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증산도 (문단 편집) === [[강일순]]과 [[고판례]] === 교조 증산 [[강일순]]은 1871년 태어나 각지를 방랑하며 수행하던 중 1901년 [[전주시|전주]] [[모악산]] 대원사 칠성각에서 대도통을 하고 이후 1909년까지 천지공사라 하여 우주와 천지의 질서를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때 많은 기행(奇行)과 이적을 행하였다고 하며, 혹자는 미치광이로 취급하기도 하고 혹자는 도인이나 미륵으로 떠받들었다. 강일순은 이후 "판을 짠다." 하면서 '천지공사'라고 칭하며 주술적인 행위를 하였다. 천지공사를 통해 미래에 올 후천개벽을 설계(?)했다고 하며, 제자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도수(度數)'라는 것을 받기도 했다. 증산계 종교들의 이해에 따르면, 도수는 말하자면 '운명지어짐'이다. 강일순이 누군가에게 어떤 도수를 붙이면, 강일순이 정한 그 도수대로 그 사람의 운명이 흘러간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난법 도수를 붙이면 그 사람은 난법자(이단자)가 된다는 식. 강증산은 부인이 3명이었다. 먼저 1891년에 혼인한 정치순(鄭治順)은 강일순이 수행할 때 시종을 들었으나, 이후 이른바 대도통 이후에 시부모와의 불화로 부친이 내치라고 하면서 이혼하였다.[* 다만 이후에도 교류나 교단 내에서 함께 있었던 바도 있었다. 슬하에 딸 이순(二順)이 있었는데, 나중에 남편과 함께 증산법종교를 개창하면서 이름을 순임(舜任)으로 바꾸었다.] 다음으로 1904년(당시 34세)에 수석제자였던 김형렬에게 처음으로 수부를 세우기로 종용하자 셋째 딸이던 김말순을 추천하였고, 김형렬은 이후 장인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말순이 15세로 강일순과 나이 차이가 컸고, 형렬의 아내가 크게 반대하므로 결혼식을 미루기만 하였다. 결국 1907년 강일순이 제자인 차경석에게 다시 수부를 세우기를 명하였으므로, 이종누이인 고판례가 사별 이후 5개월째이므로 예식을 올린 뒤 이른바 고 수부가 되었다. 수부란 '으뜸가는 부인네'라는 뜻이다. 증산도에서는 고판례가 수부가 됨이 매우 중요한 종교적 사건이라고 주장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