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선미 (문단 편집) === 어린 시절과 청년기 === * [[1967년]] [[5월 14일]],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태어났다. 부친인 진영 (1929년생, 함경남도 영흥군 진평면 출신.)[* 같은 당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자 [[행정안전부장관]]인 [[진영(정치인)|진영]]과 동명이인.]은 6·25 참전을 위해 평양사범대학 1학년 때 남쪽으로 내려와 파견대장으로 수년간 뛰어들고, 전라북도 순창문화원장을 지냈다. 4남 1녀 중 막내라서 오빠만 넷이다. 오빠인 [[진봉헌]]도 변호사다. * 본인이 중학교 3학년일 때 순창문화원장이던 아버지가 숨을 거두었다. 이때부터 어머니는 탁구장과 독서실을 운영하며 5남매를 길렀다. 이후 [[순창제일고등학교|순창여자고등학교]][* 1993년 2월 28일에 [[순창제일고등학교]]와 통합되었다.]를 졸업하였다. 1984년, [[성균관대학교]] 법대에 입학한[* [[조국(인물)|조국]]처럼 학교를 만 4세에 들어갔다.] 후 학생운동권과는 거리를 두었는데, 오빠 진봉헌이 학생 운동을 하다 제적을 당한 뒤 블랙리스트에 올라 사시 3차에서 낙방하고[* 그리고 이후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수원지방판사를 지낸다.], 막내오빠마저 고려대 운동권으로 부모님의 속을 썩이는 걸 지켜보면서 진선미는 '그런 데서 벗어나 있자'고 일찌감치 생각했다고 한다. * 1996년 30세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였으며, 사법연수원을 28기로 수료하였다. 1998년 11월 32세에 [[사법연수원]]을 마칠 무렵에 5살 연상의 대학 선배와 결혼하였는데, 서로가 한창 바쁠 때라 혼인신고를 하지 못했다. 이후 변호사가 되고 [[호주제]] 폐지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호주제를 없애자면서 남편을 호주[* 남편이 차남 이하일 경우 혼인신고와 동시에 시아버지 호적에서 법정분가되어 남편이 호주가 되고 그 호적에 아내가 들어가게 된다. 반대로 남편이 장남이라 [[시아버지]] 사후 호주 자리를 상속받게 될 입장이라면 혼인신고 후 시아버지의 호적으로 들어가게 된다.]로 하는 혼인신고를 하는 게 내키지 않아 양쪽의 합의하에 호주제가 폐지될 때까지 혼인신고를 미루기로 했다. 하지만 호주제가 폐지된 후[* 2008년 1월 1일자로 폐지.]에도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고, 정계에 진출할 무렵 [[혼인신고]]를 할지 고민했으나 굳이 하지 않았고, [[20대 총선]]을 한달 앞둔 2016년 3월에야 19년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지역구인 강동구를 비롯한 강동권에서 영향력이 큰 [[명성교회]] 출석과 비슷한 일종의 정무적 판단(...). 또한 [[임신]]을 시도하면서 2번이나 [[유산(의학)|유산]]을 겪은 이후 임신 계획을 접었고, 대신 그 에너지로 사회활동을 더 열심히 하고 나이 들면 아이들을 위한 활동을 하며 살자고 부부간에 합의하였다. * [[세월호]] 특조위원장을 지내고 [[헌법재판관]][* [[김명수(법조인)|김명수]] 대법원장 지명. '''최초의 순수 변호사 출신 헌법재판관'''이다.]에 오르게 되는 [[이석태]] 변호사와의 인연으로 사법연수원 수료 후 법무법인 덕수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동료 변호사인 [[강금실]], [[이정희]] 등과 함께 호주제 폐지를 주도하면서 2005년 3월 2일 국회 본회의에서 호주제 폐지를 뼈대로 한 민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데 기여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