있다. 원래 광동은 계계군벌 [[루룽팅]]의 지배를 받았으나 [[천중밍]]이 월인치월의 구호를 내걸고 루룽팅을 토벌하고 광동군벌의 시대를 열었다. 이후 [[쉬충즈]]가 광동군벌의 실력자로 자리매김하여 국민정부의 초기 군사력의 핵심이 되었으나 [[랴오중카이 암살 사건]]을 계기로 쉬충즈가 숙청되면서 크게 약화되었고 장제스가 지휘하는 당군, 즉 국민혁명군 1군이 주축이 되었다. 그럼에도 광동군벌은 [[리지선]]이 지휘하는 국민혁명군 4군을 중심으로 어느 정도 세력을 유지하였다.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리지선은 [[4.15 광저우 쿠데타]]를 일으켜 공산당원을 숙청하여 장제스와 난징 국민정부를 지지하였고 [[반장전쟁]] 초기까지만 해도 장제스와 계계군벌의 중재자를 자처하는 등 장제스와 사이가 그리 나쁘지 않았으나 장제스가 계계군벌과 친한 리지선을 반역죄로 수감하면서 리지선은 몰락한다. 이후 광동은 [[천밍수]]와 [[천지탕]]이 실권자가 되었으나 [[1차 양광사변]]을 계기로 천밍수가 축출되면서 천지탕의 일인 독주체제 하에 들어간다. 하지만 천지탕도 [[2차 양광사변]]을 일으켰다가 박살나서 축출되고 이후 [[위한머우]]가 실력자가 된다. [[장파쿠이]]도 월계 계열이었으나 독고다이에 가까웠고 반장과 친장을 반복하다가 1차 양광사변 이후 장제스에게 복종했다. 이후 천밍수, 리지선 등은 해외에서 장제스에 대한 암살, 반대 운동을 시도했으며 1933년 [[복건사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복건사변은 50여일만에 박살났고 이후 이들은 [[중국국민당 혁명위원회]] 설립에 참가하여 중공에 붙어버린다. 한편 천지탕, 위한머우 계열은 [[국부천대]] 이후 대만에 따라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