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채명신 (문단 편집) ==== 북파부대 지휘관 ==== 그 후 [[황해도]] [[연백군]]까지 내려가 그곳에 잔류 중인 반공 청년들과 함께 [[강화도]]까지 도하 후 [[죽창]]이 대부분인 그들의 무장을 보고 정면 대결은 무리니 산으로 올라가 [[게릴라]] 활동을 하는게 낫다고 권고하고 배를 타고 [[충청남도]] [[당진시|당진]]까지 내려가 그곳의 헌병대장인 [[송효순]] 중령에 의해 [[대구광역시|대구]]로 가서 송악산 시절의 상관인 [[최경록]] 장군을 만나 이제 중공군들이 주력이 됐고 그들은 [[삼대기율 팔항주의|민가로 오긴 해도 일방적으로 민폐를 끼치지 않으며]] 항공기에 기겁을 한다는 정보를 전달 후 연대장에 대한 미안함과 강화도의 청년들이 걱정돼 적지 돌파 경험을 살려 북파 부대 지휘관을 자처한다. 이 부대는 북한군의 침공 초기 패색이 짙을 때 [[블랙 옵스|적진에 침투시킬 비공식 부대]]로 결성되기는 했지만 창설 요원들의 증언을 살펴보면 상부에서도 뭘 기대하고 만든 것보다는 그냥 찔러보기 소모품 정도로 생각한 것 같다. 부대원들 대부분은 북한 출신 반공 청년과 피란민들로 적지에서 활동한 경험자는 지휘관인 채명신 대위뿐이었다. 그래서 [[사격]]은 물론 지도도 볼 줄 몰라[* 다만 기록을 보면 전부 이런 건 아니었는지 채명신은 300명 중에서 [[일본군]] [[학병]] 출신이나 전투 경찰 경험이 있는 자들 100명을 추렸다고 한다.] 그에 따라 훈련 기간도 늘 수밖에 없었는데 위에서 자꾸 재촉하자 "이대로 보내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다"며 항의를 했으나 지휘관에서 제외당했다. 그러나 이런 어중이 떠중이들을 차마 보낼 수 없어 이 임무에서 생환한 비정규 대원들을 정규군에 편입해달라는 조건을 달고 채명신 자신도 일선 대원들과 함께 [[강원도]] [[영월군|영월]]로 향한다. 그곳에서 인민군복을 입고 유격 11연대[* 이 명칭은 기존 [[제11보병여단|11연대]]를 유격대로 전환한 게 아니라 적지에서 수를 부풀리기 위한 가짜 단대호다.]를 이끌었으며 이후 이두병 소령의 유격 12연대, 김한철 대위의 유격 13연대들을 규합해 500~600여 명급으로 만들었고 [[대한민국 육군본부]]에서는 채명신에게 유격 부대들을 지휘할 것을 명령해 그는 이 부대에 '백골병단'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을 붙였지만 [[제3보병사단]], 특히 원조 백골 부대인 [[제18보병여단|진백골 18연대]]와의 관계는 같은 월남자 부대의 대표인 채명신이 같은 동기로 자칭한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그 뒤 능선에서 매복을 하다 전령을 덮쳐 동해안에 있던 69여단 본부의 위치를 알아낸 뒤 이 정보로 [[유엔군사령부|유엔군]]의 폭격이 끝나자마자 돌입해 털어버리고 북한 유격대장 중 하나인 길원팔을 생포 후 자결할 기회를 주고 그의 군인됨에 경례를 했다.[* 다만 적에게 경례를 한 것만으로도 [[빨갱이]]라는 누명도 쓰던 시기였기에 상당 기간 동안 쉬쉬했었다.] 이후 공산군의 추격을 피해 [[설악산]] 능선을 타고 남하하며 중공군 대부대와 마주치면 태연하게 중국어로 인사를 건내 경계심을 풀고 지나가게 하고 소수라면 즉석에서 죽이는 등 과거의 경험을 활용했다. 그렇게 남쪽으로 내려가다 3사단 수색대와 조우해 한 숨 돌리고 생환자들을 수습해 보니 200여 명 남짓으로 줄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돌아와 보니 [[대한민국 국방부]]에서는 이들의 정규군 편입을 허가하지 않았고, 급기야 [[신성모]]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과 언쟁을 벌이다 붙들려 나가는 등 뜻대로 되지 않아 회고록에 미안함을 덧붙였다. 다만 백골병단 생환자들은 채명신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듯하다. <육군 본부 직할 결사대 60년사 (백골병단)>라는 백골병단 출신자가 쓴 책에 의하면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에서 북으로 넘어가기 위해 출정식을 할 때 신성모 국방장관과 유엔사령부에서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메세지가 전해져 왔고 국방부 장관 일반 명령으로 출정을 하게 되었다. 또한 출정식에서 육해공군 총사령관 겸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장군이 직접 와서 가짜 인민군 장교 계급장과 하사관 계급장을 달아주며 "지금 여러분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습니다. 국군 최초의 유격 부대로 유엔군 사령관도 여러분에게 거는 기대가 큽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한 사람의 희생도 없이 모두 돌아올 수는 없겠지만 만일 살아돌아오기만 한다면 여러분의 계급은 지금 그대로 현역 계급으로 전환하는 한편 1계급 또는 2계급 승진시킬 것을 약속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결사 11연대 300명이 사선을 넘고 돌아와보니 이들이 받은 계급장은 사실 비공인 가짜였고, 게릴라 군번인 GO 역시 허상에 불과하였다. 게다가 군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징집 영장까지 날아오는 상황. 하여간 이 때문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였으니 지난 60년 동안 명예 회복을 해달라고 아직까지 소송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당시 지휘관이였던 채명신 중령은 자신들을 도와주려고 하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똑같은 장교들이니 채명신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