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진시황릉 (문단 편집) == 재발견 == 진시황이 죽고 불과 4년 만에 진나라가 멸망해버렸다. [[항우]]가 이끄는 군대는 함양(咸陽)에 입성하자 진나라 왕들의 무덤을 도굴했다. 당연히 가장 크고 6국의 원성도 가장 많이 들은 진시황의 무덤이 도굴 1순위였다. 비록 항우가 도굴했어도 항우조차 진시황릉의 엄청난 규모는 미처 파악하지 못하여 상당히 많은 묘실이 도굴되지 않고 남았다. 다만 [[사기]]의 항우본기(項羽本紀) 등에는 직접적인 기록은 없고, 한고제본기(漢高帝本紀)에 [[광무 대치]] 중 [[한고제|유방]]이 항우를 비난하고 항우의 죄 10가지를 나열하면서 진시황릉 도굴을 간접적으로 언급할 뿐이다. 진시황 본기[* 제목은 진시황 본기지만 진나라 멸망까지 기록하고 있다.]에서도 자영 살해, 함양 학살, 방화, 약탈 등 항우가 함양에서 저지른 오만 범죄를 다 나열했지만 진시황릉 도굴은 일언반구도 없다. 진시황릉을 발굴해봐야 알겠지만, 어쩌면 항우가 진시황의 무덤을 도굴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여산 인근에 황제의 무덤이 있다는 이야기만 구전되었을 뿐, 진시황릉은 그 후 2천 년 가까이 잊혀졌다. 항우가 진시황릉을 이미 도굴하고 파괴했다는 소문이 진시황릉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진시황릉에서 병마용갱은 대규모 방화의 흔적이 발견됐지만 진시황릉 자체는 방화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고 내부에 빈 공간이 유지된 채로 아직도 남아있음이 확인 됐고, 이 빈 공간을 무너트리지 않고 보존하면서 발굴할 기술이 아직 존재하지 않아서 진시황릉의 발굴은 무기한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현재 발굴중이면서 관광객들이 관광하는건 정확히는 진시황릉 바로 옆에 있는 병마용갱이다. [[청나라|청대]] 이후 [[고증학]]의 시대로 접어 들어서 [[사기(역사책)|사기]]를 비롯한 대부분 중국 고전들의 신빙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사조가 생겨났기 때문에, 사마천이 사기에서 진시황릉을 설명한 구절이 과연 진실인지 의구심이 있었다. 사마천의 엄청난 기술이 고대인의 과장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던 중 [[1974년]] [[3월 29일]], 양신만(楊新滿)ㆍ양췐위ㆍ양츠파 등 리산(여산) 인근 시양 마을 청년 6명이 [[우물]]을 만들고자 땅을 파던 중[* 섬서성 지대(황토고원)는 물을 구하기 어려운 지역으로 유명해서 지금도 우물을 파는 곳이 있다.] 도기 조각을 발견했다. 인형 모양 도기 조각과 쇠뇌 청동 화살 등을 더 캐냈지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데 린퉁현의 옌자이공사에서 수도시설을 담당하던 팡수민이 우물 작업에 진척이 없자 확인하려고 리산 우물 공사장을 찾아왔다가 흙 속에서 나온 도기인형들을 보았다. 팡수민은 평소 고고학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진나라 시대 도기라고 알아보고는 박물관에 알린 덕에 본격적인 발굴이 시작되었다. 얼마 뒤 도기제 병사 인형 수천 점이 묻힌 거대한 공간(병마용)이 발견되었다. 이후 동마차갱ㆍ기마갱ㆍ동물갱ㆍ개갑갱 등 부장품 구덩이 수십여 곳이 발견되어 진시황릉이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문화대혁명]]이 슬슬 잠잠해지던 시기라 [[홍위병]]이 황릉을 파괴하는 일은 일어나지는 않았다. 최초 발견자 중 양신만은 인기스타가 됐다. 국내 모 프로에도 양신만의 당시 근황이 나왔는데, 나름 유명인사로 관련 책자도 팔고 기념 사인회까지 열 정도로 행복한 여생을 보내고 있으며 현지 기념품 판매소에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발견 당시엔 중국 정부에서 보상으로 경운기 1대를 지급했다고 한다.[* 1970년대 중국은 자동차는커녕 자전거가 사회인의 상징이었었고, 텔레비전은 그야말로 일부나 가질 수 있는 물품이었으니 경운기 1대가 결코 작은 보상이 아니었다.] 진시황릉 발견 전만 해도 그 땅은 작황이 안 좋아 귀신 붙은 땅이라고 불리며 현지 주민들이 기피했던 곳이었다고 한다. 진시황이 자기 무덤에 수은을 들이부은 탓에 무덤 부근 토양의 수은 함유량이 일반적인 토지의 20배에 달한다고 하니 작황이 좋을 리가 없다.[[http://blog.daum.net/bolee591/16154960|#]] [[2016년]], 진시황릉 주변에서 부장갱 4백여 곳에서 실제 동물의 유골과 도기, 청동기로 제작된 동물 등 유물 수천 점이 출토되었다.[[http://v.media.daum.net/v/20161203130821600|#]]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