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순신 (문단 편집) == 평가 == 진순신의 역사 서술은 중일 분야에 치중되어있다보니, 일부 역덕들은 빈약한 한국사에 분량에 대해선 비판하기도 한다. 진순신의 [[임진왜란]] 관련 서술을 보면 [[조선]]의 자체적인 노력은 거의 배제된 채 일본의 압도적 무력과 명나라의 도움만 강조되어 있고, 당나라 관련 서술을 보면 [[고구려]]와 [[백제]] 멸망에서 당나라와 일본이 준 영향만 부각되어 있다. 물론 [[나당전쟁]] 역시 매우 중요한 맥락인데 통째로 사라져 있고, 중국의 군주들은 이름이나 시호, 묘호로 칭하는 반면 한국의 군주들은 그냥 이름만 언급할 때가 상당히 잦다. 물론 활동 배경을 고려한다면 해명할 거리는 있다. 20세기 후반까진 서양은커녕 중국인 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조차 전통적인 한반도 국가들을 중국의 번국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국외 동아시아학에서도 한국이나 한반도 국가들에게 그나마 의미있는 지분이 있게 된 건 대략 2000년대 이후부터며, 그 전에는 중국/일본을 이야기하면서 곁가지로 곁들이던 정도였다. 한마디로 진순신이 딱히 반한이나 한국에 대한 관심이 미흡했다기보단 그가 교육받거나 활동하던 시기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딱 그 정도였다.[* 이는 한국도 역사 분야에서는 비슷한게, 동아시아사 하면 중국사 위주로 배우지 일본사를 꿰뚫고 있는 한국인들은 드물다. 또한 중국 본토와 수교 전까지 대만이나 일본을 통해 중국사 자료를 구하기도 했다. 중국의 명청시대는 고등학교만 졸업한 한국인이라면 그런 나라가 있었다는 것을 알지만, 명청시대와 동시대인 일본의 아시카가나 도쿠가와 막부의 시대구분을 아는 한국인은 많지 않다.] 더욱이 일본에서 한국의 존재감이 급상승한 것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이 분기점이었고, 이후 겨울연가로 대표되는 한류 드라마와 이후 K팝 열풍까지 더해지며 일본 사회에 자리매김한다. 전문 역사서로 쓴 게 아니라고 해도 엄연히 교양역사서지 역사소설로 쓴 게 아닌데, 이런 식으로 자기가 모르거나 관심 없는 부분은 중요한데도 마구 누락하는 건 역사 관련 저술에 있어서 큰 결함이긴 하다. 물론 진순신과 당대에 살던 일본인들의 한국이나 조선에 대한 인식은 높지 않았다. 진순신의 서술 태도와 대비될 정도로 한국사의 비중이 커진 일본의 동아시아 역사서나 대중역사서들도 사실 진순신의 아들이나 손자뻘인 1940~70년대생들이 쓴 것이며, 진순신의 동년배들인 일본 작가들의 수준은 그 정도이다. 예를 들어, [[시바 료타로]]가 펴낸 여러 역사소설에도 한국이나 조선의 비중은 지나가는 수준이며 주체성은 전혀 없고 외세에 시달리는 대상으로만 나타난다.[*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 다룬 시바 료타로의 [[언덕 위의 구름]]을 보면 이런 일본인들의 심리가 딱 드러난다. 현재 청일전쟁, 러일전쟁의 개전원인은 대체로 조선을 먹기 위해 일본이 청, 러시아와 대립한 것이지만, 시바 료타로는 일본의 안보를 위해 청, 러시아의 야욕을 저지한 [[예방전쟁]] 수준으로 묘사한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이렇게 조선의 자리는 거의 없으며, "착한 일본인"이 스스로의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했다는 수준이다.] 기본적으로 진순신은 중국-일본사 전문 저술가였고, 그의 독자들인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도가 그 수준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서양에서 펴낸 동아시아사도 한국/조선은 건너가는 수준이다. 이렇게 진순신의 한국사 경시가 한국인의 입장에서야 오류나 결함이라고 보일 수 있을 것이지만, 이는 시대의 한계이며, 그가 의도적으로 한국사를 무시하거나 경시했다고 보기는 힘들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