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화사상 (문단 편집) === 다른 문화권과의 비교 === 과거 중화사상의 유래가 된 서적들의 내용을 살피면, [[전간기]] 이전의 [[범게르만주의]]나 [[범슬라브주의]]와 크게 다른 점은 없다. 과거 중화사상은 현재 서구식 민족주의와는 비슷한 점이 별로 없어 민족적 거부감이 적었다. 또 하나의 다른 예로, 초기 로마가 팽창하던 시절, 라틴 문화권이 가장 우월하다는 사상도 있었다. 현실은 로마와 라틴 연합이 싸우게 되었지만, 결국 승리한 로마가 점령한 라틴 도시국가들을 대한 것만 봐도, 로마 역시 이런 생각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로마는 이들에게 완전한 자치를 주고, 투표권을 제외한 모든 로마 시민과 동등한 권리가 보장된 라틴 시민권을 주었다. 연공도 요구하지 않았고, 단지 요구한 것은 전쟁이 났을 때 로마에게 보조병을 보냄으로써 협력하라는 것이었다. 이런 점을 보면, 로마의 민족 역시 라틴 민족들을 자신들과 동일하게 여겼으며 같은 라틴 문화권으로서 상당한 특혜를 베풀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로마의 경우 한니발의 침략을 받았을 당시 라틴 문화권에 있는 국가들의 자발적 지원을 받았던 반면에 중국의 한족 통일 왕조들이 이민족의 침략을 여러번 당할 때마다 중화문화권임을 자처하며 지원병을 제대로 보낸 나라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로마와는 상당히 다르다. 중화문화권에 속한 [[백제]] 또한 그 멸망 과정을 살펴보면 사비성이 함락되는 순간까지도 지방 유력자들이 능동적으로 군대를 보내지 않았거나 지휘부가 통일되지 못해 각개격파당하는 모습을 주로 보인다. 부흥운동도 마찬가지로 세력들이 통합되지 못하고 따로 노는 모습을 자주 보인다. 무엇보다도 백제는 중화문화권에 속해 당나라에 조공하는 등 사대하던 나라였는데도 침략당하여 멸망했다는 점이다. 이는 라틴 문화권과 중화문화권이 제각기 매우 다르게 작용되었음을 뜻한다. 물론 중국의 통일왕조들은 중화권의 영향이 크진 않은 편인 원나라 같은 이민족 왕조를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중화권에 속한 나라들에 상당한 특혜를 베풀어 주었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건 아니었는데 중화 패권에 위협이 될만한 세력, 특히 [[고조선]], [[고구려]], [[신라]], [[여진족]]처럼 요동과 만주 지역을 차지한 세력들과 베트남은 중국에 잘 사대하거나, 딱히 위협을 가하지 않았음에도 중국에 통일왕조가 들어서고 나면 별의별 트집을 잡혀 침공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특히 베트남이 숱하게 중국의 침공과 지배를 받은 이유는 원래 한나라, 당나라 시대에 자신들의 영토였으로 '다시 회복해야 할 영토'라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중에서 중국이 식민통치한 국가는 베트남이 유일하다.] 중화사상 덕분에 중국과 주변국들이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베트남과 요동, 만주 지역을 집요하게 복속시키려한 시도들은 중화사상이 수틀리면 상대국가를 얼마든지 무력으로 제압할 수 있는 명분을 중국 통일왕조들에게 제공한 예시로 볼 수 있다. 전근대에는 당연히 혈연에 기반한 민족적인 면보다 학문적, 문화적 우월성이 강조된 사상이기 때문에 다른 민족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으며, 이 사상의 영향으로 이민족들이 중국을 정복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중국을 자처한 사례들이 많다. 한 예로 [[청나라]]는 40년 만에 중국을 자처했다. 이 경우 민족끼리 동화되었다고 보기보다는, 중국을 지배함으로써 타민족, 타국들보다 우월한 문명을 갖게 되었다는 선포에 가깝다. 중화권에 속하는 국가들이 중화사상을 받아들인 이면에는 우리는 이런 위대한 문명의 일원이라는 생각이 있었으며, 서구에서 근대적 민족주의가 들어온 최근의 시각이 아니라면 딱히 민족적 자부심을 훼손하지 않는 사상이기 때문에 실질적 창시자인 한족만이 아닌 다른 민족들에게도 빠르게 전파되었다. 중국이나 중화 자체가 근대적 민족 개념이 아니었기에 가능했다. 물론 최근에는 과연 이민족들이 마냥 동화되었다는 기존의 해석이 합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제시된다.[* 사실 살호령에 의해 사라진 [[갈족]], [[준가르]]처럼 하드파워에 의해 말살된 민족들도 꽤 많다.] 역사해석에도 중화주의가 많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