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참수형 (문단 편집) == 동아시아의 참수형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www.koreanhistory.org/1165289180.jpg|width=100%]]}}}|| ||<#fff,#191919> {{{-1 김윤보의 <형정도첩>중 참수형 장면}}} || 과거 한국의 경우 참수형을 전문적인 [[망나니]]가 수행했으며,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신체발부수지부모]]' 사상[* 신체와 [[터럭]], 피부는 부모에 의해 나왔으니 훼손하지 않는 것의 [[효도|효]]의 시작이니라.]에 의해 그다지 명예롭지 않은 형벌로 여겨졌다. 따라서 왕족이나 고위직에게는 반역죄 같은 대죄가 아닌 이상 참수보다는 사약을 썼다. 물론 참수가 사지를 찢는 [[거열형]](車裂刑)이나 [[능지형|능지]]보다는 나았긴 하다. 과거 중국에서는 따로 대벽(大辟)이라고 칭하기도 했는데 이에 대한 추가 설명은 [[오형]] 문서 참조. [[사극]]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의 참도는 한손으로 휘두르는 대도 같은 것이 아니라 거칠게 만든 [[월도]] 같은 긴 자루가 달린 칼이었다. 아래 유물사진에 나오듯 이름은 참도지만 생긴 건 예외인 경우도 있다. 또한 참수자는 양쪽 귀에 관이전(貫耳箭)을 꿰어 사형수임을 표시했는데, 양 귀에 꿰면서 목 뒤에서 교차해 X자가 되도록 하여 화살이 목에 걸려 머리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기능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귀에 화살을 꿰는 건 사형에 처할 때뿐만이 아닌 [[장형]]이나 [[유배]] 정도의 처벌을 당할 간통죄를 저지른 이를 [[조리돌림]]할 때도 했기에 단순히 형 집행 전에 고통 및 망신을 더 주기 위한 조치였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에 얼굴에 하얗게 회칠을 하고 상투를 기둥에 묶어 목이 베이고 나면, 머리카락을 묶은 기둥에 머리를 걸어 일정 기간 전시했다. [[평화방송]]에서 만든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일대기를 그린 <성 김대건>에서 위에 서술한 대부분이 그대로 재현되는 장면이 나온다.[* 전자인 관이 표시만 한 경우는 [[무인시대]]에서 [[김보당]]을 처형할 때 나왔다.] 웹툰 [[칼부림(웹툰)|칼부림]] 23화에도 이러한 사형방식의 고증이 잘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늘 보던 술 마시고 칼에 술을 ~~입으로~~ 뿌리며 덩실덩실 칼춤을 추다가 흡! 하고 숨을 참고 자세를 잡은 다음 망나니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은 죄수의 목을 칼로 뎅강 베어버리는 사형방식은 사극적 과장이다. [[최한나]]의 방송에 따르면 이런 사형 방식은 사실 일본의 방식이라고 한다. 옷깃이 높은 동양 복식의 문제로 인해 동아시아에서 참형을 집행할 때는 사형수의 웃옷을 몽땅 벗겼다. 심지어 고대 중국에는 아예 발가벗겨 놓고 집행했는데, [[북위]] [[효문제]] 연간에 이게 좀 심하다 싶었는지 웃통만 까는 방식으로 수정하였다. 여성도 예외가 아니었기에 참형 집행을 당하는 여성 중에 옷을 벗기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여 겨우 허락을 받는 사례가 가끔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얄짤없이 웃옷이 벗겨진 상태로 참형을 당했다. 중국 희곡 두아원에서도 여주인공인 두아가 억울하게 참형당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그린 당시의 삽화에도 두아가 웃옷을 벗겨진 채 형장에 꿇어앉아 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청나라]] 말, [[의화단 운동]] 진압 때에 여성들로 구성된 단체인 홍등조 등의 회원들을 체포하여 처형할 때 옷을 모두 벗긴 후 일단 거리에서 조리돌림부터 시키고 참수한 사례도 있다. [[포청천]]의 영향으로 중국 [[송나라]]에서 [[작두]]로 썰어죽인 것처럼 오해하기 쉽지만 실제로 작두를 사용한 경우는 [[요참형]]으로, 이는 목을 자르는 게 아니라 몸통 한가운데를 작두 위에 올려놓고 썰어 버리는 형벌이었다. 이 형벌을 당한 대표적 인물로는 진의 승상 [[이사(전국시대)|이사]], [[삼국지]]의 등장인물인 [[진식]][* 진식은 연의에서의 한정. 이걸 가지고 진수의 아버지와 엮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문서 참조.], [[악침]] 등이 있다. 일본에서 [[할복]]을 할 때 목을 쳐 주는 [[카이샤쿠]]라는 역할이 있다. 이는 본디 할복하는 사람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에도 중기 이후로는 사실상 할복하는 시늉만 하고 서류상 처리만 할복인 참수형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할복 외에 별도의 사형으로서 참수형이 존재했는데, 참수검법과 참수된 시체를 이용한 시험베기(타메시기리)를 생업으로 살아가는 [[야마다 아사에몬]]이라는 사형 집행인 집안도 있었다. 참수형은 도끼 동원같은 것 없이 그냥 다 [[일본도]]로만 한것으로 보이는데, [[일본도]]는 사철로 만들어진 칼[* 일본 열도 자체가 질좋은 철이 거의 나지 않는 지역이라 채굴할 수 있는게 불순물 많은 사철 정도였고, 이걸로 농기구부터 도검까지 다 만들어야 했다. 유럽산 강철을 남만철이라 부르며 수입해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사용한게 다 이유가 있는 셈.]이라는 열악한 특성을 보완하기 위해 칼날을 두껍게 만들고 무게중심도 손잡이에서 멀고 폼멜까지 없어, 서양검에 비하면 컨트롤은 어렵지만 그만큼 베기성능은 좋았기 때문에 따로 처형용 도검이 만들어져 쓰이진 않았다. 이외에도 [[센고쿠 시대]]까지는 조선에서 날이 서지 않은 무딘 칼로 여러 번 목을 쳐 죽이는 것과 비슷하게 노코기리비키(鋸挽き)[* 중국의 [[능지형]]과 마찬가지로 사형 방법 중에서는 최고형으로 여겨지던 형벌이다.]라는, 대나무 톱으로 목을 썰어서 고통스럽게 처형하는 형벌도 존재했다. 이 경우는 사형수를 길가에 목만 내밀게끔 묻어놓고 지나가는 행인들이 지면을 따라 한 번씩 톱질하도록 해서 죽이는 잔인한 형벌이었다고 한다.[* [[아라카와 히로무]]의 [[은수저 Silver spoon]]에도 하치켄이 "대나무 톱으로 썰어 죽이는 형벌을 받는 것 같다..."며 고통스러워하는 개그씬이 나온다. [[아라카와 히로무|소여사]] 선생이 가끔 만화에다 개그씬으로 일본의 고대 형벌을 집어넣는 경우가 있는 편. 일본식 [[압슬]]이라던가...] 노코기리비키형을 받는 사형수는 보통 주군이나 부모를 죽인 패륜아나 연쇄살인범 등 정상참작의 여지가 거의 없는 흉악범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이 형이 집행되면 너도 나도 톱질을 하겠다고 달려들었다고. 그러나 지나치게 잔인한 형벌이었기 때문에 [[에도 시대]]부터는 죄인을 묶어둔 후 옆에 톱을 형식적으로 걸어만 둬 일종의 [[조리돌림]]을 진행한 후[* 센고쿠 시대와는 정반대로, 행인이 옆에 걸린 톱을 들고 죄수를 멋대로 죽이지 못하도록 형리를 한 명 세워두기도 했다.] [[책형]](磔)에 처하는 방식으로 변경되었다. 조선 시대에 참수형을 할 집행자가 살인의 충격과 고통을 줄이기 위해 술을 퍼먹고 취한 채로 하다 조준이 빗나가거나 힘이 덜 실려서 사형수에게 참혹하고 고통스럽게 집행되는 경우도 잦았다고 한다. 관에서도 이런 사정을 아는지 사형 당일이 되면 특별히 술과 고기를 푸짐히 내려 먹였다고 하며, 이것을 "한밥 먹인다"라고 한다. 조선시대의 망나니를 그린 그림을 보면 단칼에 베는 대가로 죄인 가족들에게 받은 돼지를 안고 돌아가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망나니에게 죄인의 가족들이 뇌물 비슷한 것을 주는 것은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다른 지역에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재밌는 볼거리가 거의 없던 그 시대에는 망나니의 참수형 집행장면도 하나의 구경거리였다. 개중에 잇속에 밝은 망나니들은 형 집행 전 구경꾼들 사이에 돌아다니면서 지금으로 치면 일종의 관람료(?)를 요구했다고. 가령 [[목침]]을 괴어야 하는데 목침이 없어 곤란하던 차에 육의전의 한 상인이 목침을 하나 주었다. 이후 망나니들이 일부러 목침을 안 가져오고 주변 목침 판매상에게 목침 또는 돈을 달라고 투정을 부린다. 또한 사형수 중에 대머리가 있어 머리카락을 묶지 못해 보다 못한 장기를 두던 이가 장기 망태기를 주자 역시 그 후에 장기 두던 사람에게 망태기 살 돈을 달라고 흥정했다고. 중국 소설 [[아Q정전]]에서도 [[아Q]]가 마지막에 [[총살형|총살]]당할 때 구경꾼들이 "에이, 총살형은 재미가 없어! 참수형이 재미있는데 말야!"라는 말을 하는 게 나오는 걸 보면 여기서도 구경거리였던 모양. 조선에서는 1895년 1월 22일 [[갑오개혁]]을 추진하면서 참수형이 폐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