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증산도 (문단 편집) === 안세찬의 사망과 형제의 난 === 창교주 안세찬은 2011년 5월 18일 공식석상에서 전국 증산도 신도들에게 뒷일을 종정 안중건에게 맡긴다고 선언하고, 이듬해(2012) 2월 24일에 만 89세[* 한국식 나이로 91세. 그런데 이상하게 언론에서는 만 나이도, 한국식 나이도 아닌 90세 일기로 별세했다고 보도했다. 기자들 중 누구도 정확한 나이 확인을 하지 않고, 단순히 2012-1922=90이라는 수식만 보고 90세라고 보도한 듯하다.] 일기로 사망했다. [[http://news.joins.com/article/7470666|기사]] 안세찬은 일가를 이룬 종교인이기에 장지가 어디가 될지도 관심대상이었는데, [[십승지]]중 하나인 충남 공주시 유구읍에 안장되었다. 안중건은 종정에서 종도사로 입극立極[* 황극제의 자리에 섰다는 뜻.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007064|기사]]]하고 아버지를 '태상종도사'로 추존했다. 개벽이 오기는커녕 창교주 안세찬이 사망했다는 소식은 증산도 신도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안세찬은 [[강일순|강증산]]과 고판례의 대행자로서 개벽기의 대환란에 인류를 구원할 ‘태극제’라는 것이 증산도의 교리였다. 자기 입으로 수백 살을 산다고 공언했던 안세찬이 죽음은 증산도 교리상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안세찬 사후 증산도는 교리서적을 수정해 재출판했다.] 술렁이는 분위기 속에서 한때 교단의 실무를 맡았던 안병섭, 안정주 형제가 아버지 유언을 거스르고 형 안중건에게 반란을 일으켜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여기에 [[상생방송|STB상생방송]]의 메인 강사이자 증산도의 최고간부를 역임했던 노상균이 가세했다. 노상균은 안정주에게도 실망해 따로 [[증산참신앙]]이라는 교단을 세워 안중건을 대상으로 대규모 민형사고소를 추진했다. 이런 분란 때문에 교주 안중건이 경찰청, 검찰청에 출석하고 신도들이 상당수 이탈하는 등 교세에 크게 타격을 받았으나, 민형사고소가 모두 기각되어 어느 정도 내부단속이 되었다. 형제의 난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세한 내용은 [[증산참신앙]]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