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사상 (문단 편집) === 배타성 === > 신체 구조, 군집성, 배타성 면에서 한족은 오랑캐와 구별되지 않지만, 그래도 한족은 전적으로 오랑캐와 구별되어야 한다. 왜 그러한가? 만약 인간이 스스로를 사물과 구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늘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다. 한족이 스스로를 오랑캐와 구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상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다. 천지가 인간들을 서로 구별하고 통제하고 있는데 인간이 스스로 사회 집단을 구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인간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다. >---- > - 왕부지(王夫之 1619~1692) 중화사상은 자문화 중심주의 사상이기 때문에, 그 특성상 당연히 강한 배타성을 깔고 있다. 사실, 현재의 [[중국인]]들도 다른 민족들을 깔보면서 오만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본래 중화사상에서 말하는 중화는 중국 본토 중에서도 중원(中源), 즉 황하 중 하류만을 뜻하였다. 즉, 한족들의 본래 생활터전인 중원 밖에 있는 민족은 모조리 오랑캐로 봤다는 뜻이다. 동이족이라는 요임금도 한반도를 뜻하는 말이 아닌 오늘날의 중국 동부지방 사람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나마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고 진, 한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화의 범위가 국가 전체로 커지게 되었으나, 그전까지 중화는 오로지 중원만의 것이었다.] 이 배타성이 어느 정도로 강하냐면, 송나라 때 거란의 요나라와 전연의 맹을 맺은 이후로도 샌드백마냥 털리자, 송나라에서는 고려에서 온 사신에게 지원군을 요청했다. 당시 고려는 [[여요전쟁|거란을 자력으로 물리친 전과]]가 있었기에 국격이 상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고려 사신을 인솔하던 [[소동파]](시인으로 유명한 그 소동파 맞다)는 '[[의천|오랑캐 놈들]]이 중화 민족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니, 그 꼬라지를 차마 볼 수 없다.'며 내내 툴툴거렸다고 한다. 송나라로서는 고려의 지원을 받아야만 요나라를 상대할 수 있는 입장이었기에 대놓고 화를 내지는 못했지만, 중국인들, 특히 한족들의 배타성과 자국 우월주의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다만 [[소식(시인)|소동파]]의 경우에는 [[고려]]에 대해서 그렇게 말한게 단순한 중화사상 때문만이 아닌 국력이 상승한 [[고려]] 정부에서 송나라에게 오만하게 굴었던 것이 이유였던 것도 감안해야 한다.] 전근대 중국이 동아시아권에서 막대한 문화적인 영향력을 행사함에 따라, 중국 바깥 권역은 자연히 오랑캐라고 멸시되었으며, 이를 방위와 결합해 '동이, 서융, 남만, 북적'이라 호칭하며 깔보았다. 이는 중국의 문화를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했고 중국에 사대하면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조선]] 역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례로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국왕 [[선조(조선)|선조]]를 만난 [[명나라]] 사신 [[송응창]]은 "조선 왕이 고집이 세어 내 말을 듣지 않으려 하니 한심하다. [[오랑캐]]를 설득시키는 일이 이와 같다"고 말한 바 있다. 또한, 처음 임진왜란이 발생했을 때 조선의 지원 요청에 북경에서는 황제에게 '''두 오랑캐(조선과 일본)'''끼리 싸우는 것이니 도울 필요도 없다는 자국 내 의견도 있었다. 한마디로 일부 중국인들에게는 소중화를 내세우던 조선도 대놓고 오랑캐였던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